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사의 마술 2

말맛

by 나일주

접속사의 마술 2

그런데, 게다가, 심지어, 하지만, 한편, 그러니까




접속사 얘기를 꺼낸 김에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가 요즘 가장 많이 쓰는 접속사는 ‘그런데’다.


자꾸만 뭔가를 말하고 나면, 그 다음에 반드시 뭔가 ‘그런데’ 하고 싶은 게 생긴다.


“나는 건강하다. 그런데 허리가 좀…”


“오늘 일찍 자야지. 그런데 넷플릭스가…”


아무리 결심을 단단히 해도, 이 ‘그런데’ 하나에 계획이 휘청이고, 마음이 흔들린다. 이쯤 되면 접속사가 아니라 인생의 변수다.




그런데’는 전환의 고수다.


슬쩍 말을 틀어버리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그 사람 참 괜찮더라. 그런데 말이야…”


그 ‘그런데’ 뒤에는 보통 결정적인 반전이 나온다. 칭찬의 분위기를 매끈하게 배반하는 접속사의 기술.


인간 관계의 고수가 쓰는 말, 바로 이것이다. 순진한 사람은 앞문장만 듣고 감동하지만, 경험 많은 사람은 ‘그런데’를 들을 때 이미 긴장한다.




게다가’는 뭔가를 점점 쌓아가는 접속사다.


주로 불평에 쓰인다.


“비도 오고, 게다가 우산도 없고, 게다가 버스도 끊기고.”


이쯤 되면, 이건 서술이 아니라 재난 보고다. 하지만 ‘게다가’가 꼭 나쁜 말만 잇는 건 아니다.


“맛집인데, 싸고, 게다가 친절해.”


이럴 땐 반대로 정보의 미끼가 계속 달린다. 듣다 보면 어느새 지갑을 꺼내고 있다.

(물론, 그 집은 가보면 그렇게 맛있진 않다.)




심지어’는 감정이 격해질 때 등장한다.


기본적으로 화가 좀 나 있어야 자연스럽다.


“나만 그런 줄 알았지? 심지어 팀장님도 몰랐대.”


이 접속사는 보통 비밀 병기처럼 꺼내진다. 말의 세기를 단박에 1.5배쯤 올리는 힘이 있다. 그리고 ‘심지어’는 대화의 클라이맥스를 책임진다.


“…심지어, 나 그날 생일이었거든.”


이 한 마디에 분위기는 숙연해지고, 대화의 판도는 완전히 바뀐다. 접속사가 아니라 드라마의 대사다.




하지만’은 문장 사이에 쓱 들어와, 분위기를 딱 바꾼다.


뭔가 말해놓고 나서, 정색할 때 쓰기 딱 좋은 접속사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납득은 어렵군요.”


그냥 ‘그러나’보다 말맛이 세고, ‘그런데’보다 약간 더 단호하다. 그리고 끝에 ‘말입니다’를 붙여도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말입니다…”


이건 그냥 접속사가 아니라, 말의 태도다. ‘하지만’이 나오면, 무슨 큰일이라도 발표될 것 같은 기운이 돌고, 상대는 살짝 움찔한다. 특히 회사 회의, 부모님의 한마디, 선배의 카톡에 쓰이면 분위기가 살짝 얼어붙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말을 자꾸 쓴다. 왜냐면, 이유를 말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은 항상 이유를 데리고 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대체로 우리 입장에선 꽤 그럴듯하다고 믿고 싶은 것들이다.




한편’은 엘리트다.


보통 보고서나 뉴스에서 주로 활약하며, 일상 대화에서는 조금 튀어 보인다.


“나는 그와 연락을 끊었다. 한편 그는 SNS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어딘가 있어 보인다. 균형 잡힌 시선 같은 느낌.하지만 친구랑 대화하다가 “한편 말이야…” 하고 말하면

“너 갑자기 왜 그래?”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그래서 ‘한편’은 주로 발표자나 기자들이 애용한다.

말을 고급지게 틀고 싶을 때 등장하는 접속사의 정장 버전.




그리고 우리의 또 다른 친구, ‘그러니까’.


이건 말의 마침표이자, 감정의 정리다.


그러니까, 내가 미안하다는 거야.”


…이 말을 들은 상대방은 보통 여전히 화가 나 있다. ‘그러니까’는 다정하게 말하면 변명이고,흥분해서 말하면 꼬투리다.


“그러니까, 그게 내 잘못은 아니라는 거지.”


네, 여러분. 이런 문장은 대부분 대화의 끝장을 본다.




접속사는 문장을 이어주는 동시에, 사람의 성격도 드러낸다.‘게다가’를 자주 쓰는 사람은 호소력이 강하고,‘한편’을 즐겨 쓰는 사람은 머릿속이 정리된 사람이며,‘심지어’를 자주 쓰는 사람은 약간 드라마틱하다.그리고 ‘그러니까’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은… 보통 설명이 길다. (끝날 줄 모른다.)


결국 인생은 접속사의 연속이다.


화해도, 후회도, 망설임도, 기쁨도 어떤 접속사 하나가 틀어주는 방향으로 간다.


‘그런데’ 때문에 일이 꼬이고,

‘게다가’ 덕분에 결정하고,

‘그래도’라고 말하며 버티고,

‘그래서’로 움직이고,
‘하지만’으로 새로 시작한다.


말이 이어지는 만큼, 삶도 이어진다. 그리고 말이 바뀌는 순간, 삶도 바뀐다.



오늘 당신은 어떤 접속사로 하루를 시작했는가?


'그리고 피곤하다'일 수도 있고,

'그러나 견딘다'일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심지어 재밌기까지 하다.


그러니까, 오늘도 접속사가 출현하는 문장을 하나 더 써보자.


그 문장 끝에 뭔가 좋은 일이 접속될지 누가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