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구조 위에서 다시 묻는다

어디서부터 바꿀 수 있을까

by LIFOJ

1. 너무 조용하게 벌어진 일들

QR코드를 찍고, 앱을 열고, 환율을 확인하지도 않고,
사람들은 그저 결제를 한다.
플랫폼은 그 흐름을 받아주고, 시스템은 아무런 문제 없이 작동한다.

우리는 지난 9화 동안,
이 흐름이 얼마나 많은 규제의 회피,
얼마나 큰 정보 비대칭,
얼마나 의도적인 책임 회피로 작동하고 있었는지를 살펴봤다.

그런데도 이 구조는 아주 조용하게,
그리고 너무나 효율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2. 구조는 사람을 바꾸고, 책임을 지운다

처음엔 모두가 혁신을 꿈꿨다.
‘소비자 중심’, ‘수수료 제로’, ‘외환 자유화’.
하지만 구조는 늘 선의보다 빠르다.

이 구조는 가장 약한 고리를 먼저 찾아낸다.
환율을 모르는 소상공인,
정산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용자,
실시간으로 흐르는 돈을 통제하지 못하는 은행,
경계만 지키는 규제기관.

그리고 그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책임지지 않는 권한’을 부여한다.

플랫폼은 시스템을 설계하지만 책임지지 않고,
금융기관은 데이터만 보고,
국가는 조용히 통계만 쌓는다.


3. 플랫폼은 금융이 아니다?

많은 간편결제 플랫폼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금융회사가 아닙니다.”
“우리는 결제를 중계할 뿐, 송금이나 환전을 직접 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틀렸다.
그들은 실제로는 환율을 설정하고, 외화를 회수하고,
한 국가의 결제 생태계를 설계한다.

이건 더 이상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다.
그리고 시스템은 구조와 책임의 논리로 움직여야 한다.


4. 묻지 않는 사용자, 설명하지 않는 회사

이 구조가 작동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단 하나다.
아무도 묻지 않았고, 아무도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용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며 결제했고,
플랫폼은 ‘원래 그런 구조’라고 설명을 피했다.

‘간편함’이라는 이름으로 묻지 않는 사용자,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책임지지 않는 기업,
그리고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개입하지 않는 정부.

그 셋이 조용한 동의 속에서 불완전한 구조를 완성했다.


5. 법은 있는데, 철학이 없다

한국에는 외환법도 있고, 전자금융법도 있고,
자금세탁방지제도도 있다.
하지만 이 법들이 플랫폼 중심 결제 구조와 디지털 외환 흐름을 담아내진 못한다.

왜일까?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을 보호할 것인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기술이 새로운 흐름을 만들 때,
국가는 어디까지 개입하고, 어디서부터 놓아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일관된 철학 없이,
그저 ‘규제 완화’나 ‘산업 진흥’이라는 말로는
지속 가능하고 책임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없다.


6. 회복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어야 할까

나는 이 구조를 바로 잡을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너무 많이 엉켜 있고, 너무 깊게 침투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다시 질문을 시작할 수는 있다.

환율은 누가 정하는가?

외화는 어떻게 정산되는가?

고객은 무엇을 알고 있어야 하는가?

플랫폼은 어디까지 설명해야 하는가?

국가는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가?

이 질문들을 놓지 않고,
한 사람씩, 한 조직씩
자신이 쥐고 있는 권한과 책임을 되돌아보는 것.

그게 이 조용한 비정상 구조를 다시 돌리는 첫 걸음이 아닐까.


마무리 질문

지금 당신이 사용하는 그 플랫폼,
그 구조 안에서 당신은 사용자였는가,
아니면 단지 침묵한 구성원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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