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만 만나는 중국 음식
얼마 전부터 자꾸 생각나는 음식이 하나 있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문득문득 떠올랐다. 달고 기름진 맛, 종이 상자에 담겨 오던 바로 그 중국 음식이다.
크리스마스 이브, 딸과 남편과 함께 벼락치기 쇼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트리 장식과 캐럴 소리 사이를 걷다, 쇼핑몰 밖에서 우연히 판다 익스프레스 간판을 마주쳤다. 그렇게 우리는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멈췄다.
판다 익스프레스는 쇼핑몰 안에도, 단독 점포로도 있는 중국 음식 체인점이다. 특별할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선택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은 딱 그 음식이 맞아떨어졌다.
판다 익스프레스는 중국 현지 음식점은 아니다. 그렇다고 동네에서 오래 버텨온 작은 중식당도 아니다. American Chinese가 프랜차이즈의 옷을 입은 형태에 가깝다.
판다 익스프레스의 메뉴에는 오렌지 치킨(Orange Chicken), 제너럴 소 치킨(General Tso’s Chicken), 세서미 치킨(Sesame Chicken), 블로콜리 새우(Broccoli Shrimp), 차우메인과 볶음밥(Chow Mein and Fried Rice) 같은 음식들이 있다.
어느 판다 익스프레스 매장을 가던 같은 맛과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이렇게 프랜차이즈화되었지만, 그럼에도 이 음식은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미국식 중국 음식의 한 조각이다.
미국에서 먹는 중국 음식은 중국 음식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지만, 사실은 미국에서 자란 음식이다. 정통을 증명하려 애쓰지 않고, 본고장을 설명하지도 않는다.
대부분은 식당에 앉아 먹기보다 차이니스 테이크아웃으로 더 익숙하다. 종이 상자에 담겨 나와 집으로 들고 가거나 차 안에서 먹는다. 이 음식은 늘 생활 가까이에 있었고, 그래서 더 일상이 되었다.
대학 시절 이 음식은 특히 고마웠다. 가격이 저렴해 주머니 사정과 크게 상관없이 먹을 수 있었다. 5달러 안팎이면 콤보 플레이트 하나가 나왔고, 오렌지 치킨과 볶음밥, 혹은 차우메인이 넉넉하게 담겨 있었다.
시험이 끝난 날에도, 과제가 밀린 밤에도, 하루를 어떻게든 넘기고 싶을 때 우리는 늘 같은 중국 테이크아웃을 선택했다. 이 음식은 배를 채우는 것 이상의 역할을 했다.
한국에서 살던 시절, 내가 그리워했던 것도 바로 이 음식이었다. 짜장면이나 짬뽕, 탕수육처럼 분명한 자리를 가진 중화요리도 아니고, 중국 현지 음식점에서도 쉽게 찾기 어려운 미국식 중국 음식이었다. 메뉴가 비슷한 것도 있었지만, 막상 먹어보면 어딘가 달랐다. 물론 맛도 다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때 그 음식을 먹던 시간과 생활의 장면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자란 딸 역시 이 음식을 좋아한다. 학교 캠퍼스에서 즐겨 먹던 테이크아웃 메뉴였고, 성인이 된 지금도 문득 생각나 찾게 된다. 나에게는 지나온 시간이 담긴 음식이고, 딸에게는 자라온 시간이 담긴 음식이다.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그럼 중국 현지 음식점에 가면 되지 않아?"
하지만 그건 어릴 때 살던 동네를 그리워하며 지도에서 같은 위도를 찾는 일과 비슷하다. 좌표는 맞을지 몰라도, 시간은 이미 지나가 있다. American Chinese는 중국 현지 음식과는 다른 방향으로 자라온 음식이다.
이게 나만의 이야기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캐나다에서 유학했던 지인 역시 한국에 살며 같은 음식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우리가 떠올린 건 특정 가게나 메뉴가 아니라,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살며 자연스럽게 먹게 된 하나의 음식 문화였다. 그래서 이 음식은 미국 어디에서나 비슷한 얼굴로 존재한다.
식사가 끝나면 늘 포춘쿠키가 남는다. 사실 맛을 기대하고 먹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도 다들 한 번쯤은 꼭 까본다. 얇은 과자를 반으로 쪼개 종이쪽지를 꺼내는 순간에는 묘한 기대가 생긴다.
재미있는 건, 이 과자가 중국에서 온 전통 과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원래는 19세기 일본에서 시작되어, 미국으로 건너와 중국 음식점의 디저트로 자리 잡았다.
별 내용 아닐 걸 알면서도, 문장이 괜히 좋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은 운이 좋을 거라는 말, 새로운 기회가 온다는 말 같은 것들. 진지하게 믿지는 않지만, 하루를 마무리하기에는 딱 그 정도의 낙관이면 충분하다. 포춘쿠키를 까보는 재미까지 포함해서, 그 식사는 끝난다.
지금은 다시 미국에 살며 가끔 그 중국 음식을 먹는다. 판다 익스프레스처럼 프랜차이즈가 된 형태로든, 동네 차이니스 테이크아웃 가게에서든. 자주 찾지는 않지만, 문득 생각나 한 입 먹으면 이런 말이 나온다. 그래, 이 맛이야. 여전히 달고, 여전히 기름지지만 마음이 먼저 알아본다.
언젠가 다시 한국에서 살게 된다면, 예전처럼 이 음식이 또 그리워질 거라는 것도 안다. 그럴 때면 나는 짜장면도, 중국 현지 음식도 아닌 무언가를 떠올리며 설명하기 어려운 허기를 느끼겠지.
American Chinese는 중국 음식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미국 음식도 아니다. 내가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살았던 시간이 우연히 음식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에 가깝다. 그래서 이 음식은 배를 채우기보다, 내가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를 조용히 떠올리게 한다.
그리움은 늘 맛이 아니라, 그 맛을 먹던 시간 쪽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