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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 속에서 빛난 부부의 용기(6번째 이야기)

by 진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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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18일, 밤의 장막이 짙게 드리운 광주광역시 북구 매곡동. 네온사인 불빛조차 깊은 밤의 정적을 깨기 조심스러워하는 시간, 4층 건물 1층의 아담한 식당은 모처럼의 행복으로 따스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안에는 이제 막 결혼한 새내기 소방관 이도일과 그의 사랑스러운 아내가 마주 앉아 있었다.

결혼 후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격무에 데이트는커녕 얼굴조차 제대로 보기 힘들었던 나날들. 늘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슴 한 켠에 자리 잡고 있었기에, 오늘 저녁만큼은 모든 것을 잊고 아내와의 오붓한 시간을 만끽하고 싶었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두 사람은 마치 갓 피어난 꽃처럼 싱그러운 웃음을 주고받았다.

"오랜만에 이렇게 함께하니 정말 좋아. 항상 나를 생각해 주는 마음, 고마워. 자기가 바쁜 거 알지만… 사실 조금 서운하기도 했어."
아내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아니야, 오히려 내가 미안하지. 앞으로 더 자주 이런 시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할게." 이도일은 따스한 눈빛으로 아내를 바라보며 답했다.

그때였다.

요란한 화재 경보음이 순식간에 식당 안을 가득 채웠다. 이도일 소방관의 머리속에서는 '화재 발생! 화재 발생!' 으로 들렸다. 찢어지는 듯한 경고음은 평화롭던 순간을 깨뜨리고, 순식간에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도일의 몸은 마치 조건반사처럼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그는 망설일 틈도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1층 식당 안쪽 주방에서 희뿌연 연기가 솟아오르는 것을 발견한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 '불을 꺼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 찼다. 그는 주저 없이 벽에 걸린 소화기를 들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불길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있었다. 소화기 몇 대로 진압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는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식당 벽면에 설치된 소화전을 열어 젖혔다. 굉음과 함께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물줄기가 맹렬한 불길을 향해 쏟아졌다.

한편, 그의 아내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지 않았다. 소방관의 아내는 '반(半) 소방관'이라고 했던가. 그녀의 심장 속에도 남편과 똑같은 사명감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2층 한방병원의 입원 환자들과 3층 스터디 카페에서 공부하던 사람들을 향해 목이 터져라 외쳤다.

"불이야! 불났어요! 빨리 대피하세요!"

그녀의 다급한 외침에 놀란 입원 환자들은 간호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비틀거리듯 계단을 내려왔고, 스터디 카페 이용자들도 책과 가방을 챙겨 허둥지둥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녀는 혹시라도 미처 대피하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 꼼꼼하게 확인하며 마지막까지 사람들의 안전을 살폈다. 모든 사람들이 무사히 건물 밖으로 대피한 것을 확인한 후에야, 그녀는 남편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이도일은 여전히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길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는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물줄기를 불길에 쏘아대며 화재 확산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불길은 점점 거세졌고,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뜨거운 열기와 매캐한 연기가 그의 숨통을 조여왔다.

그때, 아내가 그의 곁에 섰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그의 손에 들린 소방 호스를 함께 붙잡았다. 그리고 남편과 함께 온 힘을 다해 불길을 향해 물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뜨거운 열기가 온몸을 휘감고, 연기가 매섭게 눈을 찔렀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더욱 굳게 잡고 화마에 맞섰다.

몇 분이 흘렀을까.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소방차들이 도착했다. 마침내 소방서에서 출동한 선착대가 현장에 도착한 것이다. 그제야 이도일은 비로소 소방 호스를 내려놓았다. 온몸은 땀과 그을음으로 뒤덮여 있었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사명감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는 아내와 함께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히 식당을 나섰다. 조금 전까지 맹렬한 불길 속에서 싸웠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태연한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근처의 햄버거 가게로 향했다.

"나, 어떻게 저렇게 화재를 진압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어." 그는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물며 아내에게 덤덤하게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안도감과 함께 약간의 피로감이 느껴졌다. 아내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어깨에 기대었다. "당신은 소방관이잖아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거예요."

이도일은 그날의 일을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자신의 일상을 이어갔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소방관들은 쉬는 날에도, 휴가를 떠난 순간에도,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과 오붓한 저녁 식사를 즐기는 중에도 여전히 소방관이라는 것을. 그들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역할을 다한다. 그것이 그들의 숙명이고, 그들이 선택한 삶의 방식이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가족들 역시 반(半) 소방관으로 살아간다. 그들은 남편의, 아내의, 아버지의, 어머니의 안전을 늘 가슴 졸이며 걱정하고, 때로는 위험한 상황에 함께 맞서 싸우기도 한다. 그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기에, 우리는 더욱 안전하고 평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영웅은 멀리 있지 않다. 그들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할지라도, 늘 우리 가까운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이도일 소방사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또 다른 화재 현장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땀방울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그의 뜨거운 심장과 용기, 그리고 헌신은 우리 모두에게 깊은 감동과 존경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진정한 영웅이며, 우리 사회의 빛나는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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