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전하는 방법 : 선물

선물과 덕질의 상관관계

by 루이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선물하는 것을 좋아했다. 어릴 때 매일 1000원씩의 용돈을 받았었는데 그 용돈을 모아서 부모님의 생신 선물을 사거나 결혼기념일 선물, 동생의 생일 선물 등을 준비했다. 아무도 나에게 그런 것을 바라지 않았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선물을 고르고. 구매하는 그 시간이 정말로 행복했다. 이제는 거의 습관이 되어 버린 나의 오랜 취미는 성인이 되어서도 꾸준히 이어져 왔다. 가끔은 과하다 싶을 정도의 선물을 후보에 올려두기도 하고 내가 상대를 얼마나 좋아하는지에 따라 선물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개수가 늘어났다. 그리고 한 가지, 나의 선물하기에서 가장 큰 맹점은 그 상대와 나의 친밀도는 별로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나의 가장 큰 단점일 수도 있고 보다 효율적인 삶을 꾸려가기 위해서는 개선돼야 하는 부분일 것이다. 물론 아무래도 친구들보다는 가족들의 선물에 좀 더 정성을 쏟기 마련이지만... 예를 들어 회사 동료의 생일 선물을 고르는 데 그다지 친하지 않아도 이 물건이 그 사람과 잘 어울릴 것 같다거나 잘 쓰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가격 상관없이 선물해주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러다 언젠가 알게 된 사랑의 언어라는 것을 통해 내가 표현하는 사랑의 방법은 선물임을 알게 된 후로 우선순위를 두기 시작했다. 내가 연을 맺고 지내는 모든 이들에게 100%의 선물을 해줄 순 없기 때문에 내 나름의 선을 긋고 어느 정도의 제한을 두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확실히 나는 말로 하는 애정 표현은 조금 오글거리고 쑥스럽다. 그게 뭐 별거냐 싶다가도 막상 내 입으로 말을 해야 하거나 내 손으로 써야 할 때가 오면 그저 눈을 감아 버리게 되는... 그래도 요즘은 활자로는 곧잘 표현하고 있다.



이 취미가 가장 빛을 발하면서 또 가장 큰 구멍이 되는 분야는 바로 덕질이다. 연하게도 나에게 덕질은 선물하기와 동의어 수준이기 때문에. 친하지 않은 회사 동료보다도 못한 사이, 나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에게 뭐라도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 매 년 더 커지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살면서 덕질을 한 연예인이 3명뿐이라는 점과 그 셋을 각기 다른 시기에 좋아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생각건대 선물하는 취미 때문에 자기 방어 기제로 동시다발적 덕질이 어려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의 첫 덕질 상대는 아이돌이었지만 그 당시엔 나도 학생이었던 데다 유학 중이었기 때문에 나는 늘 가난했고 딱 한번 국제우편으로 선물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귀국해서도 선물은 추가로 보낸 적 없지만 (그리고 내가 알기로 아마도 팬들의 선물을 받지 않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 아무래도 워낙에 슈스여서 어쩌면 들어오는 선물들이 감당이 안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이고 초창기의 덕질이라 나도 내가 어떤 팬이 될지 잘 몰랐던 게 아닐까. 물론 나를 오래 알고 지낸 지인들은 그 아이돌의 소식이나 관련 행사가 뜨면 나에게 연락을 주기도 한다. 최근에도 지인을 통해 첫 팬미팅을 다녀왔을 정도로 여전히 응원은 ing이다.


두 번째 덕질 대상은 배우이고 나이가 비교적 있으신 편으로 SNS도 잘하지 않으시고 예능도 거의 나오지 않으셨기에 진짜 생존 신고 마냥 1년에 두 번 생일과 크리스마스에만 선물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서포트에도 참여했다. 서포트 참여가 어떻게 보면 가장 쉽다. 돈만 보내면 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생애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팬미팅을 가본 연예인이기도 하고, 그건 나의 흑역사 TOP5에 들 정도로 오글거리는 경험이었지만 또 그만큼 색달랐고 흥미로웠다. (같이 찍은 셀카가 너무 민망해서 내 얼굴을 가려놓은 바람에 원본도 없다는 게 웃픈 함정...) 여전히 활동 중이신 이 분은 결혼해서도 열심히 연기를 하고 계시다. 곧 새 드라마가 방영되는 것 같던데. 나는 제대로 입덕을 한다면 그 마음이 꽤 오래간다. 이 배우도 거의 따지면 10년은 훨씬 넘게 좋아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뒤로 갈수록 조금 흐지부지해진 느낌이 없지 않아 아쉽다.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2006년에 처음 알게 되어 좋아하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선물을 보낸 것이 2017년 크리스마스였던 것 같다. 그 기간 내내 선물을 한 건 아니고, 유학생일 때는 선물을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이 분께 선물을 보낸 기간은 귀국 후 5,6년 정도.


