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유치 성공과 화려한 주주총회

고조되는 기대감과 높아지는 성공 확신

by 영초이

투자 유치와 고조되는 기대감


그 무렵 회사에는 또 다른 변화가 있었다. 시리즈 A를 앞두고 추가 시드 투자 유치 소문이 들렸다. 투자의 규모는 약 50억 원. 초기 단계 기업으로서는 이례적인 금액이었고, 특히 기존 투자사들이 기술력을 높게 평가해 후속 참여했다는 점이 고무적이었다. 공식 발표가 있던 날, 평소보다 늦게 출근한 홍세진 대표는 인자한 미소를 띠며 연구실을 돌았다. 사무실 곳곳에서는 웃음과 농담이 터져 나왔다.


홍 대표는 임원과 팀장들을 소집했다. 겉으론 담담해 보였으나 목소리에 실린 미세한 떨림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교수 시절부터 좁은 학교 실험실에서 동고동락해 온 제자 출신 팀장들은 스승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이 섞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제 시작입니다. 이제 임상 2상 성공을 위해서 더욱 노력해 봅시다."

"이대로만 간다면 엑시트는 문제없어요."


대표의 말이 끝나자 분위기메이커인 박 이사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다 같이 박수로 자축하였다. 누군가는 장밋빛 주식 대박을 꿈꿨고, 누군가는 외부의 긍정적인 평가에 안도했다. 성공 확률이라는 숫자가 100%에 가까워지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그 정도로 유래없는 밝은 분위기였다.

"우리 이러다 부자 되는 거 아냐?"


분명 자금이 들어온다는 건 선택지가 늘어나는 일이다. 또한 그와 동시에 기대치를 구체적인 숫자로 치환한 것이다. 투자 규모가 커질수록 일정표는 촘촘해질 것이고, 단 하루의 지연에도 날 선 해명을 요구받게 될 터였다. 하지만 나 역시 오늘만큼은 복잡한 생각을 접고 분위기에 젖어보기로 했다. 회사는 오후 4시라는 이른 시간부터 근처 고급 일식당을 통째로 빌려 회식을 시작했다.



회식이라기 보다는 자축 파티에 가깝다

평소라면 데이터와 씨름하고 있을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회사 앞 고급 일식당의 넓은 방에 모여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평소 구경하기 힘든 정갈한 사시미 코스와 값비싼 사케 병들이 줄지어 올라왔다. 박 이사가 잔을 높게 들며 외쳤다.

"자, 다들 주목! 오늘 이 자리는 바이오 벤처 사상 최대의 시드 투자를 유치한 단 역사적인 날이에요. 홍 대표님, 아니 교수님! 한 말씀하셔야죠?"


좌중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홍 대표는 자연스럽게 안경을 고쳐 쓰며 일어났다.

"다들 고생 많았습니다. 우리 기술을 보고 투자하겠다는 사람들이 줄 서고 있어요.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비임상 마무리하고 시리즈 A로 넘어가면 회사를 더 키울 수 있을 겁니다."

"상장하고 나면 우리도 이제 진짜 부자들이되는 거예요!"

"교수님, 저 벌써 차 카탈로그 보고 있습니다!"


제자 출신인 김 팀장이 너스레를 떨자 방 안은 폭소로 가득 찼다.

"임상 2상만 성공하면 그땐 차가 문제가 아니라 집을 사야지!"


박 이사가 내 옆으로 다가와 어깨를 툭 쳤다.

"오늘 왜 이렇게 얌전해? 최 팀장, 공정 잡느라 고생한 거 투자사들도 다 알더만. 공정에 대해서 맘에 들어하던데? 이렇게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 자료는 없었다고."

"이제 돈 들어오면 사람도 더 뽑고 장비도 싹 바꾸자고. 돈 걱정은 이제 하지 마."


나는 웃으며 잔을 비웠다.

"네, 그래야죠. 좋은 장비랑 좋은 인력이 들어오면 속도가 좀 붙겠죠."

"그렇지! 다들 들었지? 우리 최 팀장님이 장비만 들어오면 다 해결해 준대! 오늘 마음껏 마셔!"


