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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술을 마시는 부부

by 낫지 Mar 14. 2025

술을 빼고 우리 부부를 설명할 수 있을까!

모든 게 술로 시작해서 술로 진행된다.


우린 사내 주니어보드(청년이사회 같은) 회식 자리에서 만났다. 하지만 나는 그때 이미 주니어가 아닌 시니어였고, 그는 정말로 신입이었다. 지금도 회사를 바라보는 온도가 가끔은 다름을 느낀다.


하지만 술에서만큼은 같은 온도였다. 그 회식 날 우리만큼 많이 마신 직원이 있었을까.


우리는 사귀며 둘이서 소주를 여섯 병을 마시는 데이트를 했다. 집에 가기가 아쉬워서 졸린 눈을 비비며 2차를 갔다. 주말이면 낮부터 마셔댔다. 너무 매일 만나는 건가 싶어서 퇴근시간까지 서로 눈치 보다가, 저녁 뭐 먹을까? 질문에 어제도 만났는데, 오늘도 만나고, 내일도 만난다.


좋아하는 안주는 삼겹살, 회. 살기 위해 운동을 하고 죄책감에 단백질을 먹는다. 서로 동네의 고깃집이란 고깃집은 다 가보고, 해장하러 들어간 감자탕 집에서 다시 잎새주를 깐다.


남편은 금연도 술을 마시다가 했다. 갑자기 매콤한 닭발에 기본안주 돈가스가 나오는 풍암동의 작은 술집에서. 나 이제 그만 필래. 하더니 정말 그렇게 소문난 꼴초가 담배를 끊었다. 술값이 감당이 안되어 담배를 포기한 모습이다. 취하기 전에는 모든 게 생생한 기억이다.




나는 여행과 캠핑을 술을 마시려고 시작했다.


바다와 숲 속에서 하이볼을 마시고 싶어서 캠핑을 시작했다. 제주도에서는 고등어 회에 한라산을 마시고 싶어서, 전주에서는 가맥집에서 맥주를 마시고 싶어서, 부산에서는 양곱창에 좋은데이를 마시고 싶어서, 속초에서는 방어회랑 대게에 맑은강원을 마시고 싶어서, 대전에서는 뜨끈이탕에 린을 마시고 싶어서, 경주에서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피자에 맥주, 춘천에서는 닭구이에 춘천 생막걸리, 대구에서는 막창구이에 참소주를 마시고 싶었다. 정말 그렇게 해냈고, 취해서 잤다.


술꾼들에게 지역만 그러한가? 계절별로 월별로 즐겨야 하는 나의 고장 음식이 있다. 광주는 새벽에 반쯤 취한 채 이끌리는 24시 국밥집에도 영혼이 있다. 비 올 때 오돌뼈에 잎새주를 시작하면 곱창전골도 생각이 나고, 눈이 오면 괜히 튀김이 먹고 싶어 진다. 추워지면 어김없이 회에 해물이 들어간 라면으로 마무리하고 싶고, 이자카야에 둘이 나란히 들어앉아 우니파스타 같은 걸 나눠먹는다. 동네에 사장님이 지나다니시면서 썰다 남은 보쌈을 나눠주는 작은 족발집도 항상 그립기 그지없다. 정말 맛있지만 정말 살찌는 떡볶이에 맥주도 꾸준히 수혈해줘야 하고 문어숙회 된장술밥 든든하고 깔끔한 안주도 끌리는 날이 있다. 한우 오마카세, 일식 오마카세도 즐기고 나와서는 김치우동에 소주로 마무리하는 날들도 있었다.


먹는 이야기를 시작하자니 글을 끝낼 수가 없다. 그런 나에게 나의 지루하고 사랑스러운 회사는 술친구를 하나 쥐여준 꼴이다. 아프기 전까지 서로를 극진히 보살피며 같이 마셔야 하는 친구.


우리가 마시는 동안 장소가 생기기도, 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어디에 떨어져도 맛집을 알아보는 레이더가 있는 충실한 술친구 덕에 실패가 없다. 결혼까지 해버리니 이제 요리라는 새로운 세계까지 열려버렸다! 파프리카 가루를 넣은 내가 만든 제육볶음에 잠옷을 입고 같이 소주를 나눠 마실 땐 이 세상엔 우리 둘 뿐이다.


이렇게 자주 마시고 많이 마시면 취한다. 당연한 말 이겠지만. 그리고 취하면 속일 수가 없어서, 그에게는 숨기고 싶은 감정도 하루를 채 못 간다. 그래서 우린 적은 시간을 쉴 새 없이 떠들며 몇 배의 우정으로 채웠다.


항상 해야 할 일이 있지만, 언제나 취해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충실히 마시며 서로의 곁을 지켜본다. 결혼을 준비하며 순탄하지만은 않을 때, 각자의 친구를 만나서 욕을 하기보다는 서로에게 구워진 닭목살을 접시에 얹어주며 서운하다며 울기를 선택한다.


같이 할 수 있는 운동도 있고, 생산적이고 멋있고 배울만한 취미들을 같이 할 수도 있겠지.


근데 우린 오늘도 저녁을 낭비한다.


그냥 이렇게 사는 부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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