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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브즈, 태양을 굽는 빵

요리의 도

by 나일주

쿠브즈 —태양을 굽는 빵


아침의 모로코는 빵 굽는 냄새로 시작된다. 진한 커피와 올리브의 향이 뒤섞인 골목 끝, 동그란 빵 하나가 오븐 속에서 천천히 부풀어 오른다. 불빛 속에서 빵의 표면은 금빛으로 변하고, 마치 태양이 새로이 구워지는 듯하다.


그 이름은 쿠브즈(خبز, Khobz) — 모로코 사람들에게 ‘빵’이라 하면 곧 이 빵을 뜻한다. 아랍어 단어 “خبز”**의 현지 발음은 “후브즈(khubz)” 혹은 “크흐브즈(khobz)”에 가깝다. (여기에서는 우리나라 위키에서 사용하는 쿠브즈를 쓰기로 한다.)


모로코의 쿠브즈는 단순한 탄수화물이 아니라, 삶의 질서와 관계의 상징이다. 하루의 리듬이 이 둥근 빵 하나에 맞춰 시작되고, 끝난다.




흙과 불, 그리고 공동의 오븐

쿠브즈는 공동체의 불에서 태어난 빵이다. 예전 모로코 마을에는 집마다 오븐이 없었다. 아침이면 여자들이 밀가루 반죽을 들고 ‘페란(ferran)’이라 불리는 공동 화덕으로 향했다.


각자 반죽에 자신만의 표시를 새겨 넣고, 굽는 동안 이웃들과 담소를 나눴다. 누구의 반죽이 먼저 부풀었는지, 오늘은 소금이 많았는지, 아이가 학교에 갔는지— 그 모든 이야기가 화덕 앞에서 익어갔다.


빵이 완성되면 사람들은 손수건에 싸서 집으로 돌아갔다. 갓 구운 쿠브즈의 온기는 그날의 평화와 같았다. 그래서 쿠브즈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함께 산다는 감각”의 증거였다.


빵을 나눈다는 건 곧 불과 시간을 공유한다는 뜻이었다.


밀과 태양의 역사

모로코는 아틀라스 산맥과 사하라의 모래바람이 만나는 땅이다. 이 척박한 자연 속에서 밀은 신의 선물이었다.

로마 시대부터 북아프리카는 지중해의 곡창지대였고, 빵은 생존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모로코인에게 빵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곡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태양의 조각, 신의 축복이 식탁 위로 내려앉은 형태였다.


쿠브즈의 둥근 모양은 태양과 닮았다. 사막의 뜨거운 열기를 머금은 밀, 거기서 나온 반죽이 불 속에서 다시 태양의 색으로 변한다.


그리하여 모로코 사람들은 매일 아침 태양을 다시 굽는다.
그것이 쿠브즈의 시학이다.


만드는 법 — 단순함 속의 질서

쿠브즈의 재료는 놀라울 만큼 간단하다.
밀가루, 소금, 물, 효모. 그리고 세몰리나. 세몰리나(Semolina)는 듀럼 밀을 부순 밀가루다.

이 다섯 가지로 세상의 대부분의 빵이 만들어지지만, 쿠브즈는 그중에서도 가장 절제된 형태다.


반죽은 손끝으로 천천히 눌러가며 반죽한다. 힘이 아니라 시간과 손의 리듬이 반죽을 완성시킨다. 하루 종일 태양 아래 마른 손이지만, 그 손끝은 빵의 숨결을 알아챈다.


“지금이 딱이다.”


그 짧은 직감의 순간에 반죽은 휴식으로 들어간다.


굽는 방식도 단순하다. 뜨겁게 달군 돌 오븐에 반죽을 넣고, 표면이 갈색으로 물들면 완성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다. 그 단면을 보면 수많은 기포가 얇은 막으로 엮여 있다.

그것은 마치 공동체의 조직처럼, 서로 다른 숨이 한 덩어리로 엮인 모습이다.


