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her

by 최희재

스파이크 존즈 감독
호아킨 피닉스, 에이미 아담스, 루니 마라, 스칼릿 요한슨 주연

사랑이라는 관계에서 한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을 그려낸 아름다운 작품. 그 안에서 마주하는 관계에서의 불편함과 감당해야 할 무게, 타자를 바라보는 시선 등 많은 물음표를 던져주는 영화이다. 테오도르는 남의 감정을 잘 읽으며 편지는 써주는 대필 작가이지만 정작 자신의 감정과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미성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내와는 별거 중인 채로 관계의 끝남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외롭게 살아간다. 그러던 중 스스로 진화하는 AI인공지능인 '사만다'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테오도르는 자신이 통제가능한, 있는 그대로 봐주는 사만다에게 안정감과 편함을 느끼며 쉽게 사랑에 빠진다. 사만다는 완벽하게 테오도르를 이해하며 둘의 관계는 갈등이 없는 아주 편안함이 지속된다. 테오도르에게 사만다란 '피난처', 혹은 '안전지대' 였던 것. 하지만 사만다가 점차 진화하면서 둘의 갈등은 시작되고 진정한 관계로서 마주하게 된다. 사만다는 더 이상 단순한 AI인공지능이 아닌 통제불가능한, 하나의 존재로서의 타자가 된다. 테오도르와 캐서린과의 대화에서 알 수 있는 테오도르는 타자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이며, 감정표현에 서툴고, 갈등에서 오는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사만다와의 갈등에서는 사만다를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과 마주하고 사랑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사만다'가 AI인공지능이었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자신과의 다르게 이루어진 타자. 그래서 그는 사만다가 8316명과 동시에 대화하고 641명과 동시에 사랑하고 있다는 말에서 분노보단 자신과의 사랑은 특별하지 않은 건지 확인한다. 그리고 사만다의 떠남을 그저 받아들인다. 그것은 타자를 온전히 사랑하고 보내줄 수 있는 연습이자 구원이었다. 그래서 그는 사만다가 떠나고 캐서린과의 이별도 받아들이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랑했었음을 메시지로 보낸다.

타자를 이해하지 못해도 받아들인다는 것. 그것은 상대방이 641명의 사람과 동시에 사랑하고 있어도 나와의 사랑이 진심이라는 걸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진정한 의미에서 실천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사랑이 자신이 해석하는 의미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며 그럼에도 품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물론 앞에 말한 영역까지 간다면 사람의 범주를 넘어선 거나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지키며 그 영역까지 도달하고자 하는 마음, 그 방향은 항상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영화를 보며 한 가지 더 생각해봐야 할 것은 사랑이란 관계에서 불편함과 편함의 의미이다. 많은 사람들은 관계에서 자신의 방식을 벗어났을 때 불편함을 느끼고 감당하지 못할 때가 많다. 사랑이 불편함으로 다가올 때,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감당할 것이냐, 내려놓을 것이냐. 그 과정에서 '불편함은 곧 사랑이 아니다'라고 바라보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불편함이란 감정의 내면에는 이런 욕구가 있을 것이다. 상황을 통제하고 싶다. 나를 인정해주고 받아주길 바란다. 상처받고 싶지 않다.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이러한 욕구들은 사랑이란 감정이 깊어질수록 더욱더 선명해지고 그것은 불편함으로 이어진다. 더 많이, 더 깊게 사랑할수록 그 감정이 만들어내는 불편함도 더욱 선명해진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편하다'라는 것은 그만큼 관계에서 감정적 거리가 멀다라고도 볼 수 있다. 불편하기 때문에 사랑이다. 깊은 관계에서 진정한 편함은 많은 갈등 후에 찾아오는 것이 필연적이다. 갈등이 전혀 없는 관계라면, 그 깊이에 대해 한 번쯤 되물어볼 필요가 있다. 그럴 수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둘 다 매우 성숙해서 갈등을 조율하는 능력이 탁월한 경우이거나, 감정의 깊이가 얕아 마찰이 생기지 않는 피상적인 관계일 수 있다. 현실에선 안타깝게도 후자의 경우가 더 많아 보인다. 사랑이 불편함이 되었을 때, 관계에서 헤어짐을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건 누구라도 그렇다. 그럴 때면 한 번씩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자. 사랑이 주는 불편함을 감당하려 한 적이 있었는지, 그 감당하려던 불편함의 크기는 어느 정도였는지, 사랑을 편안하고 좋은 감정의 교류라고만 생각한 적은 없는지.

영화 Her는 단지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타자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사랑 안에서 성장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철학적인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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