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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가족

아포칼립스 육아기

by 은림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처럼 기울어진 천정을 보며 잠에서 깼다. 남편은 바람이 드는 창문가에서 온몸으로 한기를 막고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낮은 집에서 사느라 늘 구부정한 자세여서 190에 가까운 덩치가 외소 해 보였다.


아무도 켜지 않은 테피스트리가 제멋대로 켜지고 아무 채널이나 나오다가 다시 조용해졌다. 여기가 어디더라. 잠에서 덜 깬 머리가 무거웠다. 내 몸은 계속 꿈속을 헤매고 싶었지만 허리의 묶은 통증이 명료하게 의식을 깨웠다. 여기는 우리 집이다. 지상이 멸망한 후의 지저세계. 사실 멸망 전에도 우리처럼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은 지하층에 살았기 때문에 딱히 세상이 달라진 건 없었다.

나는 벽돌이 매달린 듯 무겁고 감각 없는 허리를 달래며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보았다. 오늘은 벽돌 모서리에 찔리는 고통 없이 일어날 수 있었지만 등에선 여전히 진땀이 났다.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아픔과 굶주림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한계를 넘었다 싶으면 다음 한계가 나타날 뿐, 그런 것들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았다.


잠자던 아이가 날카롭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울었다. 아기들은 울면서 태어나고 온종일 울었다. 아기들은 왜 우는 걸까. 낙원에서 추방된 게 슬퍼서? 기다리고 있는 삶이 고될 걸 알아서? 아니면 그저, 살아남은 게 슬퍼서?


<달>과 <방주>에서는 이제 아무도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들었다. 거기엔 수명연장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후손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여기 <지하>도 아이를 낳지 못했다. 오염지역에서 일하느라 불임이 팽배하고 생존에 시달리다 살다 보니 아무도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점점 불러오는 내 배를 보면서 먹은 것도 없는데 살이 찐다고, 유전자 변형 식품 때문에 생긴 후유증이라고 생각했다. 산업재해와 환경오염 유전자 변형 식품섭취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지하인에게 신체 변형은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악성종양이나 사지절단마비가 아니면 다행이고, 그렇다 한들 치료 없이 그냥저냥 버티다 죽었다. 치료비를 쓰고 얼마간 목숨을 연명한 들 병원의 노하우 쌓기에 돈을 쳐들어는 일이며 회복하기가 어렵다는 건 다들 알았다.


운 좋게 회복해도 전 같은 삶을 다시 살 수도 없었다. 병구환으로 자리를 비운 동안 일자리는 기다려 주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치료에 돈을 쓰면, 쓴 만큼 다른 가족의 생계를 갉아먹는 일이란 걸 다들 알았다. 그래서 나는 몇 달 동안 어지럼증과 구토에 시달리며 가공된 유전자 조작 식품조차 제대로 못 넘기고 격무에도 늘기만 하는 체중을 보며 당연히 암이라고 생각했다. 병원에 갈 필요도 없었다.



임신인 것은 7개월이 넘어서야 알았다. 우리 부부가 닥친 현실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동안 누군가 진짜 아기는 비싸게 팔린다는 이야길 슬쩍 들려주었다. 임신부의 양수랑 태반, 아기의 탯줄과 태내 혈액까지도 큰돈이 된다고 했다. 나는 잠시 내 몸과 생명에 위태롭지 않은 부산물을 얼마에 팔 수 있을지 계산했던 것도 같다.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주기 전까지.


우는 아이 옆에 누워 토닥토닥 달래고 일어나는데 뒤늦게 무딘 톱칼이 허리를 저미는 통증이 찾아왔다. 아이를 깨울까 봐 잠시 숨을 눌러 참고 천천히 몸을 돌려 다시 일어났다. 세찬 강물처럼 울던 아이는 돌을 간질이는 샘물처럼 부드러운 숨을 뱉으며 잠들었다. 나는 잠깐의 평화 속에서 숨을 고르고 한쪽으로 기울어진 붙박이 선반에 빼곡한 살림살이를 훑었다. 필요한 것은 모두 제자리에 있었다.


문지방 하나 넘는 부엌으로 건너가 작은 저장고를 열어 불려둔 쌀과 분말 야채를 끓여 아기 먹일 것을 준비했다. 어디선가 회색 줄무늬 고양이가 나타나 다리에 이마를 부빗고 꼬리를 슬쩍 발등에 감으며 스쳐갔다. 사료통에서 얼마 남지 않은 고양이 먹이를 꺼내주자 저쪽에서 날카롭게 ‘냥! 꾸루록.’ 소리를 내며 검은 줄무늬 고양이가 나타났다. 회색 고양이가 ‘하악’ 소리를 내며 앞발질했다. 검은 고양이는 두어 발 물러나 회색 고양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남은 걸 먹었다. 고양이들이 다투는 소리에 남편이 깼다.

