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가득 차 있을 때, 마음은 어떻게?
주말 늦은 오후, 손님이 오기로 한 날이었다.
손님들 도착 1시간 전, 테이블 세팅을 하고, 와인을 꺼내고, 오븐에는 연어가 노릇하게 구워지고 있었다.
주방은 바쁘게 돌아가고, 나는 접시와 냅킨 사이를 오가며 숨 돌릴 틈도 없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동생이었다.
"나 급하게 부탁 좀…"
그 순간 나는 속으로 말했다.
"아이고, 내 코가 석 자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지금은 코로 숨 쉬기도 벅찬 상태였다.
이 말,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거다.
'내 코가 석 자야' — 나도 너무 바쁘고 여유가 없다는 뜻.
이 표현의 유래는 꽤 솔직하다.
옛날에는 너무 바쁘고 급할 때, 흘러내리는 콧물조차 닦을 여유가 없었다고 한다.
그 콧물이 줄줄 흘러 '석 자'쯤 됐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즉, 정신없이 바쁘다는 걸 콧물 길이로 표현한 셈이다.
그런데 이건 옛날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요즘 나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추운 날 밖에서 낙엽을 치우다 보면 그 의미가 몸으로 느껴진다.
바람은 얼굴을 때리고, 낙엽은 끝도 없이 날아오고,
내 코는… 왜 이렇게 성실하게도 훌쩍거리며 흐르는지.
한 손엔 갈퀴, 한 손엔 쓰레받기. 그러다 보면 콧물 닦을 틈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 누가 도움을 청해도,
내 마음은 여전히 굴뚝같은데
현실은 그저 담담하게 말할 뿐이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정말 내 코가 석 자예요."
그런데 이걸 영어로 옮기면 어떻게 될까?
"My nose is three feet long."
이 말을 들은 외국인 친구는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Wait… Are you Pinocchio?" (“어, 잠깐만… 설마 피노키오야?”)
한국에서 '코'는 숨이 막히는 답답함의 상징이지만,
영어에서 코는 거짓말의 신호다.
피노키오가 이 문화적 오해의 주범이다.
그래서 영어에서는 코 대신 '손'이나 '목', '머리'를 쓴다.
"I’ve got my hands full." — 손이 가득 차 있다. 지금은 도와줄 틈이 없다.
(손에 짐을 한가득 든 모습에서 나온 말이다.)
"I’m swamped."— 늪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대고 있다.
('Swamp'는 늪이라는 뜻으로, 일에 휩쓸린 상태를 비유한다.)
"I’m buried in work." — 일에 파묻혀 꼼짝 못 한다.
(덮여서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에서 비롯됐다.)
"I can barely keep my head above water." — 간신히 물 위에 머리를 내밀고 있다.
(물에 빠져 숨 쉬려 애쓰는 장면이 그려진다- 아래 사진참고)
"I’m up to my neck in deadlines."— 마감이 목까지 차올랐다.
(물이 차오르다 목까지 오는 위태로운 상황을 가리킨다.)
결국, 코 대신 손이 묶이고,
목이 잠기고,
머리가 물 위로 간신히 떠 있다.
각기 다른 신체 부위를 빌려 표현하지만,
결국 하고 싶은 말은 같다.
"나도 지금 숨 돌릴 틈이 없어."
결국 그날, 나는 동생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쓰렸다.
"내 코가 석 자야."
그 말에는 단순한 변명이 아니라,
미안함이 담겨 있었다.
언어는 달라도 마음은 같다.
영어의 hands, neck, head —
한국어의 코 —
모두 같은 숨결로 이어진다.
결국 중요한 건 코의 길이가 아니라,
서로의 사정을 이해해 주는 여유의 길이다.
"내 코가 석 자야"
- I’ve got my hands full.
- I’m swamped.
- I’m buried in work.
- I can barely keep my head above water.
- I’m up to my neck in deadlines.
"My nose is three feet long." 하지 말 것. (피노키오 의심 100%)
결국 우리는 온갖 표현들을 몸으로 증명하며 산다.
“내 코가 석 자다”는 말도,
"I can barely keep my head above water" (간신히 물 위에 머리를 내밀고 있다.)라는 표현도
그저 문장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내 일상 속에서 실감 나는 현실이 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래 사진 한 장이 그 모든 걸 말해준다.
좀 우스꽝스럽고, 조금 짠하고,
또 Somehow—진짜 나다운 모습.
말로 설명하면 길어지겠지만
저 한 장은 단숨에 말한다.
결국, 천 마디 말보다
내가 어떻게 버티고 있었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증명해 준 건
그날의 그 표정이었다.
오늘도 누군가의 ’ 코가 석 자임'을 이해해 주는 작은 여유가 우리 사이를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