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타기를 위한 기둥이 스티로폼처럼 가볍다
비임상 샘플 생산은 이제 회사 생존의 핵심이었다. 투자금이 들어온 마당에 공정 안정화는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였다. 이제 진짜 의약품 설계의 시작이다. 생산을 위한 준비는 전쟁터 같았다. 6개월이라는 기한을 맞추려면 표준작업절차서와 기록서 수십 개를 새로 쓰고 검토해야 했다.
석사 혹은 학사 신입으로 이루어진 팀원들에게 초안 작성을 맡겨보았지만, 연구실 보고서와 산업 현장의 표준작업절차는 결이 달랐다. 결국 대부분의 시간이 오롯이 내 교정 작업 시간이 되었다. 결국에는 문서 작성 교육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렇게 지독하게 다듬고 나니 문서도 질이 높아졌다. 비임상을 미룬 후 두 달이라는 시간이 벌써 지났다. 이제 나는 회사에서 막 4 개월 차를 지났다.
하지만 마지막 관문인 생산 공정 밸리데이션 자료를 정리하던 중, 내 눈을 의심케 하는 기록을 발견했다. 우리 공정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마스터 세포은행(MCB)의 제조 기록지였다. 연구노트를 스캔한 것 같은 자료였다. 지금까지 GMP에서 생산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서류 구석에 찍힌 보관소 직인이 내가 알고 있는 제조사가 아니었다. 제조사의 소재지를 확인하니 홍 대표가 교수 시절 운영하던 학교 내 공동기기실이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왜 지금까지 모르고 지나갔지? 세포은행에 대한 문서는 품질 결과만 보고 있던 것이 원인이었다. 세포은행은 모든 바이오의약품 생산의 기점이다. 이게 GMP 환경에서 구축되지 않았다면, 그 위에서 쌓아 올린 모든 데이터는 모래성이나 다름없었다. 비임상은 어떻게든 넘길 수 있을지 몰라도, 임상 승인 단계에서는 치명적인 결격 사유였다. 중요한 건은 실험실에서 제조된 세포은행이 이후 GMP에서 동일하게 만들어 질 가능성이 너무 낮다는 것이다. 나는 즉시 연구팀장을 찾아갔다.
"박 팀장님, 저희 쓰는 세포은행 이거 GMP 시설에서 만든 게 아니었나요?"
"학교에서 있을 때 만들었을 거에요. 아마 대학병원이랑 같이 만든걸로 알고 있는데요?"
"혹시 이 세포은행 제조기록서 있나요?"
"음... 아마 학교때 쓰던 연구노트를 찾아봐야겠는데. 무슨 문제 있나요?"
"GMP에서 만든 건 줄 알았는데, 기록도 없으면 나중에 IND 제출 때 문제될 것 같은데요."
"아... 그럼 대표님과 얘기하는게 좋을 듯해요."
박 팀장은 파티션 너머로 대표실을 쳐다봤다. 그도 일단은 세포은행 생산 기록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대표실에 홍세진 대표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노크를 했다.
"최 팀장, 무슨 일이에요?"
"대표님, 저희 세포은행 생산 자료가 누락된 것을 지금 확인해서요. 혹시 이 마스터 세포은행 생산 관련한 자료가 있을까요?"
"아, 그거. 그때는 내가 관리하던 학교 실험실에서 아주 엄격하게 만들었죠."
"지금 이 자료만으로는 비임상 생산에 적합하지 않아서요."
홍 대표는 내가 가져온 세포은행 관련 서류를 훑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 안경을 닦았다.
"오염도 없었고 바이러스 시험 결과도 깨끗하게 나오지 않았나요?"
"대표님, 결과가 깨끗한 것과 절차상 GMP를 준수했느냐는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나중에 임상용 샘플 만들 때 문제 됩니다."
내 목소리가 높아졌다. 문제가 된다는 말에 다시금 홍 대표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리고 의자에 몸은 완전히 누운 채로 팔짱을 껸 채로 얘기했다.
"최 팀장."
"네."
"너무 원칙론적으로만 생각하지 말어. 지금 다시 세포은행을 만들면 비임상 일정은 1년은 뒤로 밀리게 될텐데. 그럼 투자자들이 가만히 있겠어? 일단 비임상 결과로 증명하고, 임상 가기 전에 기술적으로 보완하면 되지."
그는 본인의 생각을 확실히 했다. 다시금 몸을 일으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대화가 끝났다는 신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안은 지금 얘기를 해야했다.
"우선 세포은행 GMP 생산은 지금부터 진행해야됩니다."
"이렇게 서두를 필요가 있어? 얼마가 들지도 모르는데"
"실험실에서 구축한 세포은행과 같은 품질을 가지려면 아마 공여자부터 다시 선정해야할 수 있어요. 나중에 임상 샘플 생산에 문제가 될 겁니다."
"최 팀장은 매번 나중에 문제가 된다고 하네. 그렇게 본인이 만든 제품에 자신이 없어?"
대학원생을 혼내는 듯 답답하다는 말투로 얘기를 했다. 마치 내가 마치 철없는 대학원생이 된 것 같았다. 그렇지 다시 생각해봐도 자신감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말이 날카롭게 뱉어졌다.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규정의 문제입니다."
