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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자전거를 타세요

영화 속 도시이야기 'BA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

by 신천옹

여행 이야기가 나오면 사람들이 묻는다.


어느 나라가 제일 좋았느냐, 어느 나라를 추천하고 싶냐. 다시 가고 싶은 나라는 어디냐 등등.


비슷한 맥락이지만 답은 다르다.


하지만 묻는 사람들의 의도를 알기에 누구나 가봐도 ‘좋다’라는 대답이 절반을 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라를 이야기해 준다.

L1030209.JPG 팔레르모 거리 풍경

그게 바로 아르헨티나다.

바로 또 질문이 이어진다. 왜냐고.


일단은 1년 365일 어느 날에 아르헨티나에 도착한다고 해도 그날 아르헨티나에는 4계절이 다 있다. 북쪽 이과수폭포 쪽은 여름이 있고 남쪽 모레노빙하 쪽에선 겨울이 있다.


비록 남반구는 우리와 계절이 반대라서 12월~2월이 여름이라고는 하지만 빙하를 보면서 ‘여름’을 떠올리지는 않기에 사실상 사시사철이 하루 동안 다 펼쳐진다고 보는 게 맞는 것이다.

L1030227.JPG 보카 주니어 홈구장인 라 봄보네라

그러다 보니 다른 어느 나라보다 아르헨티나에 대한 이야기는 할 게 많을 수밖에 없다. 면적도 넓어서 세계 8위를 차지한다. 남한의 28배 정도에 달한다.


풍부한 자연과 곳곳에 널린 아름다운 풍광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게 아쉬운 나라이기도하다.


2025년 한국 대선에서 어느 후보가 ‘남미의 ‘아’와 같은 나라‘로 사례를 들만큼 정치나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20세기 초반, 세계 4대 부국이라는 화려했던 영광이 있었던 곳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나라가 문자 그대로 ‘언스테이블(unstable)’하다.

L1030276.JPG 푸에르토 마데로 '여인의 다리'

‘나를 위해 울지 마세요. 아르헨티나여(Don’t cry for me Aregentina)’를 말했던 에바 페론도, ‘마법의 손’으로 아르헨티나에게 멕시코월드컵 우승컵을 안겨주었던 디에고 마라도나도 이제는 없다.


그래도 자연은 어느 곳보다 경이롭고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현지에서는 BA라고 줄여서 많이 쓴다)는 매력적이다.


나라는 못살아도 인구의 절대다수가 백인인 데다 인종차별주의가 부지불식 중에 남아있는 게 옥에 티이기는 하지만 여행객들은 어느 나라나 차별도 있고 환대도 있으니 터 잡고 살지 않는다면 무시해도 좋을 수준이다.

L1030298.JPG 공공사업부 빌딩 외벽의 에바 페론 모습

물론 정치적 불안정 속에서도 팜파에서의 삶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까다로운 조건이 없어 살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정착이 가능한 터전으로 생각할 것이냐는 전적으로 본인 선택의 몫이다.


다만 생활이든 여행이든 일단 ‘돈’이 있어야 하는데 환율 변화가 천당과 지옥을 너무나 자주 그리고 빨리 왔다 갔다 한다는 점이 치명적 약점임은 분명하다.


대개의 남미 국가처럼 미국 달러의 위세는 대단하고 그중에서도 100달러짜리 신권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특우대를 받는다.

L1030293.JPG 마요광장 주변 모습

은행보다 민간의 cambio(환전소)에서 환율을 더 잘 쳐주는 건 기본이며 환율 좋은 곳은 현지에서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달러 강세가 심하다 보니 수입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자동차만 해도 부품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유리가 깨져도 비닐을 씌워 운전하는 차들도 종종 눈에 띈다.


달러 역외 반출을 막기 위해 내국인의 한 달 달러 교환 환도가 200달러밖에 안 된다.


그러니 달러는 금값일 수밖에 없다. 그나마 최근에 달러와 페소 환율이 어느 정도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는데 이는 IMF에서 차관을 들여왔기 때문이다.


이는 자국의 경제 펀드멘탈이 튼튼해서가 아니기에 언제든 환율은 급변할 수 있다는 의미다.