박 이사의 호쾌한 외침 뒤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겹쳐졌지만, 나는 묘하게 그 열기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기분이 들었다. 자금이 유입된다고 해서 불안정한 공정이 마법처럼 안정되지는 않는다. 기대가 커진다고 데이터 산출 속도가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지도 않는다. 기쁨의 소음이 커질수록 내 머릿속의 책임감은 오히려 선명한 대비를 이루며 또렷해졌다. 투자는 회사의 체력을 키워주지만, 그 체력을 어디에 어떻게 효율적으로 써야 할지 더 가혹하게 묻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홍 대표는 기세를 몰아 시리즈 A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이어갔다. 투자사에서도 이미 긍정적인 신호가 오고 있고, 이번 비임상만 차질 없이 끝나면 가시권이라는 말이었다. 동료들의 눈에는 확신이 서려 있었다. 그 믿음 앞에서 나는 입안에 남은 사케의 씁쓸함을 삼켰다. 나는 술잔을 기울이면서도 앞으로 실행해야 할 업무과 투입해야 할 예산의 규모를 머릿속으로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남들처럼 분위기에 취해 웃고 떠들기엔, 내 안의 걱정들이 자꾸만 발목을 잡았다. 역시 나는 노는 것조차 마음 편히 못 하는 걱정꾼이 틀림없었다.


식당을 잠시 나와 흡연장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늦은 오후의 노을이 유리 외벽에 부딪혀 반짝였다. 두어 명의 남자들이 흡연장으로 들어왔다. 대표와 박사 제자들이었다. 대표는 내쪽으로와 전자담배를 꺼내며 물었다.

"분위기 좋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들 기대가 큰 것 같습니다."


대표는 웃었다. 그리고 희망적인 어조로 얘기했다.

"이럴 때 속도 내야 합니다. 시장이 열렸을 때 들어가야죠."


그 말에 나도 자연스럽게 동의했다.




화려한 첫 주주총회

이 분위기는 주주총회에도 이어졌다. 회사의 첫 주주총회는 벤처 투자사 본사의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평소와는 다른 압도적인 공기가 느껴졌다. 호텔 로비처럼 유리와 금속 구조물이 교차하며 넓은 회의실과 벽면 전체를 채운 통유리로 늦은 오후의 햇살이 쏟아졌다. 바닥에 반사된 빛은 사람들의 잘 관리된 구두 끝에서 날카롭게 반짝였다. 중앙 스크린에는 회사 로고와 그 곁을 원형으로 감싸고 있는 투자사들의 로고가 감싸는 화면이 띄우져 있었다. 그리고 금방 해가 지고 밤이 되었다.


정장 차림의 사람들은 자리에 앉은 채로 부드러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윽고 하나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회의실 안에는 낮은 음악 소리와 목소리들이 뒤섞였다. 케이터링 테이블 위로는 정갈한 음식들이 놓였고, 사람들은 가벼운 접시를 든 채 여유로운 미소를 띠었다. 나는 대표님을 따라 명함을 주고받으며 인사를 돌았다.

"요즘 분위기 좋아 보입니다."

"바이오 섹터가 확실히 살아나는 느낌이죠."


누군가는 거시적인 시장을, 누군가는 구체적인 기술을 논했다.

한 투자자가 자연스럽게 물었다.

"비임상 진입은 언제쯤입니까?"


대표님은 여유 있게 미소 지으며 답했다.

"준비는 마쳤습니다. 일정은 곧 확정될 겁니다."

"좋은 타이밍이네요. 시장도 지금 열려 있고요."


그 말은 단순한 덕담보다는 확신에 찬 예언처럼 들렸다. 총회 행사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각자 자리를 앉았다. 조명이 낮아지고 준비한 스크린이 켜졌다. 첫 슬라이드에는 회사 로고와 함께 투자 유치라는 제목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단상에 선 홍 대표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힘이 실려 있었다.


투자와 관련한 안건, 이사 선임 등 이사회 안건이 대표를 통해 발표되었으며, 모든 안건은 나무 의사봉 소리와 함께 통과되었다. 그리고 추가로 회사의 최근 현황에 대해서 발표가 이어졌다. 슬라이드가 넘어갈 때마다 개발 진행 상황, 시장 규모, 향후 일정이 그래프와 숫자로 보였다. 발표가 이어질수록 회의실 내의 공기는 점점 더 팽팽한 집중력으로 채워졌다. 펜이 종이 위를 스치는 소리, 태블릿에 메모를 남기는 손가락 움직임 하나하나가 우리 회사의 가치를 매기는 소리처럼 들렸다.

"현재까지 확보한 데이터는 목표치를 상회합니다. 다음 단계 진입도 계획대로 진행 중입니다."


