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 팀에 입사하는 사람들은
갓 신입이거나, 경력이 짧은
대부분 나보다 한참 어린 친구들이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내가 ‘고인물’이 되는 건
이제 나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어버렸다.
가끔씩 티타임을 하면서
몇 마디 대화를 나눴던 후배가 갑자기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다.
"차장님은 진짜 제 추구미예요."
내가?
내가 누군가의 ‘추구미’가 될 만큼
멋지게 살아온 것 같진 않은데...
그냥 적당히 거리를 두고,
말을 좀 아꼈을 뿐인데
그게 누군가에겐 이상적으로 보였다는 사실이 좀 놀라웠다.
내가 막 회사생활을 시작했을 때
나도 지금의 후배처럼 생각했다는 걸 기억하고 있다.
그때의 나는 직장동료와도
학교다닐 때 처럼 내가 먼저 다가가면
금방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줄 알았다.
진심을 다하면,
그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질 거라고,
좋아하면 좋아하는 만큼
거리는 저절로 좁혀질 거라고,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선배들이 조심스레 거리를 두는 걸 보면
괜히 섭섭했다.
‘왜 저렇게 쌀쌀맞게 구는 거지?’
‘내가 싫은가?’
나도 한때는,
누군가를 추구미로 삼으며
그저 멋있어 보인다고, 닮고 싶다고
그 사람의 외로움이나 고단함 같은 건
짐작조차 하지 못한 채
순수하게 바라봤던 적이 있었다.
그러니 후배가 그런 말을 할 때
살짝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후회,
상처와 단념이 쌓였는지
아마 그들은 모를 것이다.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무턱대고 마음을 열 수 없게 됐다는 것을.
지켜야 할 거리도 있고,
그 거리만큼
내가 견뎌온 시간도 있었다.
예전엔 너무 멀게만 느껴졌던 선배들의 마음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그들도 나와 비슷한 시간들을
조용히 버텨왔을 것이다.
상처를 견디고,
혼자 무너지고,
그래도 아무 일 없는 척 살아내며.
그 거리감으로
스스로를 지켜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제는 이해한다.
차갑게 보였던 그 단단함이
얼마나 많은 흔들림 끝에 쌓인 것인지.
가까이 다가오려는 이들에게
조심스럽게 선을 긋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선택이었는지를.
그들도 나처럼 그랬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