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비임상 일정을 6개월 미뤘다
구내 휴게 공간에서 도시락을 먹고 있는 연구팀장을 찾았다. 그때 비임상 회의 이후 그는 노골적으로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마주치면 인사는 했지만 말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어색함이 공기처럼 떠다녔다. 편의점에서 사 온 비타민 음료 하나를 그의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박 팀장님, 점심 드시고 커피 한 잔 하시죠."
그는 젓가락을 멈춘 채 말했다.
"아, 오늘은 좀 바쁜데..."
"딱 5분이면 됩니다. 비임상 회의 때문에 그러시는 거 압니다."
그가 천천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솔직히 말할까요?"
"네. 그러세요."
"최 팀장님 오고 나서 우리 팀 애들 사기가 팍 죽었어요. 교수님 밑에서 몇 년을 같이 일하던 친구들인데."
"그리고 공들여 실험해서 데이터 가져가면 기록 얘기부터 나오고, 이번 비임상도 사실 최 팀장님이 고집부려서 홀딩시킨 거잖아요. 투자자 미팅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말이 거칠진 않았지만 불만은 분명했다. 의자를 조용히 끌어 앉았다.
"박 팀장님, 연구팀 데이터... 아깝지 않으세요?"
그가 눈썹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대표님이 교수님일 때부터 포스트닥터로 밤새 일하셔서 만든 결과물이잖아요. 이 상태로 들어가면 나중에 더 복잡해질 것 같아서요."
"유효성 데이터에도 샘플 생산에 대한 데이터가 들어갈 텐데 식약처 실사 때 공정 변경 기록 안 맞아서 승인 밀리면 큰일이거든요."
그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말을 조금 더 낮췄다.
"저는 팀장님이 만든 연구를 제품으로 만들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저희가 더 잘 맞춰서 만들어야 하는 건 맞아요."
그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지금처럼 조건이 계속 바뀌면 저는 생산에 실패합니다. 그러면 팀장님 연구 결과들이 단순히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재현 안 되는 사용 못 하는 연구가 됩니다. 그건 임상 약으로도 못 만들게 되거든요. 저는 그 상황을 막으려는 겁니다. 나중에 공정 변경 때문에 비임상을 다시 시험해야 하면 그게 더 아깝잖아요."
잠깐 침묵이 흘렀다. 주변에서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만 들렸다. 태블릿을 꺼내 화면을 켰다.
"저희 팀에서 정리한 겁니다. 연구팀에서 지금까지 좋았던 결과를 바탕으로 비임상이랑 임상시험용 제품 품질 기준을 만든 거예요. 초안입니다."
"최소한 여기까지는 맞춰놓고 가자는 겁니다."
그는 태블릿을 받아 천천히 넘겨봤다. 무균 시험 항목, 바이러스 안전성, 원료 그레이드 확인 체크리스트, 공정 고정 기준 등등 빽빽한 기준들이 있었다.
"이걸 언제 다 했어요?"
"회의 끝나고 나서부터 바로 시작했죠."
그가 짧게 웃었다.
"싸움닭인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치밀하시네."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끼리 싸울 필요는 없죠. 저희가 기준을 맞춰야 일이 진행되니까요."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이죠?"
"다음 주에 세미나 한 번 하죠. 팀장님이 현재 제일 좋았던 데이터를 발표하고, 제가 생산 기준 정리하고요. 우리가 같은 그림을 만들고 있다는 걸 얘기해야죠."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짧게 웃었다.
"알겠습니다. 한 번 해보죠."
완전한 합의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서로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는 이해한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 서로의 역할을 부정하지 사이는 아니라는 걸 확인했다. 그리고 회사 앞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러 갔다. 박 팀장은 교수와 함께 오래 연구한 제자 출신으로 지금 회사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회사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벌써 1시를 훌쩍 넘겼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는 덧붙였다.
"최 팀장님."
"네."
"연구팀 애들 너무 기 죽이지는 마세요."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박 팀장님도 생산팀 애들 너무 몰아붙이지 마세요."
그는 피식 웃었다.
그 정도면 지금 단계에선 충분했다. 적어도 우리는 다른 방향으로 노 젓는 건 아니었다.
