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나는
이 회사에서 누구의 편도 될 수 없게 됐다.
팀장과 후배 사이, 위와 아래의 온도차를
매일매일 기상캐스터처럼 예측하고 조율하는 게 일이었다.
근데 이걸 누가 알아주는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이젠 나도 잘 모르겠다.
회의에서 신입이 낸 아이디어에
살짝 피드백을 준 적이 있다.
톤도 정중했고
신경 써서 말끝마다 쿠션 단어를 붙여가며 말했다.
“혹시 이런 방향은 어때?”
“좋은 아이디어긴 한데~ 우리가 현실적으로는…”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아… 그러니까 그냥 하지 말자는 거네요.”
…에? 내가 언제?
(요즘 친구들 정말 거침없다.)
다른 회의에선 나도 모르게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괜히 말했다가 또 누군가 상처받을까
또 누군가 날 오해할까 싶어서
그냥 조용히 흐름만 지켜봤다.
그랬더니 회의 끝나고 팀장이 날 따로 부르더라.
“너까지 입 닫으면, 이 팀이 굴러가겠어?”
…
옛말로만 듣던, 내가 바로 새우등인가.
말해도 피곤하고
안 해도 피곤하고.
말을 돌려하면 답답하다고 하고
직설적으로 하면 상처받았다고 한다.
팀장이 보기엔
내가 요즘 팀에 무관심한 사람 같을 거고
후배들이 보기엔
애매하게 어정쩡한 사람으로 보이겠지.
나는 그저 오늘도 무사히 퇴근하길 바랐을 뿐인데.
근데 나 진짜, 무관심해서가 아니라
다 보이니까 더 조심스러운 거라고.
하지만 그건 아무도 모르겠지.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인 줄 아는 세상에서
나는 차라리
등이 터지는 쪽을 택했다.
그래서 그냥 무슨 말을 하는 대신
조용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꿀꺽꿀꺽 두 모금 더 마셨다.
속이 시원한 건 아니었지만 입은 덜 마르니까.
요즘의 나는
스스로도 참 애매하게 느껴진다.
애매한 입장
애매한 위치
애매한 역할.
딱 하나 분명한 건
시간은 흘렀고
그만큼 나이도, 연차도 쌓였다는 사실뿐이다.
그걸로 충분히 단단해졌어야 할 것 같은 나.
하지만 실은
그때그때 눈치 보며 버텨온 결과일지도 모른다.
이게 성장이었을까?
아니면 적응이었을까?
나름 열심히 하다 보니 중요한 일은 다 내 몫이 됐다.
처음부터 이 자리를 원했던 것도 아니고
누구보다 잘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그때그때 필요한 걸 내가 했을 뿐인데,
지금은 아무도 나에게 ‘무엇을 하라’고 지시하지 않는다.
나는 팀 내에서 ‘알아서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헷갈린다.
나는 지금
내가 해야 할걸 하고 있는 걸까?
이 자리가 내가 있는 곳이 맞는 걸까?
아니면 그냥 시간이 지나버린 결과일 뿐일까?
가끔은
내가 정말 중요한 사람인 것 같다가도
누구나 대신할 수 있는 부품처럼 느껴진다.
분명한 건
내가 선택한 자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는 내가 버텨서 온 거라는 것.
단지 오늘도
다들 무사히 퇴근하길 바라는 마음 하나로
또 하루를 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