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처럼 뛸 수 없는 마흔: 속도보다 방향

2부 | 마흔이 되고 나서야 보이기 시작했다

by 영초이

나는 지독한 속독가다.

최근에도 세상에 이런 일과 같은 TV 프로그램에서 1분 안에 한 권을 뚝딱 읽는 속독의 기인들이 나오곤 한다. 그 정도의 극단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 그들이 말하는 속독법을 흉내 내다 보니 어느 순간 글이 뭉텅이로 보이기 시작했다. 단어가 아니라 서너 줄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왔다. 남들이 한두 줄을 읽을 때 나는 한 페이지를 넘겼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유전자는 내게 빨리 읽는 방법을 배우게 했고, 내게 독서 속도는 곧 능력이었다.


지금도 300페이지 분량의 책 한 권을 읽는 데 30분이면 충분하다. 손은 바쁘게 페이지를 넘기고 눈은 문장을 훑는다. 4주간의 전문연구요원 훈련소 생활 중에도 이 습관은 여전했다. 유일한 낙이었던 독서 시간에 한 번에 책 세 권을 가져와 그자리에서 해치우곤 했다. 동기들이 의심 섞인 퀴즈를 내기도 했지만, 열 문제 중 일곱 문제는 너끈히 맞혔다. 나는 빠르게 읽으면서도 꽤 정확하게 책 내용을 읽었다.


image.png 제일 좋아하는 독서는 메뉴판이다. 누구보다 빠르게 메뉴를 찾지.


서른의 문턱을 넘을 때까지 내 삶은 이 독서법과 닮아 있었다. 경쟁심이 강해 운동할 때도 늘 남보다 더 많이, 더 빨리를 외쳤다. 수영을 할 때는 옆 레인의 속도를 살피느라 시선이 분산되었고, 농구와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유독 달리기에 소질이 없었던 것만 제외하면, 일과 관계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빠르게 결과를 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만 생각했다. 멈춰 서는 시간은 비효율일 뿐이었다.


하지만 속도감 있게 지나온 과거 일에서 정작 뚜렷이 남은 장면은 많지 않다. 책은 많이 읽었는데 기억나는 문장이 없고, 많은 일을 했는데 정작 그 일을 왜 했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엔진이 터질 듯 달려왔지만, 정작 목적지를 잊어버린 기분이었다. 속도는 때로 시야를 가린다. 너무 빨리 달리면 주변 풍경은 뭉개지고, 내가 제대로 된 길 위에 있는지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젊음의 자신감은 그 속도감을 즐기게 했지만, 결국 목적지를 향해가고 있나 점검하는 여유 시간은 없었다.


image.png 서울 운전은 언제나 방향이 중요하다. 어디가든 막혀서.


그런데 의외로 평소 운전을 할 때는 정반대다. 동승자를 반드시 재우겠다는 의지로 부드럽게 차를 몬다. 그런데 출근길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듯 위태롭게 달리는 차 몇대를 자주 마주친다. 그 중 아이가 타고 있어요라는 스티커를 붙이고도 위험한 곡예 운전을 일삼는 흰색 카니발을 유독 자주 마주친다. 아이가 급한 건지 아니면 아이를 인질 삼아 속도를 내는 건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매일 같이 내 차를 위험하게 추월해 나간다. 근데 그 차가 매번 나를 추월해 가도 결국 내 시야 안에서 다시 만난다는 사실이다. 무리해서 낸 속도가 무색하게도 달린 거리는 비슷했다.


얼마전에 그 카니발을 보며 나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살던 나 역시 저 카니발과 다를 바 없지 않았나 싶었다. 결국 추월하고 속도를 높여봐야 천천히 가는 차와 달린 거리는 큰 차이가 없었다. 이제야 이런 사실이 보이는 건 내 엔진 출력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른 저녁에 에너지가 바닥을 보이고 피로를 자주 느꼈다. 이제 빨리빨리 하다가 빨리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빨리를 못하게 되니, 어차피 가는 거리는 똑같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 같다. 속도를 내기보다 내가 가는 길을 확실히 해두자는 생각을 했다.




천선란 작가님의 '천개의 파랑'을 읽다 한 문장에서 멈춰 섰다. 느리게 간다고 경기에서 퇴출당하지 않고 규정에 어긋나지 않으니,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라는 글이 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 의미에 공감해서가 아니라,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멈췄다. 그리고 문장을 곱씹고 앞뒤 맥락을 다시 읽었다. 이 문장이 어떤 의미로 쓰였을까 고민하며 질문을 던져본 것은 처음이었다. 이전의 내게 독서로 얻는 이해란 그저 이해될때까지 여러 번 빠르게 반복해서 읽는 것일 뿐이었다.


image.png UC Davis 도서관에서. 책을 좋아하지만 영어 책은 좀...


물론 그날 이후 독서 속도 자체가 느려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의미를 곱씹기 위해 멈추는 문장이 많아졌다. 단순히 멈추는 것을 넘어 이 문장을 어떻게 써먹어볼지 상상하는 시간도 생겼다. 덕분에 문장 자체를 완벽히 외우지는 못해도 몇몇 글귀는 오래 기억에 남았다. 훑어보는 눈으로는 온전한 의미를 포착할 수 없었다. 빨리 처리하듯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한 지점에 몰입하는 행위는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점검하는 소중한 쉼표가 되었다. 생각은 집중으로 선명해지고 몰입으로 굳어졌다.


책을 완독하는 속도는 줄었을지 몰라도, 그 기억과 이해의 깊이는 비교할 수 없이 깊어진 것 같다. 책을 덮을 때 읽은 페이지 수가 아니라 기억나는 문장을 다시 확인한다. 하루를 마칠 때도 얼마나 많은 일을 처리했느냐가 아니라 제대로 하고 있나를 돌아봤다. 방향에 맞게 가는 것이 삶의 진짜 밀도가 된다는 말을 믿기로 했다.


스무살 때 그 느릿느릿하던 세상은 이제 훨씬 속도감이 있어졌다. 아마 이제 그 속도를 따라잡기는 어렵겠지. 그렇지만 지나치던 표지판도 분명히 보이고, 어디로 가야하는지는 오히려 선명해졌다. 이제는 빨리빨리보다는 뭘해야하는지 방향을 잡을 필요가 있을 때 멈추는 여유가 생겼길 바란다.


젊은 나를 설명하는 해시태그는 #속도였다면, 마흔 이후 나의 해시태그는 #방향이 되고 싶다. 그래서 요즘에는 하루에 잠깐씩 짬을 내서, 일기를 쓰고 있다. 노션으로 일기장을 만들어서 인생의 목표와 점검, 오늘 한 일과 아이디어, 그리고 내일 할 일을 정리하고 있다. 이 5분 정도의 짧은 기록의 시간이 내 삶의 방향을 바로잡는 소중한 키가 되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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