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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에 삐져있던 사람의 시집 읽기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

by 무아노


경기도에서 책을 구매하라고 주는 독서포인트를 사용하기 위해 서점을 갔다. 장르는 정해져 있었고 그중 눈에 띄는 책을 골랐다.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 시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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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한국 작가들의 시와 소설에 삐져있었다. 대학교 입시를 위해 믿을 구석은 사회탐구와 언어 영역이었는데 언어가 어떻게 해도 점수가 오르지 않았다.

다 푼 문제집과 함께 시, 소설이 머릿속에 쌓였지만 내공은 쌓이지 않는 그런 답답함이 지속됐다. 결국 만족스럽지 못한 수능 등급을 받게 된 나는 한국 문학계에 한참을 삐진 채 살았다.


번역서나 영어 공부를 위해 원서 위주로 읽으며 지냈다. 그러다 풀린 것은 브런치를 시작하면서부터였으니,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

에세이와 단편집을 읽고 브런치 내 시인 분들을 보며 시집을 읽을 때가 됐음을 깨달았다. 짧기에 예쁜 문장에 감탄할 뿐이지, 작가의 숨은 의도를 찾고 있지 않았으니 말이다.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은 제목도 그렇지만 파격적이라고 생각되는 단어들을 사용해서 그런지 눈에 띄었다. 토마토와 심장을 같은 선에 둔 거나 제목은 SF, 내용에는 댓글을 의미하는 RE:가 그대로 나왔다.

읽어보니 알고 있던 시와는 더 달랐다. '좋아요 댓글 구독', 적나라한 욕도 나오고 '1호선에 출현하는 빌런'처럼 소위 밈도 나왔다. 고선경 작가가 'MZ 작가'이면서 또래의 독자들이 선호하는 이유도 알 듯했다. 동시대를 살기에 이해가능한 슬픔, 위로, 재미를 짧은 순간에 표현한다면 빠져들 수밖에.


시의 모든 부분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작가도 모를 수 있는 의도를 찾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기에 언어유희와 낯선 단어를 만나고 익숙한 단어를 색다르게 표현하는 것을 즐겼다.


'자면서도 나에게 말한다 정신 차려

아 정신 차려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늦은 점심을 먹고 있다' p.19 늪이라는 말보다는 높이라는 말이 좋아

'판다는 무표정인데도

표표한 얼굴을 하고 있다' p.132 딸기와 판다곰

'침착하게 식어가기' p.145 카푸치노 감정

'파다한 사랑' p.148 뱅 쇼 러브


시집을 덮기 전, 맨 뒷장에 이 책을 만들기까지 함께한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는 게 꽤 신선했다. 마치 영화의 엔딩크레딧 같아서 덕분에 이 시집을 읽는 시간이 한 편의 영화를 본 듯이 기분 좋게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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