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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CCTV는 3개

by 친절한기훈씨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은 교보문고, 영풍문고, 그리고 도서관이지만, 진짜 애서가들이 찾는 핫플레이스가 따로 있다. 내가 원하는 책을 소장했을 때의 그 따뜻하고 푸근한 감정을 알고 있지만, 새 책을 5권 이상 사게 되면 10만원은 거뜬히 넘는다. 그래서 우리는 '알라딘'이라는 마법의 램프처럼 소원을 들어주는 곳에서 저렴하게 새 책 같은 중고책을 구입한다.


어제도 그랬다. 고양이가 생선가게를 못 지나간다고, 헌혈하러 영등포역에 갔는데 내 몸은 지하상가로 내려가 알라딘으로 향하고 있었다. 단 5분만이라도 책을 둘러보고 눈에 들어오는 책이 있으면 사보자 하고 서가를 둘러보는 순간, 특이한 책이 발견되었다. 요즘 소설에 관심이 많아 소설 쪽 책에 조금씩 재미를 들이고 있는데, 책의 제목은 '술'이었다.


나 같은 애주가에게는 딱 어울리는 책인데 왜 이 책이 여기 있을까 싶었다. 뭔가 ‘술책’이 담겨있는 책이 아닐까 하는 우려의 생각과 걱정이 들었지만, 그 생각을 접기로 했다. 책을 펴봤는데 무슨 연애편지가 쓰여있는 것 같았다. 작가가 술 마시고 남자친구에게 이렇게 서명을 해줬을 리는 없고, 무슨 사연이 있는 듯했다. 무슨 상심한 일인지 궁금해하지 않기로 하고 낙서가 되어 있지 않은 새 책을 골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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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이야기는 우리집에 최근 CCTV가 추가되면서 '술'과 조금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쯤 되었으면 눈치챘으리라 생각한다. 와이프, 첫째딸, 둘째딸이다. 둘째딸이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술 마시는 것에 잔소리 폭탄이 날아온다. 사실 작년을 생각하면 내가 너무 많이 마셨다. 이 책의 작가보다 더 많이 마셨으리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나의 술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내가 사업부 팀장이 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일주일에 2번 이상은 사무실 식구들과 술자리를 할 기회가 늘어났다. 거기에 현장 영업팀들과도 술자리가 생기면 주 6일 혹은 7일을 달릴 때도 있었다. 술을 마실 때 항상 기분이 좋은 건 아니다. 그러기에 마실 술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집에서 또 마시니 가족들의 눈에는 엄청 좋지 않게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겁이 났다. 내가 술을 마시면 별다른 주사는 없지만, 빠르게 마시는 날에는 지하철 2호선을 뱅글뱅글 도는 것이다. 정말 돌아버릴 것 같았다. 작년에는 새 핸드폰 갤럭시S24를 사놓고 한 달 만에 잃어버리기도 하고, 버스 정류장에서 자기도 하고, 가방을 놓고 내리고 자꾸 뭔가 이상한 행동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아직까지 신변에 이상이 없는 건 신이 이제 그만하라고 주는 메시지인 것 같다.


어느 순간 나의 둘째딸이 자기 전에 항상 "아빠 술 먹었어?"를 물어본다. 안 먹었다고 해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한다. 콜라를 마실 때도, 주스를 마실 때도 "아빠 술 먹어?"라고 물어본다. 그래서 이제는 주 1회 술을 마시고 가끔 다음 주 마실 술을 1회 땡겨 쓰기도 하지만, 건강을 위해서는 이게 맞다고 생각한다. 우리집 CCTV 3개의 날카로운 시선 아래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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