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맛
접속사의 마술 1
-그리고, 그러나, 그래서, 그래도
삶은 언제나 '그리고'에서 다시 시작된다 (아마도 '그래도'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
문장을 쓸 때마다 나는 자주 접속사 앞에서 멈칫한다.
‘그리고’, ‘그러나’, ‘그래서’, 그리고 요즘 부쩍 마음이 가는 ‘그래도’.
짧디짧은 이 단어들이 문장의 방향을 틀고, 가끔은 인생의 방향까지도 살짝 비틀어 놓는 걸 보면, 작지만 맵다는 생각이 든다.
접속사는 화려하지 않다.
명사처럼 주어가 되지도 못하고, 형용사처럼 뽐내지도 않는다. 말하자면 문장 안의 ‘서포터즈’ 같은 존재다. 하지만 없으면 아쉽고, 있으면 흐름이 부드럽고, 잘 쓰면 글맛이 살아난다.
조연이지만, 명품 조연.
‘그리고’는 착하다. 정말 착하다.
뭔가를 끊지 않는다. 이어준다.
"나는 밤을 새웠다. 그리고 아침엔 회의를 갔다." …갔다고는 했지만, 정신은 놓고 갔다.
‘그리고’는 이런 피곤한 현실도 묵묵히 이어준다. 말을 끊지 않고 관계를 끊지 않고, 오늘을 내일로 잘 넘겨준다. 중요한 발표를 망치고도 "그래도 노력했잖아, 그리고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라고 말해주는 친구 같은 접속사다. 위로의 힘이 있다.
‘그러나’는 까칠하다. 아니, 현실적이다.
"나는 열심히 다이어트를 했다. 그러나, 치킨을 이길 순 없었다."
"비가 올 것 같았다. 그러나, 내 우산은 집에 있었다."
이 접속사는 감정을 직면하게 만든다. 변명과 합리화 사이에서, 적당히 ‘정신 차려’라고 속삭이는 존재다. 그래서 조금 얄밉지만, 꼭 필요한 접속사다. 인생도 항상 직진은 아니니까.
‘그래도’는 집요하다. 끈질기고, 어딘가 짠하다.
누가 봐도 망한 상황인데, 그래도 뭔가 해보겠다는 사람처럼.
"계획은 틀어졌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다 틀렸어. 그래도, 잘 자는 게 중요하지."
현실 부정이 아니라, 현실에 붙어 있는 낙관. ‘그래도’라는 말이 들어간 문장은 대부분 피식 웃게 만든다. 그건 이 접속사가 아주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포기할 타이밍을 잘 모르거나, 일부러 못 본 척 하는 사람처럼. 하지만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그래서’는 이야기의 엔진이다.
“그렇게 망설였어. 그래서 결국 질렀지. 카드값은 다음 달의 나에게 맡겼다.” ‘그래서’는 말에 책임을 지우고, 행동을 유도한다. 어떻게든 상황을 끝장 보게 만든다.
때론 무모하고, 때론 단호하다.
‘그래서’ 다음엔 보통 결과가 따라오고, 그 뒤에는 종종 후회가 살짝 따라온다. 하지만 덕분에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이게 된다. 그리고 (또다시 접속사 등장) 덕분에 이야기거리가 생긴다.
가끔은 생각과 감정 사이의 말이 끊길 때가 있다. 말이 이어지지 않는 날은 보통 커피도 안 마신 날이다. 아니면 말할 기운조차 없는 날. 그럴 때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도 접속사다. 감정과 감정 사이를 이을 말이 없으면, 마음도 흐르지 않는다.
그럴 땐 이렇게 해본다. 한 문장을 써 본다.
“나는 괜찮다.”
그리고 그 뒤에 접속사를 붙여본다.
“나는 괜찮다. 그리고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나는 괜찮다. 그러나 조금만 더 쉬고 싶다.”
“나는 괜찮다. 그래도 오늘 날씨는 좋다.”
“나는 괜찮다. 그래서 라면을 끓였다.”
이 짧은 접속사 하나가 문장을 살리고, 기분을 살리고, 어쩌면 나를 살려놓는다.
삶은 근사한 명언보다, 이런 사소한 말들이 조용히 이어붙여서 만들어진다.
‘그리고’는 관계를,
‘그러나’는 균형을,
‘그래도’는 희망을,
‘그래서’는 방향을 만들어낸다.
가끔은 우리의 인생이 온통 '그래도'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엉망인데 그래도 웃고, 피곤한데 그래도 가고, 후회하면서도 그래도 또 사랑한다.
어쩌면, 이게 우리가 말하는 방식이고, 사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접속사의 마술은 거창하지 않다. 그저, 이어서 살아가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