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 실패 뉴스와 미뤄진 일정이 만들어 낸 불안
투자 소식과 화려한 주주총회 이후, 회사의 공기는 축제 같았다. 탕비실에서는 우리 사주로 얻을 수 있는 기대 이익을 계산하는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려왔고, 팀원들의 얼굴에는 유례없는 여유가 감돌았다. 하지만 그 고조된 분위기에 균열을 내는 소식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책상에 앉아 생산 표준작업절차서와 제조기록서를 검토하고 있던 순간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잔잔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사 집무실 문이 열리며 정 이사가 식약처 긴급 발표가 떴다고 말했다. 말한 사람의 표정이 평소와 달라서 회의실 안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멈췄다.
노트북 화면을 돌려 속보를 확인했다. 국내에서 가장 주목받던 단백질 의약품의 임상 3상 실패. 예상치 못한 중대한 부작용이 이유였고, 추가 조사 과정에서 원료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됐다는 내용이었다. 기존 시험 항목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유형이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 회사는 이 기술로 주가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던 참이었다. 상장 이후 10년 만에 주가가 12배가 오른 유망한 회사였다. 바이오 기업 성공을 보여주는 업계의 상징 같은 곳이었다.
사무실은 금세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다. 팀원들은 모니터 앞에 모여 앉아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뉴스를 공유하며 한 마디씩 거들었다.
"3상이면 사실상 다 온 거 아니었나? 저기 임상 데이터 진짜 좋다고 소문났었는데."
"공정 관리를 어떻게 한 거야? 거긴 대기업 수준 아니었어?"
"와 오늘 주가 박살 나겠네. 저기 주주들은 진짜 날벼락이겠다."
"얼른 빼야겠네."
사람들의 반응은 냉정했다. 비극적인 소식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그저 흥미로운 업계 가십이나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는 듯했다. 불과 며칠 전 연회장에서 들었던 낙관적인 말들이 갑자기 멀게 느껴졌다. 나는 화면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지만 기사의 의미가 바로 정리되지 않았다. 정 이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도 영향이 있을 텐데요.”
"이런 상황이면 저희도 바이러스 데이터를 보강하는 게 좋을 듯해요. 재현성 데이터를 더 확보해야 합니다."
말을 하고 나서야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차분했다는 걸 느꼈다. 사실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오히려 바이러스 검출이라는 명확한 결과가 있다면 우리 샘플을 테스트해 보면 그만이다. 하지만 정 이사의 생각은 나와 달랐다. 이 소식을 보고하러 부랴부랴 대표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홍 대표가 정 이사와 함께 방에서 나왔다. 미간에는 깊은 골이 패어 있었다.
"방금 투자사에서 연락 왔습니다. 우리 공정에도 비슷한 리스크가 없는지 결과를 제출하라고 하네요."
홍 대표의 시선이 내 책상 위에 쌓인 제조기록서 뭉치에 머물렀다. 그의 눈빛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절박함이 서려 있었다. 마음이 급한 것인지 원래는 존대를 하던 홍 대표가 말투가 바뀌었다.
"우리 샘플은 문제없지? 지금 당장이라도 확답해 줄 수 있나?"
나는 펜을 내려놓고 침착하게 답했다.
"현재 공정 내 정제 단계에서 바이러스 불활화 검증은 끝난 상태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터진 건 다른 유형이라서 기존 항목 외에 새로운 실험을 해봐야겠네요. 해당 시험을 하는 기관을 찾아보고 진행해 보겠습니다."
내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홍 대표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는 엔지니어의 확신이 아니라 경영자의 안심을 원하고 있었다.
"지금 투자사들이 난리야. 우리도 이 문제 때문에 임상 못 들어가는 거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고."
"우리가 다음 라운드 가려면 이 의구심부터 잠재워야 해. 데이터 보강, 이거 얼마나 걸리겠어?"
"바이러스 시험이 최소 28일 이상 걸립니다. 업체 찾아보고 결과까지 보려면 두 달은 잡아야 합니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 이사가 끼어들었다.
"두 달은 너무 길어요. 당장 다음 주에 투자 실사 오겠다는 곳도 있습니다."
"일단 기존 데이터 기반으로 '리스크 없음' 소견서부터 작성하고 실험은 병행하면 안 될까요?"
