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와도, 봄이 아니었던

by 이음

하루가 멀다 하고 사망자 수가 폭증했다.
도시는 잠들었고,

사람들은 집 안에 갇혔다.
집에만 있어야 하는 날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뉴스에선 연일 사망자 숫자를 발표했다.

사람 하나하나 그냥 숫자 하나가 되어

매일같이 만 단위로 갱신되는데 믿기지가 않았다.

한국은 연초부터 조심하고 있었는데

영국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다가

결국 이렇게 무너진 거다.

내가 생각했던 영국 유학은 이게 아니었다.


그 와중에 런던은 봄이 오고 있었다.

햇살은 따뜻했고, 벚꽃은 피었고,

공기는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그 모든 걸 느낄 수 없었다.

기숙사는 마치 감옥 같았다.

메일함에는 매일같이 경고 알림이 쏟아졌다.

“기숙사 내 확진자가 발생했어요”
“공용 공간 즉시 폐쇄합니다”
“세탁실 이용은 1인씩만 허용합니다”


이젠 마트에 한번 가려면

마스크에 비닐장갑, 안경까지 쓰고

돌아오면 바로 샤워를 하는 게 당연해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무서웠던 건

걸려도, 치료받을 수 없다는 거였다.

영국 의료시스템은 이미 포화 상태였다.

숨이 넘어가기 전에는 응급실에 가도

“집에서 대기하라”는 말밖에 듣지 못한다고 했다.

그게 더 무서웠다.


기숙사 복도에서는 하나 둘,

중국 학생들이 먼저 떠났다.

짐은 그대로 둔 채, 트렁크 하나만 들고

공항으로 가는 그 모습이 창밖으로 보였다.

어쩐지 곱게 보이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멘붕이었다.

같은 반 친구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갔고

남겨진 학생은 점점 줄어들었다.

특히 비행기 운행이 취소되면서

집에 돌아갈 수 없게 된 친구들은

기숙사 복도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

그 불안한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아침 일찍 마트에 가도

라면도, 화장지도, 파스타도 없었다.

아마존에서 주문한 물건은 연기되거나 취소되었고

점점, 불안이 현실이 되기 시작했다.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한 ‘기본’이 무너지면

마음도 같이 무너지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에 있는 친구의 메시지.

영국 지방에 있는 아시안 마트에서
이것저것 주문해 봤어.
며칠 걸릴 수는 있는데, 잘 도착했으면 좋겠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기숙사 리셉션에 작은 박스 하나가 도착했다.

익숙한 글자가 적힌 컵라면,

한 모금 마시면 눈물이 터질 것 같은 한국 음료수.

그 박스를 열자마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그 순간 알았다.

내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얼마나 무서웠는지.

그리고, 얼마나 그리웠는지.

그제야 문득, '내 선택이 맞았던 건가'

그런 의심이 처음으로 마음을 스쳤다.


그렇게 나는 감옥에 수감된 죄수처럼

달력을 보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창밖엔 봄이 와 있었지만,

내 작은 방안은 여전히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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