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감성과 생존의 리듬을 찾아서
나는 예술을 사랑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랑이 단지 멋진 그림을 보고 감탄하거나, 음악의 선율에 잠시 취하는 감상적 차원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내게 예술은 언제나 삶 자체를 통과하는 여러 감정과 생각을 마주하게 해주는 창이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부딪히는 불안과 기대, 예측하기 어려운 사회의 흐름 속에서 흔들리는 내 정체성, 그리고 아무도 답을 내려주지 않는 삶의 물음들. 나는 그런 순간마다 예술에게 기대곤 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감성만으로는 도무지 버티지 못할 때가 있다. 머릿속이 온통 창작의 욕구로 가득해도, 당장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순위를 바꿔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예술이 아무리 가치 있더라도 오늘을 건너갈 힘이 없다면, 그것은 결국 허공에 걸쳐진 이상일뿐이라는 사실을 자주 깨닫게 된다. 모든 걸 예술에만 걸었다가 무기력에 빠진 시기도 있었다. 내 감정이 현실의 언어로 충분히 번역되지 않을 때, 나는 오히려 나 자신에게 지치고 말았다.
이 둘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을 길을 찾고 싶었다. 감성과 현실, 창작과 생존 사이를 균형감 있게 걸어가고 싶었다.
학업과 일상 사이를 오가며, 나는 더 이상 ‘예술가가 가난해야만 한다’ 거나 ‘희생이 따르지 않는 예술은 본질을 잃는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기술의 발전과 플랫폼의 다양화로,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할 기회를 얻었다. 그 안에서 탄생하는 예술은 더 이상 방 안에 고립된 고뇌로 끝나지 않는다. 알고리즘과 네트워크가 내 감성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공감과 연결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충분히 현실적인 수익 구조로도 이어진다.
나는 어쩌면, 내 작업을 진심으로 사랑해 줄 단 몇 명의 사람이면 된다고 믿는다. 거대하고 화려한 명성보다,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내 이야기에 진심으로 반응하고, 그로부터 작은 울림이 번져가는 방식을 좋아한다. 그건 예술이 지닌 본래의 힘이기도 하고, 동시에 내가 이 삶을 지속하기 위한 생존법이 되기도 한다.
기술로 살아남는 세상에서, 나는 예술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스스로에게 “왜 살아가는가”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정답은 아직도 모르지만, 예술은 그 질문에 대한 나만의 방식으로 답을 시도하게 해 준다. 그 과정에서 나는 조금씩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더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가는 중이다. 반드시 고통이나 희생이 아니더라도, 예술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나 자신의 존재 이유를 보여주며, 현실을 살아갈 의미를 만들어준다.
내일은 또 다르게 흘러갈 것이다. 창작에 매달리다가 중간에 포기할 수도 있고,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오늘의 나’를 계속 바라보는 태도다. 예술은 생존 이후의 문제 같으면서도, 사실은 생존 자체를 지탱해 주는 가장 근본적인 힘이기도 하다. 나는 매일 그 사실을 실감하며, 예술과 현실 사이의 긴장 속에서 어떻게든 내 균형을 맞춰보려 애쓴다.
삶의 의미를 통째로 바꿀 순 없어도, 그 한가운데 예술이 놓여 있다면 현실이 조금은 부드러워진다.
이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 “왜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에 조금 더 가까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는, 그 의문에 깊이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열쇠가 예술 안에 있다고 믿으니까. 나는 오늘도, 예술과 현실을 오가며 내 감성과 생존의 리듬을 끊임없이 조율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