“기차가 철로를 지나는 소리를 들었어. 창 옆에 바람구멍으로.”


밤 내내 잔뜩 옹송그렸던 몸을 편 남편은 저물녘 그림자처럼 길었고 한기에 질린 얼굴은 얼룩덜룩했다. 미닫이 창문을 열자 밖이 아니라 흙으로 꽉 막힌 격벽이 드러났다. 갑자기 현실이 쿵 소리를 내며 사방에 가득 찼다. 겁에 질려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나는 간신히 무너질 거 같은 자신을 다그쳤다. 버텨. 도망치지 마.


“오늘은 가야 해.”


유전자 변형 콩을 조금 불려 소금과 볶은 것을 아침으로 먹고 남편이 말했다. 나도 안다. 우리가 아직 도전할 힘이 있을 때, 고양이 밥까지 먹어치우고 서로를 잡아먹기 전에 가야 했다.


“그래.”


마침내 입에서 대답이 흘러나왔다. 우리는 지금껏 몇 번이나 풀었다가 다시 싼 필수품을 빈집들을 뒤져 찾아낸 가볍고 질긴 배낭에 담아 서로의 어깨에 매 주었다. 남편은 특히 내 배낭 무게에 신중을 기했다. 허리가 조금만 덜 아팠더라면 더 많은 짐을 지고 더 멀리 더 빨리 떠날 수 있었을 텐데 다른 사람들처럼. 하지만 사고와 출산으로 얼룩진 허리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남편이 일을 쉬는 기간에 <지표>에 ‘대재앙’이 닥쳤다. 요통이 심해 운신을 할 수 없는 나 대신 아픈 아기를 돌보느라 휴가를 내자 사업주는 간단히 남편을 잘라버렸다. 남편은 우리 가족 덕분에 자기가 목숨을 구했다고 말했다. 우는 아메바와 다름없는 갓난애와 아파서 짐덩이가 된 아내를 먹여 살리느라 말 그대로 뼛골 빠지게 일하는데 우리 덕분에 살았다니 기묘한 기분이었다.

피곤해서 시커면 얼굴로 출근한 남편은 퇴근할 때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어깨는 날이 갈수록 구부정해졌다. <지표>에서 일할 때 본 날마다 마르던 달처럼. 남편이 월급을 가져올 때면 정말 두 손으로 뼈 값을 받는 기분이었다. 그 기분을 덜기 위해 월급날은 특별히 합성고기를 사다 상에 올렸다. 남편의 잃어버린 살점을 보태려는 것처럼.


‘당신도 먹지?’


남편이 권했지만 입으로 들어가는 게 남편의 살 같아서 좀처럼 젓가락을 들 수가 없었다. 어쩌면 정말로 남편은 골수를 빼 팔았을지도 모르겠다. 저렇게 매일 마르고 굽어지는 걸 보면.


배낭에는 2리터들이 물병 두 개. 비상식량과 칼과 가위, 나일론 끈과 실과 바늘, 물을 거를 면포와 크고 가벼운 솥, 자가 손전등과 라이터와 양초를 넣었다. 자가 손전등은 자기 부상체에서 불법보부상이 떨이로 파는 것을 아이 장난감 삼아 산 것이고, 라이터는 아기의 첫 생일 초를 켤 때 썼던 거였다. 혹시나 싶어 남편의 예비 안경과 아이가 커가면서 입을 수 있도록 넉넉한 여벌옷과 가진 중에 가장 크고 두껍고 접으면 작아지고 이불 삼아 덮을 수도 있을 패딩과 폴리 담요를 침낭 삼아 챙겼다. 무엇이 더 필요해질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우리가 아는 전쟁과 기아, 극한의 상황은 모두 화면과 이야기 속에만 있었다. 그곳에서 필요했던 모든 것이 우리에겐 필요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삶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다. 그리고 마음도. 그 생각이 들자 앤티크 샾에서 구매한 가볍고 튼튼한 노트와 쉽게 닳아지지 않을 펜, 굴러다니는 연필 몇 점이 눈에 들어왔다. 연필은 젓가락 대신으로도 쓸 수 있었다.


아무리 준비를 해도 마음이 허전했다. 모든 편리한 도구들과 언제나 필요했던 자질구레한 것들을 두고 떠난다는 게 두렵고 아쉽기만 했다. 반대로 당장 뛰쳐나가 모든 위험을 맞닥뜨리고 단박에 해결해버리고 싶기도 했다. 용기는 두려움의 뒷면이다.


