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맛
- 접속사 아닌 접속사들, 말의 뒤를 조용히 이어붙이다
공식 접속사들의 활약도 인상 깊었지만,우리가 진짜 자주 쓰는 건 따로 있다. 문법 시간엔 안 배웠는데, 대화할 땐 입에 착 달라붙는 말들.
‘아무튼’, ‘뭐랄까’, ‘결국’, ‘근데 말이야’, ‘막’, ‘그니까’, 그리고 “음…”까지.
이 친구들은 접속사로 등록되지 않았지만, 현장에서 가장 많이 일하는 실무형 언어들이다.
그야말로 비정규직 접속사 연합.
오늘은 그들의 활약상을 따라가 보자.
‘아무튼’은 말 많은 자의 피날레다.
‘아무튼’은 말이 꼬였을 때 꺼내는 마법 같은 단어다.
“뭐, 그렇게 됐고… 아무튼 내가 그때 정말…”
앞말을 다 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느낌. 이 단어가 등장하면 보통 “이제 본론 간다”는 뜻이다. 하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선 본론이 더 길다. 듣는 사람들은 속으로 TMI를 외치지만 아랑곳 하지않는다.
가끔 ‘아무튼’을 너무 자주 쓰는 사람은 자신도 어디서부터 말했는지 잊는다.
“내가 뭐 얘기했지? 아 맞다, 아무튼…”
접속사라기보다 대화 중 리셋 버튼에 가깝다.
‘뭐랄까’는 말할 건데, 말은 안 할 거야라는 묘한 말이다.
‘뭐랄까’는 표현할 말이 없을 때, 혹은 말은 있는데 책임지긴 싫을 때 등장한다.
“그 사람… 뭐랄까, 그냥 좀… 있어.”
‘뭐랄까’가 나온 순간, 분위기는 20%쯤 심각해진다. 말은 흐리는데 의미는 짙다.
이 말은 보통 눈빛과 함께 한다. “뭐랄까…” 하면서 눈동자가 위로 올라가면, 그건 3초 후 등장할 핵심 감정의 예고편이다.
직설을 피해 도는 말. 한국어만이 가진 독특한 회피형 접속 장치.
‘결국’은 정리인 듯, 설득인 듯, 체념인 듯 한 말이다.
‘결국’은 마무리의 포즈를 취하지만, 사실은 감정의 쐐기를 박는다.
“결국, 난 또 참았지.”
이 한 마디에 억울함, 인내, 단념이 전부 들어간다.
논리적인 척하면서 감정의 승부수를 던지는 말이다. “결국, 그 얘길 하고 싶었던 거잖아.” 이럴 땐 접속사가 아니라 속마음의 자막이다.
‘근데 말이야’는 부드러운 공격, 아니면 슬쩍 뒤통수의 명인이다.
‘근데 말이야’는 친근한 듯 시작하지만, 뒤에 따라오는 말은 보통 문제 제기다.
“근데 말이야, 그거 네가 한 거 맞아?”
말끝은 평온한데, 내용은 가볍지 않다.
이 접속사는 마치 회의에서 “제가 감히 말씀드리자면…” 하고 폭탄 의견 던지는 사람과 같다. 말투는 부드럽고 시작은 느슨하지만,결론은 정확히 꽂힌다.
‘막’은 과장과 에너지의 접속사다.
‘막’은 감정이 벅차서 디테일이 망가질 때 등장한다.
“걔가 막 울고, 막 뛰고, 막… 그냥 난리였어.”
이 단어 하나로 사건의 톤이 급상승한다. 막 쓰이지만, 없으면 허전한 표현.
‘막’은 드라마의 리와인드 장면용 접속사다. 구체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느낌은 아주 크다. 말 그대로 감정의 폭탄을 터뜨리는 역할.
‘음…’은 말과 생각 사이의 쿠션.
‘음…’은 말하려다가 멈춘 자리. 그건 침묵이 아니라 생각 중이라는 사운드 이펙트다.
“음… 그건 좀 아닌 것 같고…”
이건 딱히 접속사도 아니지만, 없으면 말이 너무 건조하다.
대화의 윤활유, 혹은 '시간 끌기용 접속사'.정말 할 말 없을 땐 이것만 반복해도 된다.
“음… 음… 음…”
상대가 참지 못하고 먼저 말을 시작한다.
우리가 문장을 이어가는 방식은 꼭 정해진 틀에 있지 않다. 격식을 갖춘 ‘그러나’, ‘그래도’도 중요하지만, ‘아무튼’, ‘뭐랄까’, ‘막’ 같은 말맛 전담 표현들은 실제로 우리 일상의 대화에 더 많이 등장한다.
그들은 문법책에는 없지만, 우리의 감정을 가로채고, 우리의 머뭇거림을 대신 말해준다.
접속사는 단지 단어가 아니라 사람의 숨결이 섞인 기술이다. 말을 유창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말을 사람답게 만드는 장치.
그러니까, 말하자면…
뭐랄까, 이런 접속사들이 있어서
우리의 말이
좀 더 웃기고,
좀 더 따뜻하고,
좀 더 살만한 것 같다.
아무튼, 그렇다.
접속사의 그림자에서, 말의 온기를 느껴 볼 수 있다고나 할까.
누군가와 30분만 얘기해보라 그리고 알아보라.
여러분들은 이런 접속사 아닌 접속사들이 없이도 말을 이어 갈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