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배는 몇개월 뒤 계약만료로 퇴사했다.
내가 그렇게 마음을 쏟고,
그렇게 조심조심 다가갔던 그 애.
웃긴 건,
퇴사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또 눈치 없이 격려라는 걸 해버렸다.
“어디서든 잘할 거예요. 항상 응원해요.”
이쯤 되면 나는 진정한 쿨병 말기 환자라고 할 수 있겠다.
관계가 끝났는데도
마지막까지 깔끔하게 포장하려 드는 습관.
그 후배가 나간 자리에 남은 건
쌓여 있는 업무,
애매하게 남은 기억들,
그리고 묘하게 퍼진, 살짝 거슬리는 소문뿐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걸 의외로 잘 버텼다.
지나간 일에 오래 머무는 건,
이젠 좀 피곤한 일이 되어버렸다.
곱씹는다고 바뀌는 게 없다는 걸
너무 잘 알아서.
어느 날
팀장님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 자리 대체 인력 채용이 어렵게 됐어.
회사 사정이... 안 좋아.”
이어서 자연스럽게 팀장님의 제안이 왔다.
“그 친구가 하던 업무, 좀 맡아주는 건 어때?
당연히, 연봉 30% 인상하는 조건으로.”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이미 다 해봤던 일들이었고
지금 내게는 크게 부담되지도 않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그 정도의 대우라면,
이쯤에서 한번 받아볼 만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흔쾌히,
정말 쿨하게 오케이 했다.
그리고...
연봉 인상은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싶었지만
팀장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다시 한번 나를 설득했다.
“1년만 기다려줘.
우리 회사 알잖아, 예외 사항 주지 않는 거.
내가 내년 연봉 인상 때는 꼭 챙길게. 정말 노력할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말없이 자리에 앉았다.
그게 끝이었다.
왜 또 그 말을 믿는 척했을까.
글쎄.
솔직히 말하면,
다른 데 가서 뭐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지금은
어딜 향해 움직일 힘조차 없었다.
익숙하니까.
딱, 오래된 연인과의 권태기 같았다.
애정은 식었는데
굳이 헤어질 이유도 없고,
새로운 감정이 생길 가능성도 딱히 보이지 않는.
익숙해서, 편해서,
어느 순간부터 감정이 아니라
습관처럼 남아 있는 관계.
회사를 향한 내 마음이
그런 모양이 되어 있었다.
싫다는 말도,
좋다는 말도
이젠 어색해져 버린 사이.
나는 매일
똑같은 시간
똑같은 자리
똑같은 표정을 하고
권태로운 이 곳에 앉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