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0년 열하로 간 정조의 사신들>
어느 주말, ‘청외를 아십니까?’라는 제목으로 한국기행이 방영되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모릅니다’ 하고 대답했다. 처음엔 참외인 줄 알았지만, 크기가 크고 초록색에 얼핏 보이는 무늬까지 있어 노지에서 자라는 애호박처럼 보였다.
처음 보는 작물이 신기해서 엄마에게 먹어 본 적 있는지 물었더니, 마찬가지로 처음 본다는 답이 돌아왔다. 반면 아빠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곰곰이 생각하더니 개구리참외 중 무늬 없는 걸 ‘청참외’라 불렀는데, 아마 그와 같은 것 같다며 알려주었다.
정보를 더 얻고자 청외(청참외)를 검색해 봤다. 청외는 참외, 애호박, 오이와 비슷하게 생겼으며 대부분 장아찌로 담가 먹는다. 지금은 대량 재배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명맥을 잇기 어려운 토종 작물이라고 한다.
관련 책이 있는지 찾아봤지만 없었다. 대신 발견한 것이 『1780년 열하로 간 정조의 사신들: 대청 외교와 열하일기에 얽힌 숨겨진 이야기』였다. 그렇게 나는 조선의 대청 외교를 다룬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의 작가는 중국 근세사를 전공한 동양사학 교수로,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읽다가 청나라에 대한 기존 인식과 다른 점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후 이를 공부하다 호기심이 이어져 논문을 쓴 뒤 강의까지 이어졌고, 이 책은 그 내용을 대중 친화적으로 엮은 것이다.
특히 박지원이 『열하일기』를 ‘어떤 일’을 계기로 어떻게 편집하게 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그 ‘어떤 일’을 이해하려면, 조선에 퍼져 있던 반청 의식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조선에 반청 의식이 생긴 것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문이다. 본래도 ‘오랑캐’가 나라를 세우고 친교를 맺자고 한 것부터 불쾌했지만 전쟁으로 가족과 친구를 잃은 조선인들에게 청나라는 증오와 복수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조선이 본받아야 할 명나라를 청이 무너뜨렸으니, 어느 하나 마음에 들 일이 없었다.
정묘호란부터 영조가 태어난 시기를 따져봐도 채 100년이 되지 않는다. 직접 겪지 않았더라도 조상들의 치욕을 잊지 않고 청나라의 몰락을 바라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은 변하기 마련이다.
영조의 ‘반청 조기교육’에도 불구하고, 정조는 1780년 열하에서 열린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잔치를 친선의 기회로 삼았다.
정조는 건륭제의 칠순 생일을 이전 조선 왕들과는 달리 ‘깍듯’하게 축하했다. 그러자 건륭제는 외국 가운데 유일하게 조선에만 칠순 기념 조서를 반포하며 화답하였다. 조서를 받았다고 해서 굳이 칠순 잔칫날에 참석할 필요는 없었지만 정조는 그날을 위해 특별히 사신단을 파견했다. 그 사절단에 박지원이 포함되어 있었다.
박지원이 정조의 직접 명을 받은 건 아니었다. 그는 ‘자제군관’이라는 비공식 수행원 자격으로 동행했는데 특사의 대장 격이었던 박명원(박지원의 팔촌 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조선의 특사는 열하에서 열렬한 환대를 받았다. 건륭제를 실물로 보고 그가 극진히 예우한 티베트 불교의 정신적 지주, 판첸 라마까지 직접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판첸 라마를 만나서 불상을 선물로 받아온 일이었다.
유교의 나라에서 불교의 불상이라니!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보면 ‘그게 왜 문제야?’ 싶지만 불교를 배척했던 조선, 특히 사대부들에게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성균관 유생들은 크게 반발했고 조정 관리들 역시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불상을 모시고 왔다는 오명은 반드시 해명해야 했지만, 당사자가 직접 말해도 쉽게 믿지 않았다. 그러나 열하일기가 세상에 나오면서 분위기는 반전된다. 청나라로부터 배울 것은 배우자는 흐름은 물론, 불상을 가져온 것은 박명원이 원해서가 아니라는 사실까지 ‘목격 썰’ 형태로 자연스럽게 드러낸 것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1. 박명원은 판첸 라마에게 별다른 존경을 표하지 않았다.
2. 불상을 주는 건지 몰랐고, 돌려주려 했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았다.
3. 당연히 가져오기 싫었지만, 거절했다가 일이 커질 것을 걱정했다.
정조의 친선 외교는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그러나 『열하일기』의 인기는 청나라에 대한 열린 시선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고, 청의 달라진 태도 역시 우호적인 분위기를 뒷받침했다. 이후 조선과 청의 교류는 실제로 더욱 활발해졌다.
이 책은 『열하일기』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점을 제시한다. 특히 열하일기의 편집 과정에서 불상 논란에 대한 해명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고 해석한 점이 인상 깊다. 물론 당사자가 없어 사실 여부를 완전히 확인할 수는 없지만, 고착되어 있던 해석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내가 한국기행을 보고 청외(청참외)와 개구리참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처럼, 이 글을 본 누군가가 참외에 흥미를 느낀다고 가정해 보자. 어쩌면 그것이 토종 참외의 명맥을 이어가려 애쓰는 사람들에게 작지만 반가운 활력이 되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작은 호기심이 불러온 연쇄 반응은 뜻밖의 변화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