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틀이주미 의 ‘취향이야기’를 보고 든 생각
누군가를 보며 “저 사람, 정말 빛난다.“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자신을 명확히 알고, 그 개성을 표현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참 빛이 난다는 생각이 들어요.
얼마 전, 터틀이주미 유튜브 채널에서 ‘서른이 된 나의 취향 이야기’라는 영상을 보았습니다. 구독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된 이 영상에서, 주미 님은 자신의 취향을 세밀하게 설명했어요. 단순히 “이걸 좋아해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마다의 특징을 분석하고 상황에 따라 선호하는 것까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했죠.
자신의 취향을 이렇게까지 깊이 알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단순한 취향 이야기가 아니라, 스스로를 탐구하고 쌓아온 시간들이 느껴졌거든요. 영상을 보면서 감탄하는 한편,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과연 나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명확히 말하기 어려웠습니다.
누군가 “이거 하자!” 하면 “좋아!” 하고 따르는 편이에요. 반대로 “뭐 할래?“라고 물으면 “아무거나…“라고 대답하는 극한의 우유부단한 사람이기도 하죠.
‘취미나 특기’를 적으라고 하면 막막합니다. 그냥 이것저것 조금씩 해봤을 뿐, 진짜로 나만의 취향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나 자신을 설명할 때도 애매해지죠. 함께 어울리기엔 편한 사람일지 몰라도, 나만의 색깔이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이 조금 씁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봤어요.
왜 나는 빛나지 않을까?
내가 나를 탐구하고, 내 취향을 찾아보려는 노력을 해본 적이 있었나?
과거를 돌아보니, 저는 늘 주어진 선택지를 받아들이며 살아왔습니다.
아버지가 원했던 학과에 진학했고, 아버지가 바라던 부대(해병대)에 입대했습니다. 그 선택들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이걸 하지 않으면 갈등이 생길 거야.“라는 생각에 별다른 저항 없이 받아들였죠. 대학 생활도 마찬가지였어요. “이게 나한테 맞을까?” 고민하면서도, “이미 여기까지 왔으니 어쩔 수 없지.“라며 합리화하며 버텼죠. 종교 활동, 동아리 활동에서도 그저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데 급급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즉각적인 재미에 빠져 지내기도 했습니다. 판타지 소설과 무협 소설에 빠져 시간을 보냈고, “어쩔 수 없지.“라는 핑계로 새로운 시도를 미뤘어요. 결국 고시에는 실패했고, 졸업 후 자격증을 활용해 취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30대가 되어 몇 년이 흘렀죠.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없어요. 하지만 아쉬움과 후회는 남습니다. 착한 아들, 성실한 구성원으로 살아왔지만, 정작 “나만의 빛나는 무언가”를 찾지 못한 채 흘려보낸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년부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런 생각을 했어요. “새로운 시도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때마다 직장이 핑계처럼 떠올랐습니다.
“지금 일하고 있으니 다른 걸 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지.”
20대에도 계속해왔던 생각이었어요. 그리고 그때마다 “그냥 하던 거 계속하자.“라는 선택을 반복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다른 선택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물론, 불안감이 없지는 않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너무 경솔한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10년 동안 같은 선택을 해왔다면, 이제는 한 번쯤 다른 선택도 해볼 때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가장 먼저 할 것은 운동과 글쓰기입니다.
쉽게 포기해 버리는 제 성격을 고려해서, 다른 것들은 뒤로 미루고 이 두 가지를 습관으로 만들려 해요. 글쓰기가 자연스러워지면 유튜브 영상 제작, 클라이밍 등 새로운 것에도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또, 독서 모임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시각을 배워 나가려 합니다.
직장을 그만둔 선택이 후회되지 않도록, 시간을 알차게 쓰고 싶어요.
그리고 언젠가 오늘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할 수 있길 기대합니다.
“그래도, 그 이후로 나는 더 많이 빛나게 되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