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달성 대구현대미술제’를 다녀왔어요.
한 달 전, 평상시 마음을 잘 나타내지 않던 내가 남편에게 한마디 했다.
“나 요즘 좀 외로운 것 같아. 외로워.”
남편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걱정되었는지 회사 일로 늘 바쁜 남편은 그날 이후로 가끔 시간을 내는 것 같았다. 짬을 내어 외식하러 가거나 긴 시간은 아니지만 잠자는 시간을 줄여 산책을 같이 다녀주기도 했다.
나는 집에서 주로 학교 공부를 하거나 글을 쓴다. 바깥에서 일하는 남편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삼시 세끼를 챙겨주는 일로 아내로서 의무를 다한다. 밥을 먹은 남편은 다음 일을 하기 위해 잠을 자는 게 다반사이다. 하숙생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제나저제나 오려나 기다림에 지치는 일들이 많아지며 나도 모르게 우울감이 찾아왔다.
수십 년 동안 같이 살면서 평소 그런 내색을 하지 않던 나를 보며 남편도 신경이 쓰였나 보다. 조금씩 일을 줄여나가며 같이 있는 시간을 보내려고 애를 썼다.
지난 일요일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난 남편이 넌지시 말했다.
“오늘 드라이브 갈까?”
“어디 좋은 데라도 있어?”
오후에 출근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기대도 하지 않고 슬쩍 물어보았다.
“내가 일하는 지역 주변에 무슨 행사가 있나 봐. 오전에 잠깐 시간이 되니 빨리 갔다가 오자. 주변에 맛집도 있다니까 점심까지 먹고 오자.”
“오~~ 그래? 그러면 가보자.”
남편과 간단한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집에서 차로 30여 분이 걸리는 거리이지만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니 어느새 도착지에 다다랐다. 그곳은 바로 강정보 디아크 광장이었다.
입구에는 ‘2025 달성 대구현대미술제’라고 큼지막하게 써 놓았다. 10시 조금 넘어서 출발했는데도 이미 많은 사람이 와 있어서 주차장은 차로 빼곡하게 줄지어 서 있었다. 그늘에는 돗자리를 펴놓은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간식을 먹고 있었다. 대부분 서너 살 아이들이 많이 보였다. 넓은 광장은 아이들이 킥보드를 타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 아이들을 보니 손자들도 같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것은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웃음소리이다.
올해로 제14회를 맞이하는 ‘달성 대구현대미술제’는 본전시와 달천예술창작공간 제5기 입주작가 특별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먼저 본전시를 관람했다. 미술을 잘 이해하지 못하다 보니 안내 표지를 꼭 읽어보아야 했다.
관람료는 무료이고, 2025년 9월 13일부터 10월 12일까지 전시한다.
“여기 꼭 데리고 와보고 싶었는데 추석 연휴에는 더 바쁠 것 같아 급히 일정을 잡게 되었어.”
라고 남편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외롭다는 나의 말 한마디에 이렇게 데이트를 준비해 준 남편이 너무 고마웠다. 햇볕에 물든 남편의 얼굴이 더 멋있어 보였다.
‘달성 대구현대미술제’는 다다이스트들이 벌인 ‘난장’의 가치를 떠올리며, 지금의 환경문제, 자국 우선주의 등 다양한 사회 문제들을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극복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소통의 창, 놀이의 창으로 펼쳐보고자 기획되었다고 한다.
광장에 마련된 전시를 구경하고 디아크 문화관 내부 전시장으로 들어갔다. 원래 이곳은 달천초등학교와 서제초등학교 분교였다고 한다. 2017년 리모델링을 거쳐 2021년에 문을 열어 지금의 달천예술창작공간이 되었다고 한다.
1층과 2층은 5기 입주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미소 작가의 ‘대현동 464-24, 93년 5월 24일’이라는 작품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자개장 앞에 할머니와 손주들이 조르르 앉아 있는 모습이 너무 다정해 보였고 옛 기억들도 떠올랐다. 작가는 존재만으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삶이 되었던 것을 기억하려는 시도이자 살아감을 이해하고자 하는 작업이라고 한다.
3층은 카페와 전망대가 있었다. 전망대로 나가니 숨이 확 트였다. 멀리 높이 들어선 아파트들도 보였고 바로 가까이에는 강정보가 보였다. 강정보의 물이 흐르는 모습을 카메라와 눈에 담았다.
나오는 길에 근처 맛집으로 가서 점심을 먹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3시에 출근하는 남편이 잠시라도 쉬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준비한 나들이 어땠어?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시간을 내서 함께 다니도록 노력할게.”
“응, 좋았어. 나는 자기와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지금이 가장 젊을 때 남편과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다. 다음 데이트는 또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기다리는 맛도 설레는 맛도 좋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 사는 이야기에도 실렸습니다. 엄지척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