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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맛집 폐업합니다. 그동안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대학교 과제로 쓰게 된 나의 첫 유서

by 예솔 Mar 21. 2025

<인생 맛집 폐업합니다. 그동안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코로나처럼 저성장의 시대에도 맛집에는 항상 끊임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방문합니다. 제 인생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저를 꾸준히 찾아와 ‘똑똑’하고 저를 방문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쯤이면 제 인생도 ‘맛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저는 곧 제 인생 맛집을 폐업하려 합니다.


 남들은 ‘그까짓 게 뭐가 힘들어!’ 내지는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장예솔’이라는 사람을 브랜딩 하고 가치화하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으며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또한, 또래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도, 남들이 실패할 거라고 손가락질을 해도 묵묵히 저만의 길을 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제는 더 이상 아등바등 살고 싶지 않아 졌습니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쉬엄쉬엄 살면 되잖아?’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지속성 우울장애, 공황장애를 포함한 불안장애, 해리장애, 광장공포증, 사회공포증을 진단받은 저에겐 이미 세상을 향한 벗겨지지 않는 흑백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마찬가지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저는 5년째 이 병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너무 많이 고통스러웠고, 매일 앞날이 참담하다고 느꼈습니다. 깊게 파인 상처를 홀로 돌

보는 일, 쉽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장예솔 인생 맛집’을 폐업하려 합니다. 우선, 제 인생 맛집의 건물주셨던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 제 인생 맛집의 마스코트였던 반려견 몽글이, 마지막으로 제 인생 맛집의 단골손님이었던 친구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인생 맛집 폐업합니다. 그동안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대학 글쓰기’ 과목의 첫 과제가 ‘유서 쓰기’였습니다. 황당하죠? (교수님께서는 각 학생이 살아온 삶을 알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저는 위의 유서를 과제로 제출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표현, 시작과 끝이 모두 인상적이네요. 인생 맛집 폐업하지 말고 성업하시길 바랍니다!’라는 코멘트와 함께 만점을 주셨습니다. 아! 그리고 제 인생 맛집에 종종 놀러 오시겠다는 말씀도 덧붙여 주셨습니다.


 참 웃기죠? 남들은 ‘유서를 쓰라니?!’라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때, 저는 휘리릭 써서 과제 제출 첫날에 제출했는데 칭찬과 만점이라니. 저는 악명 높은 교수님께 A+를 받은 몇 안 되는 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나저나 인생 맛집 성업하라니.. 저 유서를 쓸 당시엔 삶과 죽음 사이에서 매일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고 있다가, 결국 모든 미련을 내려놓고 죽음에 대해 이미 초연해진 상태였습니다. 그런 저에게 인생 맛집을 성업

하라니. 이 진심이 담긴 농도가 짙은 한 마디가 백 마디보다 더 낫다고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조금만 더’를 외치며 하루하루를 더 살아가 보려고 합니다. 죽고 싶은 마음이 들 때는 ‘내일 죽어도 늦지 않아. 하루만 더 살자’를 외치며 살아가 보려고 합니다. 애벌레처럼 느릿느릿 가더라도, 언젠가 나비로 다시 태어날 날을 꿈꾸며 살아가려 합니다. 애벌레가 되어서 기어 다니다 보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심지어는 죽을지도 모르지만, 애벌레가 되지 않으면 나비가 될 가능성조차 잃을 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제 이렇게 외칠 겁니다.


 “장예솔 인생 맛집 성업합니다. 어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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