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의 프레임 속에서만 작동하는 수익 모델
“모르는 상태로 가입해도 괜찮습니다”
보험 상담을 받을 때,
펀드에 가입할 때,
은행에서 신탁 상품을 권유받을 때,
한 가지 공통된 장면이 있다.
고객이 상품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도,
직원은 말한다.
“어차피 이건 전문가가 관리해드리는 거니까요.”
“그냥 맡겨만 주세요. 대부분 다 그렇게 하세요.”
이 말은 위로처럼 들리지만,
실은 고객의 무지를 수익 구조의 전제로 삼는 시스템의 작동 방식이다.
금융은 고객이 정확히 이해하고 비교하기 시작하는 순간,
수익이 줄어든다.
그래서 대부분의 금융상품은
고객이 ‘잘 모르고 가입하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금융사가 고객에게 가장 많이 주입하려는 건 지식이 아니다.
‘믿음’이다.
“이 회사니까 괜찮아요”
“많은 분들이 가입하셨습니다”
“저도 들고 있는 상품이에요”
“VIP 고객님들도 선택하셨어요”
이런 말은 설명이 아니라,
이해하지 않아도 결정을 내리게 만드는 장치다.
정보는 제한적이고, 구조는 복잡하며, 설명은 포장된다.
이때 고객은 설명이 아니라 브랜드, 관계, 사회적 증거를 통해
신뢰 기반 결정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판단의 주도권은 금융사로 넘어간다.
금융사는 고객이 무지할수록 관리 비용이 늘어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무지한 고객은 가장 수익성 높은 고객이다.
질문이 없다
비교하지 않는다
수수료 항목을 검토하지 않는다
장기 유지율이 높다
중도 해지를 피한다
결과적으로 금융사 입장에선
이해도가 높은 고객보다
‘관계만으로 신뢰하는 고객’이
더 예측 가능하고 수익성이 높다.
많은 사람들은 상품 자체를 바꾸면 된다고 생각한다.
더 낮은 수수료, 더 좋은 조건, 더 쉬운 구조.
하지만 금융사는 상품보다
판단의 순간을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설명서를 축약하고,
시뮬레이션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결정에 소요되는 시간을 최소화한다.
고객의 판단 프레임 자체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이해가 아니라 느낌’을 설계하는 것이다.
금융교육은 해마다 강조된다.
금융 문해력, 소비자보호, 투자자 보호 제도 등도 늘어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금융소비자의 ‘실질적 이해도’는 좀처럼 높아지지 않는다.
왜일까?
그건 제도와 교육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알아버리면 팔 수 없는 구조’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은 고객이 공부할수록 불리해지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무지한 상태가 지속되도록 유도하는 편이
더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수익모델이 된다.
금융은 기술이 아니다.
금융은 구조다.
아무리 ‘좋은 상품’이라고 해도,
그 구조가 손실을 고객에게 먼저 전가하고,
수수료를 우선 확보하며,
정보 비대칭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다면,
그건 결국 소비자를 위한 상품이 아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단 하나다.
금융은 복잡하지 않지만,
복잡하게 보이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사실.
그 구조를 꿰뚫는 눈을 가질 때,
비로소 우리는 ‘고객’이 아니라 ‘이해자’가 된다.
나는 지금까지 금융을
믿음으로 선택해왔는가,
이해로 선택해왔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