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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꿀맛' 소확행 이룬 가을나들이

군위 삼국유사 테마파크에 다녀오다

by 오즈의 마법사

연이어 비가 오더니 잿빛 하늘에 기분마저 뿌옇게 흐리기만 하던 가을이었다. 오래간만에 높고 파란 가을 하늘을 보니 마음은 둥둥 떠다니는 하얀 뭉게구름이었다.


“내일 나 통으로 쉬니까 어디 가고 싶은 곳 있는지 생각해 봐.”


지난 금요일 출근하던 남편이 한마디 던졌다. 남편은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서 겹벌이 중이다. 통으로 쉰다는 것은 오전, 오후 모두 출근을 안 해도 된다는 뜻이다. 하루를 온전히 쉬는 것이니 가을 나들이를 가면 좋겠다는 생각에 입꼬리가 나도 모르게 실룩거렸다.


나들이도 자주 나가는 사람이라야 지금 이맘때면 어디가 좋은지를 알 수 있는 법이다. 외출도 거의 하지 않고 인터넷 검색도 잘 하지 않는 ‘집순이’인 나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과제이다. 강의를 듣고 글을 다 쓰고 난 뒤 인터넷을 띄웠지만 무엇을 검색할지 커서만 깜빡거릴 뿐이었다. 그때 며칠 전 네거리에서 본 현수막 하나가 떠올랐다. 바로 ‘군위 바비큐 축제’였다.

곧바로 ‘군위 바비큐 축제’를 검색했다. 11월 1일에서 2일까지 삼국유사 테마파크에서 이틀간 BBQ 축제가 열린다는 것이다. 마침 남편이 쉰다는 날이 1일이었다. 밤늦게 퇴근해 온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군위, 좋네. 대구에서 시간도 1시간 정도면 갈 수 있고, 바비큐 파티도 맛있겠다. 내일 가자.”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 군위로 갈 채비를 하였다. 내비게이션을 검색해보니 1시간 10분이 소요되는 거리였다. 그 시간이면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고 드라이브하기에도 적당했다. 남편이 밤낮으로 일을 하므로 가까운 거리라도 나들이를 잘 갈 수가 없다. 마음이 편해야 다녀올 수 있는데 오후에 출근해야 하는 부담이 있으면 즐기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이번 나들이는 더욱 설렜다. 지난 9월에 어머님을 뵈러 추모공원에 다녀온 것이 마지막 나들이였다. 오롯이 부부를 위한 시간을 가진다고 생각하니 기쁨과 설렘에 가슴이 요동쳤다.

차를 몰고 군위로 가는 길은 한적했다. 하늘은 물감을 타 놓은 듯 파랬고, 길가의 나무들은 울긋불긋 예쁜 옷으로 갈아입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내 마음처럼 살랑거렸다. 구불구불 산길을 돌아가니 삼국유사 테마파크로 들어가는 작은 터널이 나왔다.


“왠지 저 터널을 통과하면 지금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로 들어갈 것 같아. 마치 과거로 들어가는 관문 같은걸.”


글을 쓰는 나보다 더 감성이 풍부한 남편이 운전하면서 말을 건넸다. 순간 과거로 들어가기라도 하듯 남편의 안경테가 햇볕에 반짝 빛났다.

군위 인각사는 일연 스님이 5년 동안 머물면서 삼국유사를 쓴 곳이다. 삼국유사는 고려 충렬왕 때 신라, 고구려, 백제 3국의 유사를 모아서 지은 역사서이다. 삼국유사 테마파크는 고려 시대 승려 일연이 삼국유사를 집필한 장소로 뜻을 기리기 위해 2020년도에 군위군이 개장한 곳이다. 교육체험 행사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동시에 제공한다. 날씨가 따뜻한 봄·여름에는 야외에서 신나게 놀 수 있는 가온 누리관, 해룡 물놀이장, 더욱 편리한 이동이 가능한 해룡 열차가 운행된다. 숙박 시설도 준비되어 있어 이용객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방문하면 놀이와 체험도 다양하게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장소가 될 것 같았다. 무엇보다 경치도 좋고 공기도 맑은 넓은 곳이어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뛰어놀기에도 좋다.


이번 바비큐 축제도 삼국유사 테마파크에서 진행하였다. 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입장료를 끊었다. 어른 입장료는 9천 원이었다. 입구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 기구와 야외 풀장이 있었다. 야외 풀장은 가을이어서 놀이터로 이용되고 있었다. 여기저기 해맑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꽃을 피웠다.

우리가 도착한 시각은 정오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어디선가 고기 굽는 냄새가 바람에 실려 코를 간질였다. 행사가 10시부터 진행된다더니 벌써 많은 사람이 와 있었다. 그리 북적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썰렁할 정도로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나들이하기에는 날씨만큼이나 딱 좋았다.


그곳에는 고기 구역, 바비큐 구역 등 다양한 먹거리와 공연장이 있었다.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설레는 마음으로 우리 부부는 고기 구역으로 갔다. 군위에서 생산되는 삼겹살 두 팩과 목살 한 팩을 샀다. 부식은 따로 값을 내고 원하는 만큼 사면 되었다. 우리는 김치와 채소 쌈을 사서 준비된 야외 자리로 갔다. 상차림 비는 4천 원인데 소금과 쌈장 그리고 고기를 구울 부탄가스와 집게를 나누어주었다. 바깥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이 몇 년 만의 일인지 꿈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고기를 굽던 남편이 말했다.


“젊었을 때는 캠핑도 자주 다녔는데 이게 얼마만의 일이야?”

“그러게. 우린 시간도 잘 없고 나이도 들어서 집에서 먹는 게 최고였지. 오늘 이렇게 바깥에서 사람들 구경도 하고 바람도 맞으며 자연에서 고기도 구워 먹으니 정말 좋아.”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며 먹으니 인생이 꿀맛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매일 한가해서 이런 날을 자주 즐겼다면 그 맛을 느껴보지 못했을 터이다. 그 순간만은 사소한 일상에서 얻는 소중함이 있었다.

고기로 배를 불리고 여기저기 시식코너를 돌며 우유도 마시고 빵도 먹었다. 넓은 공원을 여유롭게 손을 잡고 산책했다. 바람을 맞으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 쉬었다. 바람이 부는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비워지고 정신이 맑아졌다. 자연이 주는 위로였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이 말했다.


“11월에는 신입 교육이 있어서 쉬는 날이 없어. 25일이 내가 쉬는 날이야.”

“아이고, 힘들겠네. 오전에도 계속 일이 있는 거야?”

“오전에는 일을 조금 줄여 놨어. 무리하면 안 되니까 팀원들에게 배정해 놨으니 걱정하지 마.”


앞으로 3주일이나 쉬는 날이 없다면 하루 푹 쉬는 것이 마땅할 터, 괜히 힘들게 한 건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겨울이 오기 전 막바지 가을 나들이를 함께 해 준 남편이 고마웠다.


“자기야, 덕분에 즐거운 하루 보냈어. 마음 써 주어서 고마워.”

“당신이 즐거웠으면 난 그거 하나로 돼. 나도 고마워.”


가을의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햇살을 받은 하루가 우리 부부에겐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에 실렸습니다. 엄지척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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