그날 홍세진 대표가 나를 부른 건,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였다. 사무실은 거의 비어 있었고 사무실과 대표실 불만 켜져 있었다. 문을 열자 대표는 창가에 있었다.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투자사 로고가 찍힌 자료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반쯤 마신 커피도 그대로였다.
"아 최팀장 왔어요? 앉아요."
목소리가 낮았다. 피곤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맞은편에 앉았다.
"오늘 연구팀이랑 미팅했는데, 점심에 박 팀장이랑 얘기했다면서요."
"네. 세미나 형식으로 정리해 보자고 했습니다."
대표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내가 먼저 말을 했다.
"늦게까지 계셨네요."
"어쩌겠어요. 전화가 계속 와서."
"오늘 투자사에서 전화 세 통 왔습니다."
그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가 다시 내려놨다. 말투가 건조했다.
"비임상 언제 들어가냐고요. 지난주까지는 ‘곧 들어간다’고 했는데, 오늘은 ‘조금 더 준비가 필요하다’고 하니 분위기 안 좋죠."
"최 팀장 말이 틀렸다고 생각은 안 해요. 근데 타이밍이 문제죠. 스타트업은 속도라고 다들 말하는데, 우리는 지금 브레이크를 밟는 그림이니까."
잠시 말을 골랐다.
"지금 밀어붙이면 나중에 더 크게 돌아올 수 있습니다."
"알죠."
그는 책상 위 자료를 툭툭 쳤다.
"이거 다 일정 다시 짜야합니다. 투자사 보고자료도 수정해야 하고요. 비임상 진입 시기를 이번 달에서 뒤로 미뤄놔야겠죠. 투자자들 표정 뻔합니다."
말은 담담했지만 피곤이 묻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했다.
"6개월은 밀릴 겁니다."
"6개월이면 다행이죠. 요즘 분위기에서 6개월이면 다른 회사가 먼저 들어가요. 다들 속도 얘기하는데 우리는 기다립시다라고 해야 하니까."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 사이에 시장 분위기 바뀌면 또 처음부터 설득해야 합니다."
잠깐 정적이 있었다. 대표는 괜히 삼색 볼펜의 딸깍거리며 색을 바꿨다.
"그래도."
"최 팀장 말 듣고 나니까, 그냥 밀어붙이긴 좀 겁나더라고요. 나중에 뒤집히면 그게 더 큰 리스크죠. 비임상에 돈이 한두 푼 드는 것도 아니고."
그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창밖을 잠깐 봤다.
"대표는요. 항상 조금은 과장해서 말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움직이니까. 근데 과장이 거짓말이 되면 안 되잖아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돌아서서 말했다.
"내가 밖에서 욕 좀 먹겠습니다. 대신 최 팀장은 시간 낭비하지 마세요."
"네."
"6개월 벌어오면, 그동안 왜 기다려야 했는지 설명 가능해야 합니다. 그때까지는 비임상 샘플 만들어놔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다시 투자자 앞에 설 수 있습니다."
말투는 부탁이라기보다는 명령에 가까웠다. 짧게 답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참을 생각을 하다 당부하듯이 말을 했다.
"그리고 너무 세게 가지 마세요. 연구팀 사기 떨어지면 더 느려집니다."
"알겠습니다."
대표는 더 말하지 않았다. 대화는 10분도 안 됐지만 내용은 충분했다. 그는 휴대폰 화면을 다시 켰다. 언뜻 보인 핸드폰 화면에서는 읽지 않은 메시지와 부재중 통화 알림이 여러 개 떠 있었다.
대표실을 나와 복도를 걸었다. 불 꺼진 사무실이 텅 비어 있었다. 오전까지는 내가 혼자 브레이크를 밟은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누군가가 그 브레이크의 책임을 같이 나눠 들고 있는 상황이 됐다.
그게 든든하다기보다는 더 무거워진 느낌이었다.
이제는 개인적인 고집이 아니라 일정표에 반영된 선택이 되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시작되고 있었다.
국내외 제약사들의 임상 실패 소식이 연일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남의 일처럼 들려오는 저 뉴스들이 우리 연구의 목을 죄어올 줄은 차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예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