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

by 길벗


방송 등 여러 매체를 통해 귀농, 귀촌, 귀어, 귀산의 사례를 종종 접한다. 느리게 한가롭게 유유자적 살고 싶어 하는 이들이 도시를 떠나 사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을 소개하는 매체의 표현이 거슬릴 때가 더러 있다. 의료, 문화, 외식 같은 도시의 이점은 생략한 채 매체들은 도시는 불행이고 시골은 행복이다,라며 이분법적으로 편 가르기를 한다. 도시의 교통, 공해와 함께 밤늦은 번화가를 비추며 무분별한 향락과 소비가 넘쳐나는 천민자본주의의 현장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도시에 사는 사람으로서 불쾌감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매체들은 시골 생활의 낭만을 부각시킨다. 물론 생업이나 교통, 교육, 의료, 문화 시설에 대한 불편함도 언급하지만 그건 일방적인 시골 예찬에 대한 형식적인 물타기일 뿐이다. 사실 말이 좋아 전원생활이지 그 생활이 생각처럼 그리 낭만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해 뜰 때부터 해질 때까지 일, 일, 일의 연속인 것이다. 그래야만 살 수 있는 곳이 전원이다. 도시를 떠나는 이들의 용기에 대해선 경의를 표하고 싶고 탈 도시에 따른 여러 이점들이 부럽기는 하지만 매체들이 마치 시어머니 편드는 시누이인 양 일방적으로 도시를 매도하는 건 불쾌하다. 누구는 빠르고 쾌적한 고속도로를 선호하고 또 누구는 느리지만 한적한 지방 도로나 국도를 타고 싶어 하듯 이건 개인의 성향 문제이지 도시와 시골의 선악 구도가 아닌 것이다.



사람들 때문에, 교통이나 공해 때문에, 결국 이 모든 난제가 뒤섞여 있는 도시생활이 힘들다고 말하지만 문제는 도시가 아니다. '어떻게 사느냐'다. 누구는 구름과 저녁노을, 별과 달을 보기 위해 도시의 하늘을 올려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누구는 도시의 하늘을 아예 기대조차 하지 않고 땅만 보고 다닌다. 복닥거리고 부대끼며 사는 가운데서 살가운 정과 여유와 다양한 삶의 재미를 찾아가는 것이 도시라는 서식지의 매력이다. 여유로운 삶이니 행복이란 건 사실 어디서든 가능하고 또 어디서든 불가능한 것. 지금 내가 숨 쉬고 있는 곳에서 행복할 수 없다면 세상 어디를 가든 그럴 확률이 높다. 우리는 지구상 어딜 가나 같은 별, 같은 달 아래 있는 것이다. 곽재구 시인의 말이다. "달은 어디에나 있지만 보려는 사람에게만 뜬다."


SE-6273cefc-b15a-4359-8930-444fb4cfc4fc.jpg?type=w1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신윤복 필 <계변 가화 - 시냇가의 아름다운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