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출근길, 그리고 나의 퇴근길 -
병원에서 신규로 발령을 받으면, 첫 나이트 근무까지 시간이 생각보다 길게 느껴질 수 있어요.
저도 첫 나이트는 발령 후 약 3주가 지난 시점이었어요.
간호학생 시절, 데이-이브닝 근무는 실습으로 경험해보지만 나이트 근무는 보통 경험할 기회가 없죠. 예전엔 학생도 나이트 실습을 했었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진 시스템이에요.
그러다보니 나이트 근무는 두려움 반, 기대 반의 감정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다면, 신규 선생님들의 첫 나이트 생존기는 어떨까요?
젊고 체력 좋던 신규 시절, 저는 프리셉터 선생님께 "저 밤새는 거 잘해요!" 라며 의욕을 보였어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웃으며 "놀면서 밤새는 거랑 일하면서 밤새는 건 달라. 최대한 많이 자고 와"라고 하시더라고요.
결론적으로, 진짜 달랐어요.
놀 때 밤새우는 건 체감도 다르고 시간도 금방 가지만,
일하면서 밤새는 건 전혀 다릅니다.
첫 나이트 때, 긴장한 탓에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출근했어요.
결국 피로가 누적된 채로 환자를 보다 보니 프리셉터 선생님의 설명에 대한 이해력도 뚝 떨어졌어요.
나이트 전에 수면은 필수,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아요.
Tip: 생활 패턴 이렇게 바꿔보세요
-첫 나이트 전날 밤을 일부러 새고, 아침에 퇴근하듯 잠드는 연습(제가 주로 하는 편)
-마지막 나이트 퇴근 후 너무 오래 자지 않기 (2~3시간만 쪽잠, 밤에 자기)
-암막커튼 or 안대 사용 강력 추천 (어두울수록 수면의 질이 올라감)
병원에서의 밤은 조용하거나, 미친 듯이 바쁘거나, 둘 중 하나예요.
-조용한 날: 환자들의 활동과 요구가 줄어들고, 일정 마무리 후 여유가 생김
-바쁜 날: 섬망 폭주, 낙상 사고, 상태 악화 및 사망 등 사건 사고가 터지는 밤
(특히 밤에는 섬망, 낙상, 상태악화가 낮 시간보다 많다고 확실히 체감돼요.)
지금은 코로나 이슈로 병원에서 야식을 먹는 문화가 사라졌지만,
여유로운 시간에 병동 선생님들과 야식 먹던 시절도 있었어요.
그만큼 여유가 느껴질 때도 있지만,
조용할 줄 알았던 밤이 끝없이 이어지는 전쟁터가 될 때가 있어요.
새벽 5~6시쯤 마지막 라운딩을 돌다 보면, 종종 사망 환자를 발견하게 돼요.
그 시간대는 유독 심정지 발생 빈도가 높고,
코드 블루를 띄우는 일이 많아요.
라운딩이 익숙해지고 나이트가 익숙해질 때쯤,
어느 날 갑자기 터지는 이변을 마주하면
"이 길이 맞나..." 하는 회의감도 밀려오곤 해요.
특히 나이트 라운딩은 보호자나 간병인도 깊이 잠든 시간이기 때문에,
환자의 심정지를 늦게 발견하는 일도 생기고,
그럴 땐 간호사로서 크게 무력감과 자책을 느끼기도 해요.
(통합병동도 마찬가지예요. 낮 시간에는 다른 환자라도 눈치 챌 수 있지만, 밤에는 환자들조차 대부분 잠든 시간이니까요.)
나이트 시간의 노티는 정말 신중하게 판단하게 돼요.
이브닝에도 당직의가 있지만,
나이트에는 당직의가 수면을 취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예를 들어:
-"환자 불면 호소해요"
-"변비약 드리고 싶어요"
-"통증 때문에 힘들어해요"
그럴 때 "이걸 지금 전화해도 되나?" 하고 망설이게 돼요.
특히 외부 당직의를 고용한 병원이라면,
그 의사의 성격조차 잘 몰라 더 부담스럽죠.
밤엔 섬망 증상이 악화되기 쉬워요.
그래서 자꾸 소리를 지르거나 침상 밖으로 나오려는 환자와,
조용히 자고 싶어하는 명료한 환자의 갈등이 생겨요.
그 외에도:
-"불 끄라고 좀 전해주세요"
-"석션 소리 시끄러워요"
-"옆 침대 때문에 잠을 못 자겠어요"
이런 소소하지만 민감한 컴플레인이 끊이지 않아요.
모두가 예민한 시간대라, 작은 일도 크게 다가오는 나이트입니다.
신규 간호사의 첫 나이트는 누구에게나 쉽지 않아요.
체력, 수면, 정신력, 모두가 시험대에 오르는 시간.
하지만 이 시간을 지나면서 점점 단단해지고,
다른 선생님들의 '출근길'을 배웅하며 나의 '퇴근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처음이니까 당연히 어렵고, 피곤하고, 무섭지만
나도 그 밤을 지나왔다는 사실이
나중엔 후배에게 큰 위로가 되기도 해요.
첫 나이트를 준비 중인 신규 선생님들,
여러분의 퇴근길이 무사히 따뜻하길 바랄게요.
(현재시간 오전 08:54, 진짜로 나이트 퇴근 후 작성하고 있어요 X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