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흩어져 있던 선들이 연결되기 시작했다

2부| 마흔이 되고 나서야 보이기 시작했다

by 영초이
길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본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오가는 번화가 길거리에서 작은 화판을 세워두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도대체 무엇을 그리고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얀 종이 위에는 검은 선 몇 개가 어지럽게 놓여 있을 뿐이었다. 형태도 명확하지 않았고, 그림이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한 상태였다. 그냥 아무렇게나 선을 긋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아직 그림이 완성된 것도 아닌데, 갑자기 그 그림이 무엇인지 보이기 시작했다. 선 몇 개가 더해졌을 뿐인데 그것이 사람의 얼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코의 윤곽이 나타나고, 눈의 위치가 잡히자 전체 형태가 머릿속에서 완성되었다. 그림은 여전히 절반도 채 그려지지 않았지만, 이미 무엇을 그리고 있는지는 분명해졌다. 완성되지 않았는데도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놀면 뭐하니?에서 거꾸로 유재석을 그린 정준하가 그랬던 것과 같이, 어느 순간 그 화가가 그리고자 하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신혼여행 중 리스본 LX 팩토리에서 강렬했던 벽화. 멀리서 보면 무슨 그림인지 애매하다.


지금 돌아보면 지금까지의 삶은 그 그림과 꽤 닮아 있었다. 점과 선 같은 시간과 사건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잘 알지 못했다. 하루하루 비슷한 일들을 반복하고, 특별히 달라지는 것도 없는 것 같았다. 출근하고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평범한 날들이 계속 이어졌다.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전에는 모든 것이 흐릿했다. 무엇이 맞는 선택인지 알 수 없었다.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부족했고 그래서 확신 없이 움직였다. 주변에서 좋다고 하는 길을 따라가기도 했다. 워라밸을 위해 취미는 3개 정도 있어야 한다와 같은 주변인들로 부터 얻은 조언으로, 취미 부자 생활을 하기도 했다. 어떤 때는 그저 즉흥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가장 즉흥적인 선택은 박사 진학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내 인생에서 가장 고민없이 했던 일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오히려 근거는 없었지만 자신감이 넘쳤다.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먼저였고 이유는 나중에 붙였다.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에 결과를 정확히 예상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두려움은 적었다. 어쩌면 젊음이라는 것이 그런 착각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경험한 인간관계와 회사 업무 그리고 여러 번의 실패를 겪고 있다. 어떤 선택은 좋은 결과로 이어졌고, 어떤 선택은 기대와 달리 무너졌다. 예상보다 쉬운 일도 있었으나 훨씬 버거운 일들이 더 많았다. 그렇게 쌓인 경험들은 머릿속에 하나씩 각인되었다. 처음에는 그것들이 서로 아무 상관 없는 점과 선처럼 보였다. 사건과 기억들은 파편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기란 어려웠다. 그리고 새로운 일들을 도전하는 것에 대해서 막연한 두려움이 있던 시기였다.


image.png 스위스의 아름다웠지만 도저히 건너갈 수 없었던 다리. 결국 건너는걸 실패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비슷한 상황을 다시 마주할 때마다 이전의 선택과 결과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모든 것이 정확히 맞물리지는 않았지만, 흐름은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미완성 그림의 윤곽을 알아보듯, 몇 개의 선만으로도 그림의 방향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흩어져 있던 점과 선들이 겹치기 시작했다. 다만, 이 경험이 반드시 자신감을 키워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세상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근거 없는 자신감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대신 그 자리에 다른 것이 들어섰다. 상황을 완벽히 예측할 수는 없어도 어떤 선택이 더 나은 방향인지 가늠할 수 있는 여유였다. 핵심은 어쩔 수 없는 것과 어쩔 수 있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여유를 자신감보다는 '앎'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자신감이 할 수 있다는 의욕적인 감정이라면, 이 앎은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별하는 경험과 판단이다. 추측이 아니라 누적된 경험에서 나온 확신이다. 자칫 고집이 세지면 꼰대라는 소리를 듣기 딱 좋겠지만, 이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감정에 기반한 자신감은 작은 실패에도 쉽게 흔들리고 예상치 못한 상황 앞에서 금세 위축되곤 한다. 반면 경험 위에 세워진 앎은 달랐다. 예상이 틀려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 왜 틀렸는지 복기할 수 있고, 다음에는 무엇을 다르게 해야 할지 생각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게 틀리더라도 잠깐 자책하고 말면 되는 일이었다.


물론 어릴 적의 무모함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세상은 복잡하고 새로운 변수는 끊임없이 나타난다. 그럼에도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그리고 무엇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 구분할 수 있는 근거 있는 앎이 중요해졌다. 이것만으로도 세상을 대하는 태도는 꽤 많이 달라졌다.


집 안에서 색연필을 찾았다. 선들이 계속 뭉쳐지면 결국에는 어떤 모양이 된다.


인생의 많은 것들이 처음에는 아무 의미 없는 선처럼 흩어져 있다. 무엇을 그리고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어 막막하다. 하지만 선택이 반복되고 경험이 층이 되어 쌓이면 흐릿했던 선들이 연결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전체 그림의 윤곽이 드러난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에도 무엇을 그리고 있는지 보이는 찰나가 온다. 이것이 경험이 만드는 나 자신에 대한 앎이다. 그리고 더 층이 쌓이면 연륜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마흔을 넘어가는 문턱에서는 젊음이 주던 근거 없는 자신감은 사라지고 있다.

그 대신 그 근거없는 자신감이 만든 여러 성공과 실패에 대한 경험이 남았다.

그리고 이제는 그 경험이 만든 앎이라는 새로운 무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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