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유럽 여행
2016년까지의 나는 사실 여행을 거의 다닌 적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약 10년 정도 미국에서 살다 귀국하여 두 번의 취업 사기를 겪고 중견기업에 취업해 다니는 동안 군대 간 동생이 전역하여 동생과 함께 처음으로 도쿄 여행을 다녀온 것이 전부였는데, 어쩌면 이 일본 여행이 '어쩌면 난 여행을 좋아하는지도?'라는 생각을 깨우쳐 준 것 같다.
퇴사 후 재취업 전 뭘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중,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도 여행을 다녀오기로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 이유 없이 소심한 나는 한 달 살기 같은 꿈은 꿔보지도 못하고 그냥 평범한 일주일 여행으로 계획을 잡았다. 어디를 갈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유학을 결정할 때, 나는 그 당시만 해도 패션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기에, 당연히 프랑스를 가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 내가 배운 제2외국어는 영어가 전부였고, 그때만 하더라도 유럽 유학은 미국 유학보다도 생소했기에 부모님의 반대로 미국행이 결정되었다. 미국에서의 삶이 나에게 정말 잘 맞았고 행복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 프랑스에 대한 막연한 로망은 남아있었다. 얼마 되지 않는 지인들 중 이때까지 유럽을 안 가본 사람은 나 밖에 없어서 다녀왔던 사람들에게 추천을 받았고, 많은 사람들이 짧은 기간에 많은 나라들을 다녀왔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성향상 그건 너무 무리일 것 같았고, 유럽에 사는 지인도 만나고 싶어서 프랑스와 네덜란드 정도만 계획해 두었다.
나에게 프랑스는 만난 적 없는 첫사랑과도 같았다. 가 본 적도 없는 나라를 이렇게 좋아할 수 있을까 싶다가도, 만난 적 없는 누군가를 덕질하는 마음을 생각해 보면 불가능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첫 프랑스는 흐리고 비가 많이 왔다. 길거리가 지저분했고 사람들은 아무 데서나 담배를 피웠다. 하지만 도시는 아름다웠고 의외로 친절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마지막 날 공항 가려다 지하철 개찰구에 캐리어 손잡이게 끼었을 때 근처에 있던 집시 소년이 도와주었다. 그때까지 여행하는 일주일 동안 집시들과 마주친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너무 고마워서 티켓 사려고 주머니에 미리 빼둔 현금을 건네주었다. 놀랍게도 그 아이는 처음에는 괜찮다고 받지 않으려 했고, 고마워서 주는 거라고 하니 수줍은 미소와 함께 받아갔다. Merci라는 인사와 함께. 아이가 엄마로 추정되는 어른에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아주 예전 우리나라에서도 말이 많았던 앵벌이는 아니기를 조심히 바랐던 기억.
모든 처음이 그렇듯, 나의 첫 파리 역시 아는 게 별로 없어서 많이는 즐기고 오지 못했던 거 같기도 하다. 그래도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에서 발견하는 나 자신이 어쩌면 진정한 나 일 수 도 있을까? 아니면 현생의 걱정 고민 없이 마음이 편안한 상태라 좀 더 이상적인 나의 모습이 나오는 것 일지, 여행지에서의 나는 꽤나 마음에 드는 느낌이다. 좀 더 다정하고, 좀 더 너그럽고, 좀 더 솔직하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경계심이 많아 호의나 호감을 표현하는 사람들에게는 선을 긋는 건 어쩔 수 없는가 보다. 이 이후로도 나는 계속해서 혼자 여행을 다니다 보니 지인들은 내가 여행지에서 로맨스를 이뤄오기를 기대했지만 나 스스로가 그런 환상이 없다 보니 그런 일은 아마 앞으로도 없을 거라고 생각된다. 어릴 때도 그랬지만, 나이가 드니 더더욱 나에게 연애는 크게 필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첫 프랑스의 여행은 화이트 에펠로 기억에 남아있다. 한국에서도 해 진 후로는 외출을 잘 안 하는 나인데, 에펠 탑 야경 보겠다고 밤 열 시까지 맞춰서 마르스 광장까지 걸어간 기억. 장미와 샴페인을 파는 분에게 정중히 거절하며 에펠탑 불빛을 하염없이 바라본 기억. 여행 첫날밤에 바로 마주한 화이트 에펠이 너무 좋아서 귀국날까지 기회만 되면 계속해서 찾아갔다.
여행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여행 유튜버라는 게 유행하기도 전부터 사람들은 큰 무언가를 끝내고 나서 세계여행이라던지 한 달 살기라던지 하며 거창하게 여행을 다녀오며 그것을 기록하고 책으로 냈던 것 같다. 나는, 우리는 이렇게 남들과 다르고 특별해, 를 보여주고 싶어 하는 느낌. 앞서 말한 것처럼 여행지에서의 나는 평상시의 나보다 좀 더 좋은 모습이어서 자아실현, 자아 찾기의 의미로는 가치가 있는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여행 자체는 결국 소비이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 더 비중을 두고 지출을 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은 모두가 다를 것 같다.
너는 여행을 왜 가?라는 질문을 꽤나 자주 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인기 많은 관광지를 가는 것도 아니고 그 나라의 음식이 궁금해서 먹으러 다니지도 않으니 나 같은 여행자는 그 나라에서 얻어오는 게 뭔지 궁금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나도 궁금하다. 집 떠나면 고생이란 말을 뼛속까지 믿는 사람으로서 나는 왜 여행을 나름대로 즐기고 있을까. 아직 나도 정답을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여행을 하면서 나의 취향이나 나의 성향을 좀 더 잘 알게 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나는 갔던 곳을 또 방문하는 걸 좋아하고, 새로운 나라나 도시를 도전하려면 나름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2016년 이후 2026년까지 갔던 나라나 도시들은 중복이 많다. 누군가는 돈 아깝다고 했지만 나에겐 가치 있다. 내가 좋은 여행을 하는 게 나의 자유. 무엇보다 치안 문제가 항상 언급되는 유럽에서 단 한 번도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은 것 - 오히려 잃어버린 핸드폰을 되찾기까지 했으니 - 또 한 나에게 큰 플러스 요인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만난 적 없는 첫사랑이었던 2016년의 봄 파리에 이어서 다시 만난 첫사랑인 2017년의 여름 파리와 친구가 된 첫사랑인 2024년 가을 파리까지, 그 추억을 간결하고 솔직하게 기록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