그 후 한동안 딱히 뭐 없다가 2020년 세 번째 덕질을 시작하게 되었다. 소위 덕통사고라고 표현하듯 예상치 못한 곳에서 입덕하게 되는 것 같다. 일단 이 연예인은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알고 있었지만 그때는 똑똑하다 정도? 별로 생각 없었다. 그러다가 거의 유일하게 본방사수 하던 예능 프로그램에서 얘기하는 것을 매주 보며 생각의 결이나 가치관이 나랑 비슷하다고 생각되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외모도 좀 취향인 것 같고 이래저래 어쨌든 나도 모르게 좋아하게 된 것이다. 아마 모든 덕질이 그렇겠지만 나의 세 번의 덕질 또한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처음으로 연예인의 유튜브를 구독하기도 하고 라이브방송 공지가 뜨면 최대한 참여했다. (하지만 절대 덧글은 달지 않았다.) 덕질 초반에는 좀 폭주하는 감이 없지 않게 선물을 상당히 많이 보냈는데 제일 폭주했던 건 아마도 2021-2022 즈음. 연말에 기록을 남기며 나 조차도 황당해서 이 때 부터 덕질 연말 정산을 시작했고 스스로를 자중시키는 시스템을 만들게 되었다. 직히 폭주하게 된 계기 확실히 있다. 이분은 SNS가 활발했고 내가 덕질하던 초기에는 놀랍게도 받는 선물들 인증샷을 상당히 자주 올려 주셨다. 처음 겪는 일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신기했고 당연히 기분 좋았다. 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이 분 역시 이런 게 영향을 끼친다는 걸 알게 되었는지 (그리고 인지도가 올라가며 스케줄이 많아짐에 따라) 인증샷은 거의 올라오지 않게 되었 이게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사실 '최애의 인증샷'은 굳이 따지자면 성과급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나의 선물하기 자체에 부정적인 영향은 없었다. 만 상대는 연예인이고 나보다 주머니 사정이 훨씬 좋다는 이 당연한 사실을 잊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자주 되뇌었다. 그러니까 선물하고 싶은 게 생겨도 그게 어느 정도 이상 가격인 경우에는 당사자가 원한다면 못 살 것도 없기 때문에 내가 굳이 선물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내리는 식이다. 또, 그런 정도의 금액이나 정성은 가족을 더 우선시하자는, 우선순위를 확실하게 정립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물을 보내는 사람이 나만 있는 게 아니 때문에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았다. 욕심이지만, 선물하는 자체에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으로 나의 현 최애가 다수의 연예인들처럼 팬들의 선물을 더 이상 받지 않게 된다면 무척 슬플 것 같았다. 연예인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들어오는 선물들이 처치 곤란이라 거절하게 되는 것일 테니까 내가 즐겁게 선물을 보내기 위해서라도 나 또한 선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덕질한 지 햇수로 7년 차, 이제는 사실 선물 아이디어가 거의 고갈된 상태... 가 색다르고 실용적인걸 고르고 싶은 마음인데 참 제한적이다. 사실 제일 좋아하는 선물의 종류는 직접 만든 무언가인데 (만들면서 나도 재밌기 때문에) 그게 또 받는 사람 입장에선 제일 짐 같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자주, 많이 보내기는 나 역시 마음이 편치 않다. 새로운 거 뭐 없을까 하던 중 2년 전쯤에는 우연히 알게 된 아이돌 문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나도 생일 카페를 주최해 보기도 했다. 준비하는 과정과 카페를 꾸미는 과정이 참 즐거웠기 때문에 여력이 된다면 다음에 또 해보고 싶은 생각이다. 그때는 좀 멀더라도 유동인구가 많은 곳으로 카페를 아봐야지.


> 작년 기록 일부, 인증샷 안 올라온걸로만 <


나는 선물하는 게 왜 좋을까? 가끔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가끔 이유 없이 괜히 뭔가를 사고 싶을 때 선물할 일 없나?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는데 아마 내 소비욕에 대한 죄책감을 덜으려는 것 같다. 내 걸 사는 게 아니니까 괜찮은 소비라고 스스로에게 합리화하는 느낌. 그래서 가끔 5월생인 지인의 선물을 3월에 사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사실 선물을 너무 미리 사는 건 좋은 건 아닌 것 같다. 모든 물건에는 때와 시기가 있는데 그게 엇갈리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같은 계절 안에서 샀다면 그나마 낫다.) 나는 물욕도 많고 솔직히 말해서 돈 쓰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그것에 비해 돈 욕심이 없다는 게 아주 큰 모순이다. 돈 욕심이 있어야 돈을 더 벌고 더 모아서 더 쓸 텐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돈 욕심이 없다고 해서 돈을 싫어한다는 건 아니고 그냥 돈이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뜻인데, 나에게는 이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가끔 너무 현실을 외면하고 세상을 동화처럼 생각하나 싶기도 하고...


> 언젠가의 어버이날 (ft. 내가 만든 카드), 친구의 생일, 결혼하는 지인에게 축하 선물 <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 나는 선물하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축하할 일은 축하하자는 생각이다. 물론 나의 형편에 따라, 애정도에 따라 선물의 종류나 가격대는 천차만별이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누군가를 위한 선물을 고르고 포장을 하고 편지를 쓰고 마음을 전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기꺼이 그리고 아주 즐겁게 그럴 것이다. 그게 내가 내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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