30년 전 그 뜨거운 열정이 되살아난다
대구에서 공연하는 연극을 찾아보다가 ‘이 여름이 지나면’을 관람하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예매하는 것은 처음이다 보니 순조롭게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몇 번을 시도했는데도 실패로 끝이 났다. 어쩔 수 없이 전화 예약을 하기로 했다. 상담이 많아 계속 기다리라는 응답만 흘러나왔다. 세 번째 전화에서 겨우 상담원과 연결이 되어 예매에 성공했다.
지난 토요일 오후 2시쯤 대구문화예술회관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공연은 3시에 시작이지만 운전해서 30여 분 걸리는 거리라 일찌감치 출발하였다. 약속 장소에 20분 일찍 도착하는 것이 몸에 밴 습관이기도 하다.
제22회 호러와 함께 대구 국제힐링공연제 특별초청작인 ‘이 여름이 지나면’은 ‘비슬홀’에서 공연했다. 시간이 일러서인지 사람들이 크게 붐비지는 않았다. 매표소에서 좌석을 안내받고 선물을 받았다. 사탕과 안경닦이 중 나는 남편에게 선물할 안경닦이를 선택했다. 앞에서 네 번째 줄 정중앙이 내 자리라 배우들이 잘 보이겠다 싶어 괜스레 마음이 간질거렸다.
‘이 여름이 지나면’은 창작집단 램스테이지 두 번째 작품으로, 연극 ‘찬란하고 찬란한’을 선보인 이이림 작.연출 신작이다. 삶과 죽음, 상실과 회복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룬 서정적 극은 서로 삶에 스며드는 여섯 인물 이야기를 찬찬히 따라갔다. 각기 다른 배경과 기운을 지닌 배우들이 풀어내는 네 가지 일화는 조용하지만, 진심 어린 위로를 전해 마음 깊이 여운을 남겼다.
미국에서 돌아온 연후는 한국에 돌아온 지 한 달 만에 자살한 어머니의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형과 누나를 찾는다. 그들은 이복형제였고 15년 전 집을 떠나 생사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지훈은 심리상담사 동민과 군대 선후배 사이로 정은이와는 친구 관계이다. 동민에게 심리 상담을 받아보라는 조언을 정은에게 해 준다. 지훈은 사업실패로 힘들어하다가 우연히 연후를 공원에서 만나 서로 위로하며 살아간다. 현수는 연극배우로, 정은은 그림과 육아 사이에 지친 삶을 살아가는 부부 역할이다. 서로를 비난하며 다툼을 이어가다가 심리 상담을 받고 차츰 회복해가는 과정을 밀도 있게 잘 풀어냈다. 연주는 동민과 같이 살지만, 결혼도 하지 않고 아기를 낳지 않은 채 살아간다. 어린 시절 겪은 상처로 가족 만들기를 거부하는 인물이다. 동민은 그런 연주를 다 이해한다. 자기의 가족을 만들기 원하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심리 상담을 마친 현수와 정은 부부가 모든 사람을 집으로 초대하게 된다. 그곳에서 연후와 연주가 만나게 된다. 연주는 연후가 찾던 누나였다. 재혼한 부모의 자녀였다. 연후의 엄마가 바다로 빠져 죽으려고 할 때 아버지가 어머니를 구하고 본인은 죽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이 어머니 탓이라 여긴 연주는 집을 떠났다가 15년 만에 우연히 서로를 마주하게 되었다. 처음엔 서로 보듬어 주지 못하고 상처를 긁어대고 울분을 토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배경을 들은 연주는 그녀가 남긴 편지를 읽고 연후와 화해하고 남매의 정을 다시 쌓아가게 된다. 마음을 회복한 연주는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단단함을 믿고 동민과 혼인신고를 한다. 동민은 아이를 낳을 희망에 부푼다.
극의 말미, 연후와 연주가 울분을 토해낼 때도, 둘이 극적으로 화해하는 장면도 여운으로 남는다. 연주가 어머니가 남긴 편지를 읽는 대목이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다. ‘이 여름이 지나면’은 현시대의 갈등, 삶과 죽음, 상실과 회복을 잔잔하면서도 때론 유쾌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내가 처음으로 본 뮤지컬은 ‘오즈의 마법사’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30여 년 전, 공부방을 운영할 때였다. 아이들에게 뮤지컬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표를 구매했다. 초등학생 공부방 아이들과 일곱 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가서 본 뮤지컬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아이들보다도 어른인 내가 더 흡족했던 기억이 있다. 배우들이 객석으로 내려와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기도 하고 사진을 같이 찍어주기도 했다. 그때 뮤지컬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인터넷 사이트의 내 닉네임을 오즈의 마법사로 지었다. 지금은 글을 쓸 때 필명으로도 사용할 정도로 그 뮤지컬은 나에게 단순한 공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나의 감정과 기억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존재이다.
동화구연 입상자에게는 대구 색동회에 가입할 수 있는 조건이 부여되었다. 나는 색동회에 몸담으면서 매년 어린이날을 전후하여 아이들을 위한 연극이나 합창을 해서 공연했다. 대구 경북에 흩어져 살던 색동회 회원들이 몇 달간 열심히 연습하여 무대에 올랐다. 회원들은 주로 글쓰기 수업이나 동화구연을 하는 선생님들이 많았다. 오후에 일하는 회원이 많아서 연습은 오전에 해야 했다.
연습은 영남일보 강당에서 주로 하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때도 동화구연 대회나 시 낭송 대회를 영남일보에서 하였다. 영남일보는 아이들을 위한 행사에는 지원과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연극 공연장소는 대구 국립박물관이나 시립 남부도서관이었다. 공연이 있을 때마다 공부방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다. 어릴 때부터 문화생활을 접하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아이들의 박수 소리와 환호를 들을 때면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참 풋풋했고 열정이 넘쳐 흐를 때였다.
공부방에서 학원으로 규모를 확장하면서 일이 바빠지는 바람에 더는 색동회 일을 할 수가 없었고 자연스레 연극도 멀어져갔다. 2012년에 친구들과 관람한 뮤지컬 ‘맘마미아’를 끝으로 나의 문화생활도 함께 끝이 났다.
13년 만에 다시 연극 무대를 찾았다. 연극이나 뮤지컬을 한 편 관람하고 소감을 작성해서 제출하는 중간고사 과제를 하기 위해서였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무대를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는 즐거움은 오히려 배가 되었다. 내가 직접 출연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황홀한 시간이었다. 30여 년 전의 뜨거웠던 열정이 되살아나기라도 한 듯 가슴이 마구마구 뛰었다.
‘이 여름이 지나면’은 현시대의 갈등, 삶과 죽음, 상실과 회복을 잔잔하면서도 때론 유쾌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가족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이번 연극에서 다시 한번 가족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시간이 되었다.
연극이 끝난 후 엄지를 치켜들고 배우들과 요리 찰칵 조리 찰칵 사진을 찍었다. 배우들은 지친 내색 하나 없이 환히 웃는 얼굴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오래간만에 문화생활을 하니 나도 모르게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과제 덕분에 마음이 포동포동 살찐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