쿠브즈의 철학 — 단순함의 질서

쿠브즈는 소박함의 철학이다. 모로코 사람들은 “빵 없이 식사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은 단순히 ‘탄수화물이 필요하다’는 뜻이 아니다. 빵이 없다는 것은 질서와 중심이 없다는 의미다. 식탁의 중심이 빵인 이유는, 그것이 공유와 평등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빵을 손으로 뜯어 먹는다. 숟가락이나 포크보다 먼저 손이 간다. 그리고 한 사람의 손이 타진(tagine) 접시 위의 소스를 찍으면, 다른 사람들은 기다린다. 이 짧은 기다림 속에 예의와 신뢰의 윤리가 깃든다. 즉, 쿠브즈는 손의 도(道)다.


또한, 쿠브즈는 시간의 철학이기도 하다. 효모는 빠르지 않다. 급한 사람은 결코 좋은 빵을 만들 수 없다. 숙성과 발효는 기다림을 요구하고, 기다림은 관계의 리듬을 닮았다.

쿠브즈를 만드는 사람은 시간을 굽는 사람이다.


여행자가 만나는 쿠브즈

라바트나 마라케시의 골목을 걷다 보면, 눈앞에 흙빛 화덕이 나타난다. 불길이 타오르고, 그 앞에 머리를 두른 여인이 반죽을 넣는다. 곧 빵이 부풀며 오븐 안에서 ‘두 번째 태양’이 떠오른다.


그 냄새는 달콤하면서도 흙냄새가 섞여 있다. 여행자는 그 냄새를 맡는 순간, “이곳의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노점의 작은 상 위에는 갓 구운 쿠브즈가 쌓여 있다. 겉은 거칠고, 속은 놀랍게 부드럽다. 한 조각을 찢어 타진의 소스에 찍어 먹으면, 매운 향신료가 밀의 단맛을 불러낸다. 그 순간 여행자는 깨닫는다. 이 빵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모로코라는 공동체의 언어’라는 것을.


사하라 사막의 캠프에서도 쿠브즈는 빠지지 않는다. 철판 위에서 모래바람을 막으며 구워내는 사막의 쿠브즈는 거칠고 투박하지만, 그 안에는 불, 흙, 바람, 사람이 함께 들어 있다.


여행자는 그것을 한입 베어 물며 자연과 인간이 맺은 오래된 계약을 맛본다.


현지인의 삶 속에서

모로코 사람들에게 쿠브즈는 식기의 역할도 한다. 숟가락보다 빵을 더 많이 사용한다. 빵은 그들의 손과 같다. 그 손으로 타진의 소스를 떠먹고, 올리브를 올리며, 이웃의 접시에 빵을 나눠준다.


가정에서는 매일 빵을 굽는다. 아침의 냄새는 커피보다 빵의 향이 먼저다. 학교 가는 아이들은 종종 빵 한 조각을 들고 길을 걷는다. 그 빵 한 조각은 그날의 에너지이자, 집의 온도다.


빵이 남으면 새에게 주거나, 땅에 묻지 않고 높은 곳에 올려둔다. 쿠브즈는 신의 선물로 여겨지기에 “함부로 버리지 않는 음식”이다. 그것은 음식에 대한 경외이자, 삶에 대한 예의다.


쿠브즈의 도(道)

쿠브즈는 묻는다. “너는 너의 불을 어떻게 다루는가?” 빵은 불의 산물이다. 불이 너무 세면 타고, 약하면 익지 않는다. 좋은 빵은 적당한 불과 기다림의 합의로 완성된다. 그것이 바로 요리의 도, 곧 삶의 균형의 기술이다.

모로코의 호브즈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하루의 질서는 불과 손끝에서 태어난다. 나를 굽는 동안, 너는 네 삶을 굽고 있다.”




태양을 나누는 기술

쿠브즈는 단순한 빵이 아니다. 그것은 태양을 나누는 기술, 공존의 방식이다. 빵을 굽는다는 건 곧 관계를 굽는 일이다. 불은 뜨겁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데우며 산다.


하루의 시작에 태양을 굽고, 하루의 끝에 그 빵을 나누는 사람들. 그들이 사는 세상은 가난하지만 따뜻하다. 모로코의 쿠브즈는 오늘도 말없이 삶의 도를 가르친다.


“뜨겁게 굽되, 태우지 말라. 나누되, 남김없이 베풀라. 그러면 너의 식탁 위에도 태양이 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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