“너무 많잖아.”


남편이 말했다.


“뭐가 필요할지 모르잖아.”


내가 말했다.


“다시 가지러 오면 되지.”


남편이 등을 돌렸다. 다시 돌아올 수도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둘 다 입에 담지 않았다.


남편이 빈집에서 가져온 요가 책과 몇 가지 운동기구로 내 몸은 일상생활이 가능할 만큼은 회복했다. 하지만 밖은 일상이 아니고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요전번에도 빈집 탐색에 나섰다가 바닥이 꺼지는 바람에 골반뼈가 어긋나 한참 동안 고생했었다. 정말로 길을 떠나면 위험은 외부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나였다. 아픈 아내를 챙기느라 남편이 쓸데없는 힘을 쓰게 될까 봐 겁이 났다. 이제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거두기에도 벅찬데 내가 짐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두려움이 몰려왔다. 다른 무엇보다 그게 가장 끔찍했다.


“그렇지 않아. 아이는 언제나 돌보는 사람이 필요하고 하나인 것 보다 둘인 게 나아. 어떤 상황이라도.”


남편이 내 마음을 읽었다. 동갑인데도 나보다 크고 어른스럽던 남편이 더 커 보였다. 하지만 그늘진 얼굴 한편에서 나는 남편이 다 하지 않은 책망을 읽었다. 아니 그건 남편이 아니라 내 마음이 나를 책망하는 거였다. 그걸 깨닫는데 아주 오래 걸렸다. 대안 없이 직장을 그만뒀을 때, 분수에 맞지 않는 비싼 카페에 앉았을 때, 백화점에 들어갔을 때, 세일 딱지가 없는 물건을 샀을 때, 늦잠을 잤을 때, 집안일을 미뤘을 때, 아이가 아플 때, 나는 유령의 속삭임처럼 맴도는 구설수와 날카로운 손가락질을 느꼈다. 그건 모두 나였다.


“이리 오렴.”


남편이 아이를 맡았다. 변변히 먹인 것이 없으나 남편을 닮아 아이는 쑥쑥 길어졌다. 아이는 혼자 걸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안전하지 않은 길들을 대비해 남편이 아기 띠를 맸다. 내가 아무리 운동으로 근력을 키워도 망가진 허리로는 아이의 무게를 버틸 수가 없었다. 다친 나보다는 온전한 남편이 생존력이 높을 거라 남편과 아이를 같이 엮기도 했다. 남은 짐들을 최대한 이고 지고 나니 등 뒤에 고양이가 남아 있었다.

회색 줄무늬 큰 고양이와 검은 줄무늬 날씬한 고양이. 녀석들은 몸의 부피가 아닌 올올한 털의 개수로 존재감을 과시하며 매일 매시간 매초마다 한 방울씩 내 안에 떨어지던 우울과 불안과 죄책감을 물리쳐 주었었다. 저 밖엔 고양이가 필요 없겠지. 감정을 느끼기는커녕 ‘내’가 ‘나’ 일 수조차 없을 테니까.


고양이는 개처럼 사람을 따라오지 않았다. 케이지에 고양이를 넣고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몇 번이나 연습해 봤었다. 고양이만 들고도 동네를 다 벗어날 수가 없었다. 돌아올 기력을 보충하고 허리 통증이 잦아들려면 중간에 아주 많이 쉬어야 했다. 남편에게 도와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남편은 고양이 알레르기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함께 사는 걸 감당해 주었다. 지켜야 할 것의 우선순위는 너무나 명확해서 나는 울었다.



첫 무리의 사람들이 떠나면서 두려움에 내몰려 짐을 쌌을 때 고양이는 염두에도 없었다. 하지만 허리 때문에 주저앉자 기대에 찬 표정으로 밥그릇 앞에 앉아 있는 노란 눈과 마주쳤다. 죽이고 가는 편이 나을까? 결국은 굶주리고 병들어 고통받다가 앙상하게 죽어갈 바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남은 고양이 사료를 오르내리기 쉽고 해충과 습기가 차지 않는 곳을 골라 쟁여 놓았다. 하루라도 고양이가 삶을 누리길 바라고 죽음을 모른 채 죽기를 바라면서. 실은 내 눈에 새긴 건강한 모습 그대로 두고 가고 싶은 거다. 아무리 상대를 위한 대도 실은 나를 위한 거라는 죄책감이 한번, 마음을 더 옥죘다.


