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이 비슷하다.
출근해서 자리에 앉고 이메일을 훑고
가장 우선순위인 일들에 답장을 보내며 하나씩 쳐낸다.
그게 끝나면
탕비실에서 커피를 내려오고
전날 임시 저장해 둔 엑셀파일을 다시 연다.
하루하루가 일기처럼 반복된다.
그날도 다른 날과 다를 것 없었다.
업무 회의, 결재 처리
별일 없이 하루가 흘렀다.
그렇게 하루가 마무리되는 흐름 속에서
문서 하나 정리하고
물 한 잔 마시고
슬슬 이어폰을 챙기며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후배 하나가
갑자기 할 말이 있는 듯한 얼굴로
내 앞에 머뭇거렸다.
그리고는 그 후배도 나름 이 곳에서 버텨보려고
힘썼던 마음들을
나에게 조심스럽게 털어 놓았다.
그 하소연의 끝엔
뜻밖의 말이 따라붙었다.
“차장님 없었으면, 저 진짜 퇴사했을 거예요.”
진심인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이 낯설게 들렸다.
괜히 어색한 마음에
“아이~ 왜 이래. 내가 뭘 했다고~”
하고 웃어넘겼다.
사실 나로선 정말
대단한 걸 해줬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저 옆에서 들어주고
물어보면 설명해주고
혼자 애쓰고 있는 후배에게
“괜찮아 그거 다들 처음엔 그래” 하고 한마디 툭 던진 것뿐.
그 몇 마디가,
누군가에게는
꽤 버틸 만한 이유가 되었던 모양이다.
곱씹어 보니,
그건 꽤 오래전부터
내가 자연스럽게 해오던 방식이었다.
거창한 의미를 두지도 않았고,
특별한 의식 없이
그냥 그렇게 해왔다.
속으로는 조금 뿌듯했지만
겉으로는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넘겼다.
‘뭐, 이런 것도 하나의 재능일지 모르지.’
혼자 슬쩍 웃으며..
나는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다만,
할 수 있는 일들을
내 방식대로 이어왔을 뿐이다.
늘 그래왔던 일들이었고
굳이 누가 몰라도 괜찮은 것들이었다.
그냥 ‘내 몫’이라고 여긴 일들.
그래서 그 후배의 말도 그냥 지나가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이 내 마음 어딘가를 슬며시 건드렸다.
큰 칭찬도 아니었는데 그 한마디가 알려줬다.
내가 있어줘서 괜찮았던 시간이 있었다는 걸.
나는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적어도 누군가에겐 한 번쯤 기대도 되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크지도 않고
소란스럽지도 않았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었다는 걸
처음으로 나 자신이 인정해 준 날이었다.
그동안의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반증받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