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출신의 신입이 들어왔다
원래 계획과 달리 신입사원 2명과 경력 사원 1명이 입사가 확정이 되었다. 언제 면접을 봤는지 모르겠지만 확정이었다. 신입 두 명은 홍세진 대표의 제자였으며, 한 명은 홍 대표와 친한 교수의 제자였다. 그 친한 교수는 회사의 기술고문으로 있었다. 신입 사원 2명은 모두 석사를 마치고 왔다. 그리고 경력 사원은 박사를 마치고 3년차 포닥 연구원을 하던 사람이었다. 이름은 박신규였다. 기업 경험은 없으며 홍 대표와 약 10년간 호흡을 맞춘 제자였다.
신입 사원들이 출근한 첫날, 불과 몇 명이 늘었을 뿐인데 북적북적해진 느낌이었다. 복도에는 낯선 목소리가 오갔고, 책상 사이에는 웃음이 잦았다. 새로 들어온 이들은 어색해할 틈도 없이 자연스럽게 무리를 이루었다. 기존 인원과 새로 충원된 인원 모두 홍 대표이라는 공통분모 덕분이었다. 그들은 마치 오래전부터 합을 맞춰온 팀처럼 움직였다. 호칭은 익숙했고 대화는 끊기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대학원 시절의 회고담이 흘러나왔다. 학회 발표를 준비하며 실험실 바닥에서 쪽잠을 자던 기억, 지도교수에게 혼나던 에피소드까지. 그 이야기 속에서 홍 대표는 여전히 대표라기보다 교수님에 가까운 존재였다.
그들의 표정에는 묘한 자신감이 서려 있었다. 그것은 익숙한 연구의 연장선 위에 서 있다는 안도감에서 오는 것인지도 몰랐다. 이 회사에서 다루는 세포주와 공정이 그들에게 전혀 낯설지 않다. 실험실에서 이미 수없이 다뤄본 경험이 그들에게는 자신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특히, 경력 사원으로 들어온 박신규 박사가 그랬다. 팀장급으로 들어온 그는 이미 나와 동등한 직급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내가 팀장이었을 뿐이다.
새로 들어온 분들과 기존 팀원 간의 인사를 시킬 필요는 없었다. 대신 앞으로 해야할 일들에 대해서 팀 미팅 시간에 전달했다. 그 때, 홍 대표가 미팅에 들어와 신입들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주고 갔다. 실험실 저널 미팅처럼 기존 논문과 하던 연구를 금요일 오후에 발표하는 것으로 했다. 대략적인 내용을 정리하고, 신입 교육 일정과 담당자를 지정한 후 내 책상으로 돌아왔다.
내 책상 위에는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서류들이 놓여 있었다. 그중 계속 눈에 밝히는 건 세포은행 관련 문서였다. 연구노트 사본들이 몇 장씩 묶여 있었고, 출처가 분명하지 않았다. 어떤 것은 이메일을 그대로 출력한 형태였다. 날짜가 빠진 페이지와 서명이 누락된 문서, 제각각인 기록 형식들이 손글씨로 휘갈겨 적어져 있다. 연구 담당자는 이전에 졸업한 선배라고 하더라.
나는 서류를 넘겼다. 세포주 이름, 배양 조건, 동결 보관 기록. 어딘가에서 시작된 흔적은 분명한데 정확한 출발점이 보이지 않았다. 문서를 덮자 멀리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유독 날카롭게 고막을 때렸다.
다음 날 박 박사가 나를 찾아왔다. 그는 책임연구원으로 입사했으나, 이미 박 박사님이라 불리고 있었다.
"팀장님, 지금 배양 업무는 어떻게 되고 있나요? 제가 해야할 게 있을까요?"
고개를 들자 그가 서 있었다. 박 박사의 눈빛이 꽤 반짝였다.
"네이처 논문에 나오던 그 세포주 사용하는 것 맞죠? 대표님 논문 혹시 보셨나요?"
그의 말투에는 기대감이 묻어 있었다. 홍 대표의 직계 제자인 그는 대학원 시절 논문에 공동저자로 참여할 만큼 이 연구에 익숙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태도에는 묘한 여유가 있었다. 처음 접하는 제조소인데도 낯설어하는 기색이 없었다.
"아 읽어봤습니다."
"아직은 생산 관련해서는 김 선임 따라서 교육을 한번 받아주세요."
"저희가 어떻게 하는지 보시는게 좋을 듯해요."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포는 저희가 연구실에서 몇 년 동안 계속 쓰던 거라 익숙해서요."
"그리고 세포은행이라는 것도 만들어보라해서 제가 만들었거든요."
찾았다. 지금 세포은행을 만든 사람이 박 박사였다. 나는 그에게 이 세포은행 만들 때 어떻게 만들었는지 자세한 기록을 달라고 요청했다.
"제가 예전에 드린 연구노트 스캔본 있지 않나요? 그거면 충분하다해서."
"충분하지 않아서요. 그럼, 박사님. 세포은행 만드실 때 기록했던 자료들을 학교에 있는지 확인해주세요."
"네. 찾아볼께요."
"근데 제가 드린 그 정도 자료면 충분할텐데요."
말을 흐렸지만 의미는 분명했다. 이미 잘 아는 대상이라는 확신. 나는 짧게 답했다.
"이제는 의약품을 만들어야 해요."
"기록이나 사용된 소모품 정보가 없으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거라서요."
"네, 찾아보겠습니다."
그날 오후부터 김 선임을 담당자로 생산 교육을 진행했다. 나는 참관인으로 참여했고, 박 박사를 포함해서 우리팀 신규인원 3명과 연구팀 신규인원 3명이 참여했다. 연구팀도 교육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대표의 의견이 반영되었다.
잠시 뒤, 제조소 입구에서 가방을 뒤적이는 박 박사를 발견했다. 길쭉한 플라스틱 케이스를 꺼내고 있었다.
"그거 뭡니까?"
"아, 제 개인 피펫입니다. 연구실에서 쓰던 건데 손에 익어서요. 이게 훨씬 정확합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말투는 정중했으나 그 안에는 은근한 고집이 있었다. 자신이 경험한 영역에 대해서 꺾이지 않을 것 같은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개인 장비는 반입 금지입니다."
"여기서 사용하는 장비는 전부 교정과 밸리데이션이 끝난 것만 씁니다."
"개인이 익숙한 장비보다, 관리되고 있는 장비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표정에는 여전히 수긍하지 못한 기색이 역력했다. 에어샤워 앞에서도 비슷한 실랑이가 이어졌다. 방진복 모자를 대충 쓴 채 에어샤워 안에서 잡담을 나누던 신입들은 사이클이 끝나기도 전에 문을 열려 했다.
"아직 안 끝났습니다. 에어샤워 종료되면 들어가요."
"연구실에서는 이렇게까지 하진 않았는데요."
그 말은 가벼웠지만 뼈가 있었다. 연구실에서는 문제없던 일들이 여기서는 지나치게 엄격한 장애물처럼 느껴진다는 투였다. 나쁜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다만, 그들에게 이곳은 생명을 다루는 엄격한 제조 현장이 아니라 그저 조금 더 시설이 좋아진 실험실에 불과했다. 연구실에서는 문제없던 방식들이 여기서는 왜 틀린 것이 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이해하려 하기보다 규제를 가하는 나를 유별난 사람 취급하고 있었다. 그들의 기준은 여전히 자유로웠던 대학원 실험실에 머물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