질답 시간이 이어졌다.

"생산 스케일업은 어느 단계까지 준비됐습니까?"


질문은 날카로웠다. 실제로 의미 있는 제품 생산이 가능하냐는 질문이면서도, 공장을 돌렸을 때 터져 나올 변수까지 계산하고 있는지 떠보는 질문이었다. 홍 대표가 나를 바라봤다. 나는 마이크를 고쳐 잡으며 미리 준비한 데이터를 머릿속에 띄웠다.


"현재 5 리터 배양 수준에서 배치 당 3천 개 수준의 제품 생산 공정을 확보했습니다. 다음 분기 내로 20 리터급 파일럿 설비 세팅을 완료할 계획이며, 임상 2상까지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스케일입니다."

"또한 비임상 시험 완료 후 임상시험계획 제출이 가능하게끔 GMP 공정 밸리데이션 프로토콜을 만드는 작업 중입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맨 앞자리의 빅팜 출신 투자자가 안경을 치켜 쓰며 파고들었다.

"배양 규모가 커질 때 단백질 구조가 변형되는 이슈는 어떻게 잡으실 거죠? 공정에서 가장 많이 넘어지는 구간 아닙니까?"


회의실 모두가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나는 피하지 않고 답했다.

"두 가지 방법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먼저 단백질 구조가 변형되는 조건을 명확히 분석하고 있습니다. pH, 온도, 버퍼 농도, 성분, 첨가제 등에 따라서 단백질 구조가 안정화되는 조건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이 조건에서 우리가 원하는 단백질 구조 변화가 있는지 안정성을 평가 중입니다. 현재까지는 이 공정을 거친 후 95%의 단백질이 적합한 품질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 조건들은 미세하게 조절하면 불량률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정 중에 다양한 센서들로 공정 조건 트렌드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이것들은 자동화할 예정이고요. 또한 스케일업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전달 응력 데이터도 시뮬레이션을 마친 상태입니다. 여기에 맞게 공정 자재들도 설게 할 예정입니다."


질문을 던졌던 투자자가 펜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정적이군요. 기술적 근거가 명확합니다."


그 한마디에 팽팽했던 긴장감이 스르르 풀렸다. 다른 투자자들도 거들었다.

"지금 흐름이라면 다음 라운드 밸류에이션은 상상 이상이겠는데요."


좌중에 옅은 웃음이 번졌고, 발표가 끝나자 만찬으로 이어졌다. 만찬에서는 다양한 투자자들의 이전 투자 기업에 대한 얘기와 성공 스토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홍세진 교수에 대한 칭찬과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와인병은 연이어 개봉되었고, 마치 투자금을 주는 양 와인잔은 금세 빨간색 와인으로 가득 찼다.


행사가 모두 마무리된 뒤, 사람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화려한 케이터링 음식이 군데군데 흐트러진 행사장 구석, 대표와 나는 창가에 서서 강남의 야경을 내려다봤다. 조금 전까지의 열기는 온데간데없고, 회의실을 치우는 소리와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만이 정막을 채웠다. 대표가 넥타이를 살짝 풀며 물었다. 평소보다 지쳐 보이는 목소리였다.

"괜찮았죠?"

"네. 다들 확신을 얻은 것 같습니다."

"특히 스케일업 질문 때 분위기가 완전히 넘어왔어요."


홍 대표는 창문에 비친 자신의 실루엣과 화려한 강남 한복판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조용히 미소 지으며 읊조렸다. 지금의 미소는 조금 전 단상 위에서의 것과는 결이 달랐다. 그것은 안도감이 아니라, 더 큰 파도를 맞이하려는 사람의 비장함에 가까웠다.

"돈을 넣은 사람들은 확신을 원하죠."

"근데 우리는 얼마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지."


그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투자사로부터 온 축하 메시지들을 확인했다. 화면의 불빛이 그의 피로한 눈가를 비췄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이 기분을 즐깁시다."

"그리고 열심히 해줘요."


이후 회의실을 나서며 뒤를 돌아봤다. 텅 빈 회의실의 조명이 하나둘 꺼지고 있었다. 나는 그 열심히라는 마을 조금 곱씹어보았다. 열심히라는 단어의 애매함을 좋아하지 않아서 조금은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하는 일이 이미 거대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흐름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적어도 그날의 우리는 속도와 방향 모두에 의심이 없는 상태였다. 오히려 희망과 확신이었다.


그리고 그 확신은 당연하게도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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