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텨온 자의 쓸쓸함에 대하여

by 배우리


언젠가부터 나는

누가 임명장을 준 것도 아닌

그렇다고 멱살 잡혀 끌려 온 것도 아닌

어쩌다 보니 ‘선배‘, '중간관리자' 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미팅 때는 괜히 조심스럽게 말하고

점심시간엔 후배들의 얼굴색을 살핀다.

그러면서 늘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처럼 행동해야 하고

실수는 실망으로 돌아오는 연차와 나이.


어느새 나는

위로의 대상이 아니라 기대의 대상이 됐다.


“오래 다녔으면 회사 돌아가는 거 다 알겠네요.”

“그 연차면 업무 내용 모르는 게 없겠어요.”

“네가 모르면 안 되지.”


요즘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사회초년생은 실수해도 귀엽고

팀장은 결단만 내려도 멋있다.


그럼 나는?

우리들은?


실수하면 “저 연차에 왜 저래?”

조금 말 아끼면 “왜 저렇게 히스테리 부려?”

아무에게도 위로도 격려도 받지 못하는

귀엽지도, 멋있지도 않은 포지션.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 기계 속에

고장 나지 않게 돌아가는 낡은 톱니바퀴 하나.


그게 바로 나다.


사실은 나도

가슴속에 늘 사직서를 품은 채 출근을 한다.


책상에 앉아 메일함을 엶과 동시에

슬며시 그 마음을 다시 묻어 놓기를 반복한다.


단지 그것뿐 오늘도 나도 겨우 버틴 거다.


버틴다는 건

애쓰는 마음을 매일 다시 꺼내 쓰는 일이다.

눈치 보며 말아두고

혼자 삼키며 견디는 조용한 싸움이다.


이 글은

같은 공간에 여러 사람과 함께하지만

왠지 모르는 외로움이 느껴지는

그런 사람들을 위한 기록이다.


적응하느라 진이 빠졌고

윗사람과 아랫사람 사이에서

늘 중간 온도로 굴러가는

그럼에도 여전히 ‘팀의 허리’로 '중간관리자'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당신.


“그동안 수고했어요, 진짜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지 모르지만

나와 같은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여기에도 당신과 같은 톱니바퀴 하나

묵묵히 돌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우리는 고여 있는 게 아니라

묵묵히 버티며 흐르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