사무실의 공기가 묘하게 뒤틀렸다. 정 이사와 홍 대표는 어떻게든 이 파도를 빠르게 넘어가길 원했다. 성공 확률 100%를 자신하던 사람들의 눈 속에 처음으로 공포라는 불순물이 섞여 들기 시작했다. 투자가 회사의 체력을 늘려줬을지는 몰라도, 이런 예상치 못한 변수 앞에서의 인내심까지 길러주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일단 바로 찾아보고 최대한 빨리 진행하겠습니다."
선두 기업이 시작이었을까. 국내외 제약사들의 임상 실패 소식은 이후로도 연일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수년의 공과 수천억 원의 투자가 무색하게 2상에서 멈추고 3상에서 엎어졌다는 속보들이 쌓여갔다. 이런 기사는 한 달에 한두 개 있을까 말까 한 기사였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이번 주만 해도 5개의 임상 실패 기사가 쏟아졌다. 기사를 읽을 때마다 묘하게 속이 조여 왔다. 남의 회사 이야기인데도 전혀 남 일 같지 않았다.
실패 사례가 쌓일수록 투자자들은 보수적으로 변했고 실사 질문은 날카로워졌다. 재현성과 공정 일관성이라는 단어가 회의실에서 더 무겁게 울렸다. 비임상 일정을 미루기로 한 선택이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시장의 공기는 분명 차가워지고 있었다.
그 냉기는 시리즈 A 투자 실사 미팅 자리에서 가장 또렷하게 체감되었다. 미팅룸의 스크린에 수정된 로드맵이 띄워졌다. 비임상 진입을 의미하는 화살표가 기존 계획보다 6 개월 뒤로 밀려나 있었다. 그 짧은 직선의 이동이 가져온 파장은 생각보다 컸다. 투자사 측 심사역 중 한 명이 안경을 벗어 테이블 위에 올려두며 입을 열었다.
"우리가 지난번 시드 투자 때 합의했던 마일스톤과는 차이가 좀 있네요."
"일정이 지연된 가장 직접적인 이유가 뭡니까?"
질문은 차분했으나 시선은 날카로웠다. 대표가 나를 바라봤다.
"공정 재현성 확보 때문입니다."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말이 공기 중에서 무게를 가지는 게 느껴졌다.
"현재 데이터로도 진입은 가능했던 것 아닙니까?"
"가능은 했습니다. 다만 동일 조건에서의 생산 일관성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로 진입할 경우, 추후 공정 변경에 따른 재시험 리스크가 큽니다. 그 확률을 줄이기 위해 일정을 조정했습니다."
다른 투자자가 덧붙였다.
"바이오 기업에 시간은 곧 돈 아닙니까? 단순히 재현성 때문이라면, 임상 시료 생산 전까지만 잡아도 되는 문제 아닌가요?"
"단순히 재현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최근 발생한 타사들의 실패 사례를 분석해 본 결과, 초기 비임상 데이터와 실제 대량 생산 시료 간의 불일치가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저희는 스케일업될 때도 동일하게 유지된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겁니다."
"그게 그렇게 치명적인 결함입니까?"
“무리하게 일정을 밀어붙여 비임상에 진입했다가, 나중에 공정 일관성 문제로 식약처에서 보완 요구라도 받는 날에는... 그때는 6개월이 아니라 몇 년이 지연될 겁니다. 저희는 속도를 포기한 게 아니라 확실한 제품을 선택한 겁니다.”
누군가 펜으로 노트를 톡톡 두드렸다.
"결국 확률을 높이기 위해 시간을 쓰겠다는 말씀이네요."
비난이 아니라 계산이었다. 홍 대표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맞습니다. 지금 시장 상황에서는 속도보다 리스크 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확보한 이 데이터들이 결국 다음 라운드에서 우리 회사의 밸류에이션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긴 침묵이 흘렀다. 투자자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노트북에 무언가를 빠르게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한참 뒤 가장 선임으로 보이는 투자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는 합니다. 요즘 같은 시기에 일단 가보자는 식의 장밋빛 발표보다는 차라리 솔직한 게 낫긴 하죠."
"다만 그만큼 일정에 대한 신뢰는 더 중요해지겠죠."
허락인 동시에 압박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자료를 정리하는데,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는 걸 그때야 알았다. 누군가의 시선 앞에서 일정 하나를 증명하는 건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 왜 멈췄는지를 설명하는 일이 잦아졌다.
다행히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적어도 우리가 길을 잃지는 않았다는 유일한 위안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