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가 남긴 장면

그 자리를 떠난 뒤에도 지워지지 않는 목소리들

by 아우리

고속도로 휴게소였습니다.

차들이 분주히 들고 나는 사이, 한쪽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튀어 올랐습니다. 돌아보니 한 여성이 몸을 밀어 넣듯 상대에게 다가서고 있었습니다. 얼굴은 위태로울 만큼 가까웠고 말은 쉼 없이 쏟아졌습니다. “때려봐라, 어디 한번 때려보라”는 외침이 공기를 서늘하게 만들었습니다. 상대는 몇 번이고 “왜 이러시냐”고 물었지만, 그 말은 닿지 않았습니다.

그 여성의 옆에 서 있던 남편으로 보이는 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서 있었습니다. 말리지도, 붙잡지도 않았습니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하나둘 시선을 거두었고, 저 역시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했습니다.


멈추지 않는 거리

여성의 말은 점점 빨라졌고, 거리는 계속 좁혀졌습니다.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으로 상황을 밀어붙이는 모습이었습니다.

요즘은 이런 장면이 낯설지 않습니다. 길 위에서도, 화면 속에서도 말의 내용보다 감정의 크기가 먼저 도착하는 순간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 멈추는 쪽은 대개 한 발 물러서는 사람입니다. 그럴수록 끝까지 밀어붙이는 태도가 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며칠 뒤 비슷한 장면을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큰 소리를 내던 사람이 더 강한 상대방의 힘에 제지당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폭력이 오가는 장면이었지만, 잠시 마음이 풀리는 느낌이 스쳤습니다.

그러나 화면이 꺼진 뒤에는 다른 생각이 남았습니다. 그것이 정리된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반복인지에 대해서였습니다. 멈춘 것은 행동이었고, 마음까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물러나는 이유

많은 사람들은 기세에 눌려서만 물러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더 얽히지 않기 위해서, 감당해야 할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혹은 지키고 싶은 것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 한 걸음 뒤로 갑니다.

그 선택은 종종 답답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나름의 기준이 있습니다.

저 역시 그날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이 남았습니다. 그 자리에 서서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배우지 못한 방식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끝까지 밀어붙이는 사람들은 어쩌면 다른 방식으로 멈추는 법을 충분히 배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감정을 잠시 내려놓는 일, 거리를 두는 일, 말로 상황을 정리하는 일이 낯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더 크게 말하고 더 가까이 다가가는 방식만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장면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장면에 놓인 인물들이 더 이상 평면적인 '가해자'와 '피해자'로만 읽히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저는 그런 순간 앞에서 망설일 것 같습니다. 단호하게 막아야 하는지, 조용히 물러나야 하는지 쉽게 정하지 못합니다.

다만 한 가지는 남습니다.

그렇게 밀어붙여 상대를 물러나게 만든 그 순간을, 우리는 과연 이겼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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