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열심히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대충 하지도 않는다.
사실, 이제는 조금만 신경 써도
꽤 괜찮은 결과물이 나온다.
워낙 오래 해온 일이라
이제는 습관처럼 손이 먼저 움직이고,
경험이 웬만한 변수는 알아서 피해 간다.
가끔은,
나조차 놀랄 만큼 자연스럽게
문제가 풀릴 때도 있다.
이게 바로 연차의 힘 아닐까 싶다. 하하.
그냥 오래 버텼을 뿐인데,
어느 순간부터 능력처럼 보이게 되는 순간.
물론 그렇다고
책임을 미루진 않는다.
다만 예전처럼 ‘내가 다 해야 한다’는
막연한 부담을 내려놓았을 뿐이다.
모든 걸 끌어안지 않아도,
흐름은 흐름대로 흘러간다.
요즘의 나는
팀장님에게는 필요한 말을 하고,
후배들에게는 필요한 만큼만 다가간다.
보이지 않는 관계의 선을
조용히 의식하며,
넘지 않으려 노력한다.
물어보면 알려주고,
도움이 필요하면 손을 내밀지만
대신 그 일에 깊이 들어가진 않는다.
예전의 나는 달랐다.
안쓰러워 보이면 망설임 없이 달려들었고,
시간이 촉박해 보이면
말없이 나서서 끝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고개를 들고 보니,
‘이게 원래 내 일이었나?’
싶을 만큼
모든 게 내 손 위에 올라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이 해야 할 일은
결국 그들이 직접 겪고,
부딪히고,
깨달아야 한다는 걸 알고있다.
“팀장님, 좋은 방향 같습니다. 다만 현실적으로는 조율이 필요한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박대리님, 이건 직접 해보면서 감을 잡아보세요.”
요즘 나의 가장 단단한 친절이다.
과거처럼 앞장서지도 않고,
손을 뻗어 끌어당기지도 않는다.
그저 흐름을 흐름대로,
그러면서도 틀어지지 않게
살짝 방향을 잡아주는 일.
내가 뭐 그리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요즘 나는
팀 전체의 흐름이 어긋나지 않게
조용히 중심을 조율하는 사람처럼 살고 있다.
누가 말을 세게 하면
내가 살짝 톤을 낮추고,
누가 말을 아끼면
내가 가볍게 리액션을 얹는다.
무게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공기 흐름을 다듬듯
사람 사이를 조율하는 일.
예전엔 이런 걸 다 ‘눈치’라고 생각했는데,
이것도 능력이고,
조직이 무너지지 않게 버티게 해주는,
작지만 분명한 리더십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업무에 휘청이지 않으면서
꽤 안정적인 루틴을 찾아가는 중이다.
예전에는,
몸을 다 태워야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쉬지 않고, 미루지 않고, 무조건 최선을 다해야만
겨우 내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을 지나면서
다른 답을 알게 되었다.
나를 무너지지 않게 돌보는 것.
내 페이스를 잃지 않고 오래 버티는 것.
그게 결국 팀에도, 회사에도,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진짜 도움이 된다는 걸.
내가 없어도 회사는 굴러간다.
그 사실이 더 이상 서운하지 않다.
내 자리는 내가 지킨다.
하지만 그 자리에 내가 갇히지는 않는다.
그게 지금,
내가 여기에서 흐르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