"어떻게 생산한지 정확히 모르는 세포은행을 사용하면 비임상 시험 자체가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내 단호한 말에 어김없이 방 안에는 차가운 정적이 흘렀다. 홍 대표는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처음 본 학회에서의 총명한 대학교수의 것이 아니었다. 투자금이라는 숫자에 쫓기는 조급한 사업가의 눈이었다.
"최 팀장, 여긴 학교가 아니야. 비즈니스라고. 일단 비임상 성공시켜서 다음 라운드 투자받는 게 우선이야. 그 뒤에 돈 더 들어오면 그때 다시 만들든 말든 하자고."
결국 나는 대답 없이 대표실을 나왔다. 등 뒤로 닫히는 문소리가 유난히 무겁게 들렸다. 사무실에서는 여전히 팀원들이 화려했던 주주총회에 대한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웃고 있었다. 나만 입을 다물면 이 평화는 유지될 것이다. 하지만 내 눈앞에는 이미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거대한 모래성이 보였다.
그러는 와중에, 팀원이 기쁜 얼굴로 얘기를 했다.
"저희 추가 바이러스 검사에서 아무것도 검출되지 않았대요."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날 오후 갑자기 인사팀장이 나를 찾아왔다. 지금 대표님 지시로 우리 팀 인원을 2명 증원할 계획이라 했다. 반가운 소리였다. 세포은행 문제로 머리가 복잡하던 차에 실무를 나눠 가질 손길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나는 4개월 전 입사 당시 홍 대표가 약속했던 전문가 충원을 떠올리며 물었다.
"드디어 뽑는군요. 그럼 입사 때 말씀하셨던 과장급 경력직 채용 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경력직이요? 저는 들은 바가 없는데요."
"네? 분명 저 합류할 때 경력직을 계속 알아보고 있다고 하셨는데."
"글쎄요, 이전에 그런 내용은 없었습니다."
인사팀장의 건조한 대답에 말문이 막혔다. 계획이 바뀐 것인지 알 길은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일단 당장 필요한 인원부터 확보해야 했기에 이번 주까지 공고문을 작성해 주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업무에 투입할 수 있는 3~7년 차 경력직 위주로 공고문 작성해서 드릴께요. 배양이랑 정제 경험이 있어야 할 듯한데..."
"아, 그게... 대표님께서 신입을 뽑길 원하셔서요."
"신입이요?"
"네. 백지상태인 신입을 뽑아서 우리 회사 색깔에 맞게 잘 키우길 원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신입을 잘 키우는 것도 능력이라고 하세요."
머리가 지끈거렸다. 지금은 실무에 즉시 투입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사람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팀에 필요한 건 잘 키울 아이가 아니라, 당장 터진 둑을 함께 막을 노련한 사수였다.
"지금 비임상 샘플 생산 들어가야 합니다. 신입 둘이 들어오면 제가 교육만 하다가 일정이 다 끝나요."
"대표님 뜻이 워낙 완고하셔서요. 아, 그리고 이미 봐두신 분들이 있는 것 같던데..."
인사팀장은 말끝을 흐리며 자리로 돌아갔다. 봐둔 사람이라는 말의 의미를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음 날, 내 책상 위에는 두 장의 이력서가 놓였다. 그러나 나는 아직 공고문을 작성하지 않았다. 한 명은 홍 대표의 제자였고, 다른 한 명은 홍 대표와 친분이 두터운 타 대학 교수의 제자였다. 둘 다 화려한 학부 성적과 실험실 경험을 자랑했지만, 바이오의약품 생산이 무엇인지, 품질평가는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한 줄의 경력도 없었다. 결국 나더러 이들의 스승 노릇까지 하라는 뜻이었다.
자리에 앉아 찬물을 들이켰다. 세포은행은 기준 미달이고 새로 들어올 인력은 기초 교육부터 시켜야 하는 신입들뿐이다. 투입되는 자본의 규모는 거대해지는데, 정작 그 자본을 받쳐줄 실무의 근간은 점점 더 가볍고 위태로워지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담배가 생각나 회사 밖으로 나왔다.
어느덧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난 사무실, 창밖으로 보이는 회사 건물은 여전히 번쩍였다. 누군가는 우리 회사가 50억 투자를 받은 유망주라며 부러워하겠지만, 그 화려한 조명 아래서 회사의 기둥은 스티로폼 같은 위태위태한 상황처럼 보였다.
문득 주주총회 날 대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가 얼마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그때는 그가 책임감을 공유하려 한 말로 이해를 했다. 하지만 지금 회사는 학교와 기업간의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줄에서 떨어지지 않게 균형을 잡는 방법을 몰랐다. 실험실에서 하던 전력질주 방식 그대로 지금도 줄 위를 달리고 있었다.
예전에 해오던 일, 절차를 무시한 진행, 방법을 모르는 사람 그리고 장밋빛 환상에 취한 투자금. 이 모든 것이 한데 섞여 거대한 폭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 화려한 줄타기 공연은 계속되겠지만, 걸어가면 갈수록 감당해야 할 추락의 공포도 함께 점점 커졌다.
이력서를 확인해봤냐는 인사팀장의 메시저 알림이 깜빡이고 있었다.
"팀장님, 언제 퇴근하세요?"
가방을 메고 나가는 직원이 인사를 건넸다. 나는 서둘러 식어버린 커피를 마저 들이켰다.
"아직 확인할 게 좀 남아서요. 먼저 들어가세요."
다시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서류 뭉치들을 다시금 정독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