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끈뜨끈한 굴국밥 먹고 힘내세예!!
전국 기온이 많이 떨어진다는 일기 예보가 있었다. 정오경에 실내 공기를 정화하기 위해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바깥 날씨가 생각했던 것보다 쌀쌀하지 않았다. 집안도 따뜻한 편이었다.
남편을 3시에 출근시키고 나도 곧이어 집을 나섰다. 3시 30분에 예약한 통증의학과에 가기 위해서였다. 차를 운전해서 가기 때문에 일기 예보에 신경 쓰지 않고 평상복에 조끼만 간단히 걸치고 출발하였다.
병원에서 한 시간가량 주사 치료와 물리 치료를 받고 나왔다. 주차장으로 가는 몇 걸음에 으슬으슬 한기가 들었다. 내가 입은 얇은 가을옷은 차가운 바람을 막아주지는 못했다. 얇은 패딩이라도 걸치고 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후회가 밀려왔다. 얼른 집으로 가는 수밖에 도리가 없어 급히 운전대를 잡았다. 기온이 뚝 떨어진다더니 라디오에서 날씨에 딱 맞는 주제인 ‘찬 바람이 불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찬바람이 불면 어떤 음식이 먹고 싶은가에 대해 청취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였다. 팥칼국수, 순댓국, 닭개장, 물곰탕, 잔치국수 등 뜨끈한 국물 요리들이 사연으로 올라왔다. 몸이 바르르 떨리다 못해 몸속으로 한기가 전해져왔다. 뜨끈한 국물로 몸을 달래고 싶었다.
몇 달 동안 치료 중인 왼쪽 어깨 통증이 날이 차가워지니 더욱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라디오에서는 국물 요리가 자꾸만 들려오고 있었다. ‘가까운 식당에 순댓국을 먹으러 갈까?’ ‘집 앞 분식점에 가서 만둣국을 먹을까?’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리에서 고추잠자리처럼 맴돌았다. 그때 문득 한 가지 음식이 떠올랐다.
지난 주, 남편과 굴국밥을 먹기 위해 동네 식당에 갔다. 날씨가 서늘해지니 뜨끈한 메뉴가 생각이 난 터였다.
“사장님, 굴국밥 두 개 주세요.”
“아이고, 죄송하지만 굴은 10월 23일이나 되어야 나옵니다. 계절 메뉴라 지금은 주문이 안 됩니다. 일주일 후부터 됩니다.”
“아~ 그래요? 그러면 김치말이 묵밥 뜨끈하게 해서 두 그릇 주세요.”
시린 어깨를 오른손으로 감싸 쥐면서 운전을 해서 식당으로 갔다. 이제 막 브레이크 타임이 끝난 식당은 아직 한산했다. 내가 첫 손님이었다. 굴이 나온다는 23일이 지났으니 자신 있게 주문했다.
“사장님, 여기 매생이 굴국밥 하나만 주세요!”
5분도 채 되지 않아 뜨끈뜨끈한 굴국밥이 나왔다. 국대접을 손으로 만져보니 따뜻했다. 굴과 매생이를 기본으로 하여 미역을 얇게 잘라 끓인 굴국에 밥 한 공기를 통째로 넣고 말았다. 원래 한 공기를 다 먹지 못하지만, 이번만큼은 싹싹 비울 자신이 있었다.
한 숟갈 두 숟갈 입으로 들어가는 굴국밥이 허해진 속을 뜨뜻하게 데워주었다.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나니 시리던 어깨도 말끔히 사라졌다. 반찬으로 나온 무김치와 그 많던 국이 다 사라지고 빈 대접에는 국물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식당에 처음으로 간 것은 이태 전이었다. 마트에 가다가 보면 늘 마주치는 식당이었다. 한옥의 운치를 그대로 살린 식당이라 왠지 음식값이 비쌀 것 같아서 한 번도 들어가 보질 못하였다. 비싸 본들 얼마나 비싸겠냐는 생각에 남편과 의기양양하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날 먹은 음식은 문어 삼합이었다. 얇게 썬 문어 숙회와 반질반질 윤기가 졸졸 흐르는 수육이 먹음직스럽게 접시에 담겨 있었다. 깻잎과 조미하지 않은 구운 김에 문어와 수육 한 점을 참기름 장에 콕 찍어 올리고 무말랭이 김치를 곁들여 싸서 먹었다. 맛은 환상적이었다. 가격도 예상보다 비싸지 않았다. 음식은 입맛을 사로잡고 친절한 사장님과 직원은 우리의 발길을 머물게 하는 식당은 그때부터 우리 부부의 최애 맛집이 되었다.
이제 곧 겨울이 시작된다. 날씨가 차가울 때 뜨끈한 국물 요리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갑자기 찾아오는 한기도 물러나게 만든 매생이 굴국밥은 마음마저 따뜻하게 데워준 겨울 맛이다. 뜨끈한 굴국밥 한 뚝배기 하실래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