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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삼동 카페, 사장님의 한 마디가 놀라웠다

마음을 유쾌하게 만드는 마법

by 오즈의 마법사

주변을 둘러보면 사람들의 모습이 다 다르다. 타인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치는가는 자신의 말과 행동에서 비롯된다.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는 사람은 온 마음에 긍정에너지가 가득 묻어 있다.


동네 근처에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와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이 서너 개 있다. 한 번씩 방문해서 커피를 마셔 보았다. 맛은 별다르지 않다. 거기서 거기다. 대부분 손님은 직원의 태도를 보고 다음에 또 갈지 말지를 정한다. 오픈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카페 두 군데가 문을 닫았다. 경기가 어렵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잘 되는 가게도 있다. 비법이라면 사람을 대하는 방법이다.


지금은 일곱 살이 된 큰 손자는 세 살부터 네 살까지 할미 집에서 같이 살았다. 어린이집을 마치면 마트에 가서 간식을 사는 날이 더러 있었다. 마트 옆에는 커피 전문점이 하나 있었는데 종종 아이를 데리고 갔다. 나는 커피를 마시고 녀석은 높은 의자에 앉아 다리를 앞뒤로 살랑살랑 흔들며 쫀득쫀득한 젤리를 오물오물 씹어 먹었다. 우리 둘은 참새처럼 조잘거리며 서로를 보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본 가게 주인이 관심 있게 지켜보았던지 다음에 갔을 때 단박에 손자를 기억했다. 몇 마디 말을 걸어주기도 하고 웃어주기도 했다. 아이 돌보는 것이 힘들게 느껴질 때 카페인을 보충하기 위해 아주 가끔 방문했다.


저녁 산책을 나섰다. 동네 몇 바퀴를 도는 것은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자 유일한 숨구멍이다. 바람이 살랑거려 산책하기는 좋은 날씨였다. 한 시간을 걸으니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고 입이 바짝 말랐다. 시원한 커피 한 잔이 생각났다. 평소에 산책할 때 전화기도 지니지 않고 빈손으로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그 시간만이라도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손에 뭔가를 드는 것이 거추장스럽다는 생각에서이다. 오늘은 마트에서 살 물건이 있어 카드 한 장만 달랑 주머니에 넣어서 갔다. 커피 한 잔 여유를 부려도 될 터이다.


커피집에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매장에서 마시고 갈 것이라고 미리 주인장에게 말했다. 활짝 열어놓은 문 사이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손자는 같이 안 왔어요? 집에 갔어요?”


사장님이 묻는다. 거의 일 년 넘게 가지 않았는데 나를 기억하고 손자의 안부를 물어보니 놀라울 따름이다. 오고 가는 손님이 하루에도 수백 명일 텐데 몇 년 전에 겨우 몇 번 온 나를 기억하다니. 오히려 내가 주인장을 알아보지 못했다. 예전에는 아주 꼬불꼬불한 파마머리를 질끈 묶고 있었는데 오늘은 모자를 쓰고 있어서 다른 직원인 줄 알았던 거다. 가게 사장님에게 한 마디 건넸다.


“몇몇 커피집은 문을 닫았던데 불황에도 여기는 잘 되는 이유가 있어요. 사장님이 너무 친절하고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묘한 매력이 있거든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그사이 또 한 손님이 들어왔다. 주문한 커피를 내리는 주인에게 그녀가 말했다.


“집은 조금 먼데 사장님이 너무 친절하시고 기분 좋게 해 주셔서 멀어도 여기에 와요.”


나와 비슷한 말을 주인장에게 하는 것이다. 오지랖이 넓은 편은 아니나 슬쩍 끼어들었다. 나보다 꽤 젊어 보이는 그녀와 한바탕 대화가 이어졌다.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여기는 다시 오고 싶은 곳이지요?”

“집 가까이 커피집이 있어도 거긴 기분 나빠서 안 가요. 물을 좀 달라고 했더니 여긴 물을 파는 곳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하는 게 기분이 안 좋더군요.”

“여기 오면 왠지 기분이 좋아져요.”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사이인 것처럼 수다를 떨어댔다.


남은 커피를 홀짝거리며 벽에 붙어 있는 가게 이름 뜻을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웃을 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석 삼: 너와 나 우리 모두가, 한 가지 동: 함께 어울려 행복한 시간을 만드는 이곳은 특별한 커피 전문점 하삼동 커피입니다’


하삼동 커피가 처음 생겼을 때 브랜드 이름이 왜 저렇게 촌스러울까? 사람 이름인가 생각했다. 좋은 뜻을 가진 데다가 주인장의 말투나 표정, 행동 모두가 브랜드 이름처럼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찾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이치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평가되었는지 어떤 사람으로 평가될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커피 마시러 갔다가 저녁 내내 기분이 좋아지는 마법을 선물로 받았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이 있다. 들어서 기분 좋을 말만 하자. 주인장의 행동에 손님들의 칭찬 세례가 쏟아졌으니 그 역시 기분이 좋을 터이다. 커피집도 날로 번창하길 바란다. 일부러 쥐어짜는 가짜 마음이 아닌 표정과 말투에서 묻어나는 진짜 마음은 사람을 유쾌하게 만든다. 하삼동 마법을 나도 전파해야겠다. 돈 드는 일도 아니니까.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https://omn.kr/2fr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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