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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쎄오, 지글거림 속의 노란 달

요리의 도

by 나일주

반쎄오, 지글거림 속의 노란 달


베트남의 거리를 걷다 보면 먼저 귀가 먹는다. 오토바이의 경적, 상인의 흥정소리, 그리고 그 사이를 뚫고 나오는 지글지글한 소리 하나.


“쎄오—”


그 순간, 향긋한 기름 냄새와 함께 노란 반달 모양의 무언가가 팬 위에서 피어오른다. 그 이름이 바로 반쎄오(Bánh Xèo), 소리로 불리는 요리다.


“반(Bánh)”은 ‘케이크’나 ‘부침’을 뜻하고, “쎄오(Xèo)”는 기름 위에 반죽이 닿을 때 나는 소리를 가리킨다. 말하자면, 반쎄오는 소리를 요리한 음식이다.




길거리에서 태어난 달빛


반쎄오는 18세기 남부 메콩 델타에서 태어났다. 쌀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남은 쌀가루에 코코넛 밀크를 섞어 반죽을 만들었다. 그 지글거림은 곧 마을의 신호음, 공동체의 알람 소리가 되었다.


“쎄오” 하는 소리가 들리면 사람들은 냄새를 따라 모여들었다. 그래서 지금도 호치민의 거리에서는 손님이 없어도 팬에 반죽을 붓는다. 그 소리만으로도 손님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바삭함과 신선함의 철학


반쎄오의 철학은 대비의 미학이다. 겉은 얇고 바삭한데, 속은 따뜻하고 촉촉하다. 기름의 온도는 높지도, 낮지도 않아야 한다. 그 섬세한 순간의 온도, 바로 그것이 ‘쎄오’의 영혼이다.


기름진 요리를 먹으며도 느끼하지 않은 이유는 허브와 채소의 존재 때문이다. 상추, 민트, 고수, 깻잎, 바질이 불과 물의 기운을 조화시킨다. 바삭함과 풋풋함, 뜨거움과 시원함이 동시에 입안에 펼쳐지는 순간, 우리는 한 접시 속에서 조화의 철학을 맛본다.


반쎄오의 얼굴들


남부의 반쎄오는 대담하고 크다. 중부는 작고 단단하며, 북부는 고소하고 전(煎) 같다. 같은 이름, 다른 성격 — 이것이 베트남의 지역성과 다양성이다. 마치 한 가족 안의 세대가 서로 닮은 듯 다른 것처럼, 반쎄오는 지역의 철학을 담은 음식이다.


노란 달의 비밀


반쎄오의 노란색은 강황(Turmeric)에서 나온다. 그 색은 태양과 건강, 풍요의 상징이다. 강황은 몸을 따뜻하게 하는 약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반쎄오는 맛과 약, 미학과 실용이 교차하는 음식이다.


길거리의 팬 위에서 반으로 접힌 그 모습은 마치 하늘의 달이 기름 위에 내려앉은 형상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반쎄오를 “지글거리는 달”이라고 부른다.


여행자가 만나는 반쎄오


반쎄오는 여행자의 첫인상이다. 호치민의 노천식당, 다낭의 해변, 하노이의 시장… 어디서나 만날 수 있지만, 언제나 현지의 공기를 품고 있다.유럽의 크레이프가 카페의 예술이라면, 반쎄오는 거리의 즉흥예술이다. 팬 위의 온도와 손끝의 감각으로 그날의 기분을 반죽하는 요리 — 그것이 반쎄오다.


혀끝에 남는 오감의 교향곡


첫 입에 들려오는 소리, “빠삭.” 숙주의 아삭함, 새우의 단맛, 돼지고기의 고소함, 그리고 마지막에 감도는 느억짬(nước chấm)소스의 새콤달콤함. 이것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오감이 연주하는 음악이다. 그래서 베트남 사람들은 말한다.


“좋은 반쎄오는 귀로 먼저 먹는다.”


재료와 조리의 지혜


쌀가루, 강황, 코코넛 밀크 — 이것이 반쎄오의 기본 반죽이다. 속은 새우·돼지고기·숙주가 기본이지만, 닭고기나 버섯, 두부로도 변주할 수 있다.온도는 180도, 시간은 단 몇 초. 반죽을 붓고 15초 안에 접지 않으면 ‘쎄오’가 ‘쩌걱’이 된다. 인내보다 순간의 결단, 계획보다 손의 감각이 중요하다.


현지인에게 반쎄오란


베트남 사람들에게 반쎄오는 ‘같이 앉아 이야기하자’는 초대의 언어다. 팬 앞에서 기다리며 나누는 수다, 그것이 베트남식 소통이다. 한 장이 부쳐지는 동안의 시간, 그것이 사람을 이어준다.


그래서 반쎄오는 혼자 먹지 않는 음식이다. 함께 부치고, 함께 나누는 사회적 음식. 지글거림은 소리로 이어지는 관계의 상징이다.




지글거림의 철학


반쎄오는 지글거리는 소리를 이름으로 가진 음식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불 앞에서 끊임없이 선택하고, 온도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지나치면 타고, 부족하면 설다. 적당한 순간, 바로 그때 인생도 가장 바삭하다.

팬 위에서 반쎄오가 부풀어 오르고 접히는 순간, 우리는 자신의 리듬을 듣는다.


“쎄오—”


그건 단순한 조리음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선언, 일상의 음악이다.

그래서 반쎄오를 먹는다는 건, 결국 자신의 달빛을 맛보는 일이다. 불의 뜨거움 속에서, 기름의 흔들림 속에서, 바삭하게 접힌 노란 달이 말한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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