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성씨는 어디서 왔을까
“너는 네 이름 앞에 왜 ‘연일’이 붙는지 알고 있니?”
명절이면 북적이던 큰아버지 댁, 사촌들과 정신없이 놀다 툇마루에 앉아 숨을 고르던 내게 큰아버지가 물으셨다. 뜬금없는 질문에 나는 눈만 끔뻑였다. ‘연일 정씨’라는 말은 내 이름의 일부처럼 당연했지, 그 의미를 곱씹어 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질문은 내 이름에 숨겨진 수백 년의 시간을 처음으로 궁금하게 만든 순간이었다.
큰아버지는 나를 안방으로 데려가셨다. 장롱 깊숙한 곳에서 꺼낸 오동나무 궤짝 속에는 먼지가 켜켜이 쌓인 족보가 담겨 있었다. 바스락거리는 한지를 넘길 때마다 낯선 한자들이 빼곡히 들어찼다.
“이게 우리 집안 족보란다.”
큰아버지는 희미한 글자 위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씀하셨다.
“이 분이 우리 15대조 할아버지시고, 이 분은 큰 공을 세워 나라에서 상을 받으셨단다.”
비록 어린 나는 한자를 읽을 수 없었지만, 그 이름들이 모여 할아버지가 되고, 큰아버지가 되고, 또 내가 된다는 사실이 뿌듯하게 다가왔다. 내 이름 석 자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처음으로 느꼈다.
삼국시대에는 왕족과 귀족만 성씨를 가졌다. 신라의 김·박·석, 고구려의 고씨처럼 일부 집단의 특권이었다. 그러나 고려에 들어 왕건이 공신들에게 성과 본관을 내려주면서 성씨 사용이 점차 널리 퍼졌다.
조선시대에는 신분제가 강화되며 양반 중심의 족보와 본관 문화가 굳어졌다. 같은 정씨라 해도 연일 정씨, 동래 정씨, 하동 정씨처럼 본관이 달라 뿌리가 갈라졌다.
그리고 근대에 이르러 큰 변화가 찾아왔다. 1894년 갑오개혁과 1909년 민적법을 거치면서 평민들도 공식적으로 성씨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성씨는 더 이상 일부 계급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이의 이름과 정체성을 이루는 기반이 되었다.
나중에 책에서 고려 태조 왕건이 공신들에게 성과 본관을 내려주었다는 이야기를 읽었을 때, 나는 큰아버지 댁 족보를 떠올렸다.
혹시 나의 먼 조상도 왕 앞에서 성씨와 본관을 받았던 것은 아닐까?
“이제부터 너의 뿌리는 연일이고, 성은 정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분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내 이름이 단순한 표식이 아니라, 수백 년을 이어온 역사의 작은 결실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평범하게만 보였던 내 성씨. 그러나 그 안에는 조상의 발자취와 한 집안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오늘 우리가 성과 본관을 통해 되새기는 것은 단순한 출신지가 아니라, 뿌리와 자부심, 그리고 정체성이다.
이름은 결국 나와 가족의 역사를 품고 있는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