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오래 었다는 건
단지 업무 스킬이 늘어난다는 뜻만은 아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생기기를 바라는
기대감도 같이 쌓인다는 뜻이다.
그래서였을까.
그 사건이 그렇게 크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처음엔 사소한 낌새였다.
그 후배를 정말 마음 써서 챙겼다.
신입으로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었고,
표정도 자주 굳어 있었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보여서 괜히 마음이 쓰였다.
“밥 먹으러 가요.”
“이건 제가 정리해 뒀어요.”
“이건 처음엔 다들 헷갈려요.”
그땐 그 모든 말들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부드러운 환대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냥,
그 사람이 이 낯선 환경에서 너무 오래 외롭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조금 더 먼저 다가갔다.
하지만 이 모든 게 결국엔,
오지랖이었고,
간섭이었고,
부담이었다.
밥 먹자고 하면 '자유시간도 안 주는 사람'이라는 얘기를 들었고,
일을 정리해 주면 '자기도 할 줄 아는데 왜 끼어드냐'는 말을 들었고,
회의 전에 슬쩍 도와주면 '뒤에서 지적질한다'는 오해를 샀다.
어떤 선택을 해도 문제였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문제였다.
어느새 그게 나의 자리가 되어 있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잘해보려고 했을 뿐이었는데...
도와주고 싶었고,
편하게 해주고 싶었고,
불필요한 시행착오가 쌓이지 않길 바랐다.
그런데 들려오는 말은 전부,
“감시받는 기분이에요.”
“저 사람 때문에 너무 피곤해요.”
“관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혼란스러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는 그 아이의 성격을 탓해볼까 하다가,
곧장 나 자신을 의심했다.
“내가 너무 앞서갔나?”
“상대가 불편할 수도 있었겠지”
“그만큼의 거리를 내가 못 지켰나?”
“나 스스로가 ‘괜찮은 선배’인 줄 착각했던 걸까?”
그 뒤로 나는 의식적으로
팀원들과의 대화에서 나서지 않았다.
사내 메신저엔 꼭 필요한 말만 썼고,
점심시간에도 일부러 조용히 빠졌다.
무슨 말을 해도
그게 또 누군가의 입에서
다르게 포장되어 돌아올까 봐
입을 닫는 게 가장 안전해 보였다.
나를 직접적으로 공격한 건 아니었지만
내 안은 매일 소란스러웠다.
가장 힘들었던 건,
내가 그동안 고집해 온 가치가 흔들리고 있었다는 것.
나는 늘 균형을 지키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저 이 팀 안에서 흐름을 정리해 주고,
다리를 놓아주는 사람.
그 역할을 꽤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누구의 편도 들지도,
누구를 끌어내리려는 마음도 없었다.
이 팀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기를 바랐다.
어색한 틈을 잇기 위해,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었을 뿐이다.
근데 그 균형이라는 것이
어떤 이에게는 불필요한 간섭으로 느껴졌고,
또 어떤 이에겐 지나친 부담으로 읽혔다.
흐름을 이어주기는 커녕,
오히려 작은 틈을 만들어버렸다.
그래.
그 사람 입장에선 상처였을 수도 있겠다.
내 진심과는 별개로.
그 사람에겐 분명
‘나’라는 존재 자체가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처음엔 억울했다.
‘나는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난 그냥, 좋은 마음으로 한 건데’
억지로라도 해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금방 깨닫게 되었다.
진심이라는 건,
전달하는 사람의 마음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는 걸.
듣는 이가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모양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렇지만,
내 진심이 왜곡되어 흩어지고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빌런’이 되어버린 현실이 견디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있었다.
나는 상처를 쉽게 드러낼 수 없었다.
연차도, 나이도, 포지션도
그럴 수 없는 자리에 나를 세워두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은,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내 마음을 물어봐주기를
어쩌면 내심 기대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나도
무던한 척하지만 자주 다치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오래 머무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애써 괜찮은 사람처럼 굴어야 했다.
결국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 못했다, 가 더 맞겠지만.
내 입에서 나온 ‘상처’라는 단어 하나 조차도
괜히 의미 이상으로 번져
또 다른 불편함을 만들까 봐.
또 다른 오해를 낳을까 봐.
실은,
그게 참 외로웠다.
무너져가는 마음을
나만 알고 있는 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하루를 살아내야 한다는 게.
하지만
나는 오늘도,
조금은 쓸쓸해도,
티 내지 않고 버텨내는 쪽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