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도 나는 움직인다.
움직이지 않으면 더 불편하니까.
그냥,
왠지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도움이 필요한 후배, 헤매는 팀장님,
정리되지 않은 문서들...
보이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지시받은 적도 없다.
근데 언제부터 인가 ‘그건 네가 해줘야지’라는 공기가
나를 밀어붙인다.
한 번 도와준 게
다음엔 “늘 그렇게 해왔잖아”가 되고
결국엔 “네가 잘하니까, 너는 빠르니까”로 정착된다.
사실 나는 성격이 대충이라는 것이 잘 안 된다.
친한 다른 팀 동료가
허덕이는 나를 보며 툭 말을 던졌다.
“야, 그렇게까지 열심히 안 해도 돼. 대충 해.”
그 말이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대충 해… 대충 해… 대충…
그러게, 나 왜 이렇게 열심히 하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리고 5분 뒤
나는 다시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못 해. 난 그게 안 돼.
정리되지 않은 엑셀파일은 눈에 밟히고
맞춤법 틀린 제목은 자꾸 거슬리고
후배들의 이메일 속 문장이 어색하면
그걸 자연스럽게 정리해 전달해야 직성이 풀린다.
어느 회의 날
후배를 위해 만든 참고자료를
팀장이 본사에 보고하겠다고 들고 갔다.
덕분에 보고서는 내가 쓰고
수정도 내가 하고
결과는 팀장님이 가져가셨다.
그리고 주변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거 원래 네 일이었잖아.”
후배들은 가끔 말로는 날 추켜세운다.
“진짜 대단해요.”
“그거 벌써 다 하셨어요?”
고마운 말이지만
이상하게 나는 그 말에서
존경보다 편안함이 먼저 느껴진다.
‘좋다. 선배가 다 해주면 편하지.’
그런 마음.
연초엔 계획, 연말엔 평가.
패턴은 정해져 있고
언제 뭘 해야 하는지도 이미 다 알고 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때 되면 내가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냥 '알아서 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근데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너무 나섰나?
아니면 그냥… 다들 안 하니까 내가 하게 된 건가?
그래서 서운하고
가끔은 억울하다.
하지만 오늘도
누군가의 빈틈이 보이면
그걸 애써 못 본 척하려다 결국은 못 참고 움직인다.
입을 열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은 그냥 조용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
별일 아니라는 듯, 아무 말 없이 또 먼저 손을 대고 만다.
그러니
엉덩이 가벼운 게 죄라면,
나는 오늘도, 완전 유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