L1030048.JPG 부에노스아이레스 노점상

아르헨티나의 정치 경제상황이 한국인의 시각으로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걸 설명하다 보니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대한 이야기가 늦어졌다.


제목이 너무 길어 읽다가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영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두서없는 건축물들이 사랑을 가로막는 요인이라며 어려운 사랑연결의 불만을 도시계획(?)에 화풀이하면서 시작한다.


창을 열면 바로 앞 건물의 벽면이 보이고 웹환경에서 업무가 이뤄지다 보니 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접촉을 힘들게 하면서 사랑은 하늘에 별따기가 되어 버린 세태를 이야기한다.

L1030318.JPG 아르헨티나 대통령궁인 카사 로사다

물론 수많은 빌딩이 ‘제멋대로’ 솟아 있고, 실패한 도시 계획으로 스카이라인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도시들은 부에노스아이레스만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부에노스아이레스 정도면 사랑을 가로막을 정도로 미운 빌딩숲이 펼쳐진 곳은 아니라고 본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대로인 폭 140m 길이 1km에 달하는 ‘7월 9일 대로’ 양안의 빌딩들만 해도 넓은 길 자체가 시야를 트이게 해 줘서 답답함을 느끼기가 더 어려울 정도이다.


빌딩들로 답답해질 만하면 도심 중심이자 아르헨티나 독립을 선언한 장소인 마요광장이 나타나고 신도심이라고 할 수 있는 푸에르토 마데로에는 리케강에 설치된 운하가 숨통을 트이게 한다.

L1030282.JPG 부에노스아이레스 자전거투어

또 부에노스아이레스 입성을 위해 이용하는 호르헤뉴베리 공항 하늘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바다같은 라플라타강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푸르름을 더한다.


그렇다고 해도 100% 빌딩숲의 답답함이 없다는 건 물론 아니다.


그래도 무엇이든지 돌파구는 있다. 빌딩숲을 뚫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 자전거투어가 바로 그것이다.


도시 자체가 평평해 자전거투어가 힘들지 않다는 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또다른 매력이다.


저녁엔 할 게 더 많다. 탱고레슨, 아사도 먹어보기, 팔레르모의 길거리 맛집 탐방 등등.

L1030699.JPG 팔레르모 거리의 한 카페

왕가위 감독의 영화 ‘해피 투게더’에 나왔던 ‘바 수르’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다.


오래전 취재차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갔던 후배가 전화를 해서 이 '바'에 대해 물었던 기억이 있다. ‘바 수르’가 무슨 뜻이냐고. (한국 발음만 보면 좀 이상하긴 하다.)


하지만 스페인어로 적어 놓으면 금방 이해된다. Bar sur 즉 바텐더를 둔 술집인 Bar와 남쪽이란 뜻의 sur다. 남쪽에 있는 '바'란 의미다. 주인이 큰 생각없이 이름을 지었을 것 같다.

L1030235.JPG 라 보카 거리 모습

일요일마다 벼룩시장 같은 노천장이 서는 산텔모에 가깝다. 바 수르보다 더 남쪽이 라보카다. 유럽에서 이주한 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항구이자 탱고의 발상지 그리고 마라도나의 고향이다.


형형색색 건물의 항구마을 라보카는 그 애환의 역사가 이젠 매일매일 알록달록한 작은 축제의 거리로 바뀌었다.


도심 북쪽에도 볼거리는 많다.

L1030139.JPG 라 레콜레타 공동묘지

대표적인 곳이 바로 공동묘지인 라 레콜레타. 에비타를 비롯해 아르헨티나의 정, 재, 관계의 유명인사가 묻힌 곳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공동묘지가 위치한 레콜레타지역은 부촌 중 하나이며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지역이다. 문화적 차이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L1030091.JPG 엘 아테네오 서점

레콜레타에서 남쪽으로 20분 정도 걸어 내려오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라고 알려진 엘 아테네오가 있다.


내가 간 날은 마침 비가 하루 종일 내렸는데 서점 안은 책을 읽거나 사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정치·경제적으로 불안정한 나라일지는 모르지만 문화·예술적인 국민의 저력이 나라를 지탱하는 또 다른 큰 축이라는 걸 엘 아테네오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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