우리는 길게 이어진 빈집을 하나씩 등지면서 검은 길을 걸었다. 이 길보다 더 어두운 곳으로 나아가자니 두려움에 발걸음이 땅에 달라붙었다. 나는 딱 두 걸음, 엉키지는 않지만 무슨 일이 있어서 서로 떨어지지 않을 만큼만 앞서 가는 남편과 그 옆에 종종 이는 아이에게만 집중했다. 걷는 게 쉬워지진 않았지만 내딛는 발에 힘이 실렸다.


“다들 어디로 갔을까?”


피로에 짓눌린 어둠을 밀치며 간신히 말이 입 밖으로 나갔다.


“그건 모르지만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어. 갈 데가 있다는 거지.”


남편의 목소리도 무겁고 갈라졌다. 우리는 아이를 가운데 두고 서로 손을 한번 꾹 잡고 놓았다.


첫날의 행로는 모든 집들의 마지막 집에서 멈췄다. 우리는 여길 등대집이라고 불렀다. 전봇대에 연결된 가로등이 마지막으로 밝혀진 집이기 때문이었다. 그 집주인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방법을 썼는지, 아니면 떠나면서 무슨 일이 있던 건지, 한집씩 전깃불이 사라지고 오래된 촛불을 밝히게 된 후에도 그 가로등에선 빛이 났다. 남편은 이 너머의 길들을 미리 탐색해 두었다. 나도 여기까진 혼자 와 본 적이 있었다. 먹을 것을 뒤져 찾느라 한 집씩 제치다가 어느 날 홀린 듯이 길의 끝까지 걸어본 날이었다. 그 뒤로도 체력을 기를 겸 가끔 왔다. 자주 오진 않았다. 집들이 끝나는 점을 마주할 용기가 나는 날은 많지 않았다.

가로등 뒤로 색이 바랜 꿈결 같은 집들이 고요히 서로에게 기대 무너져 가는 게 보였다. 나는 지붕이 보이는 끝까지 훑어본 다음 어둠 속으로 발길을 돌렸다.


몇 차례 사람들이 떠나고 미처 떠나지 못한 사람들은 서로를 돌보았다. 대부분 병약자들이고 정상인은 드물었다. 마지막에 정상인은 남편만 남았다. 갓난아기와 아픈 아내 때문에 떠나지 못한 남편은 남은 사람들을 돌보며 주검을 수습하기도 했다. 혼자 시체를 묻고 온 날이면 남편의 침묵은 더 깊고 낡아 부스러질 것처럼 바래 있었다. 그런 날 남편은 아껴둔 술을 한 모금 깊게 마셨다. 사실 아끼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남은 술은 아주 많았다. 나는 왜 남편이 그걸 다 마시고 영영 떠나버리지 않는지 늘 궁금했다.


마을을 떠난 사람들은 다신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이 숨겨 두고 간 비상식량을 뒤져 먹으며 한동안은 사람들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워서든, 두고 간 것들이 필요해서든, 아니면 더 갈 곳이 없어서든. 하지만 아무도, 단 한 사람도 돌아오지 않았다. 남편은 거기에 희망을 걸었다.


‘돌아오지 않는 건 갈 곳이 있다는 뜻이야.’


한동안 교대로 빈집들에서 필요품을 조달하면서 어느 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 살피고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남편과의 대화의 전부였다. 우리는 농담처럼 서로를 무덤지기라고 불렀다.


“그 사람은 <달>로 잘 갔을까?”


내가 말했다.


“누구 말이야?”


남편이 물었다.


“내 조산사. <지표>에서 무슨 일이 나면 <달>로 가는 <방주>를 탄 댔거든.”


“글쎄. 조산사 일을 해서 <방주>를 탈만큼 돈을 많이 모을 수 있을까...”


남편은 말꼬리를 흐렸다. 나는 남편이 삼킨 ‘다행히 돈을 모아 방주를 탄대도 달에서 버틸 돈이 있을까’하는 말을 알아들었다. 조산사가 될 정도의 교육을 받으려면 집안에 돈이 얼마쯤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남의 일로 수다를 떨기엔 너무 피곤했다. 나는 아이를 안고 몸을 웅크렸다. 어둠 속에서 아이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어릴 때 읽은 동화가 떠올랐다. 눈이 유난히 맑은 ‘별의 눈동자’라는 여자아이가 사람들이 감추고 싶은 속마음을 폭로했다가 친엄마에게마저 버려져서 차가운 눈밭에 누워 있다가 별빛이 눈에 스며 천국까지 꿰뚫어 보자 천사들이 아이를 데려갔다는 이야기였다. 이 애도 어둠과 천정과 지표를 뚫고 밤하늘과 <달>을 보게 될까? 천사들이 ‘별의 눈동자’를 데리러 왔던 것처럼 <달>에서 아이를 데리러 올까?


허리가 욱신댔다. 내일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이 몸은 어디까지 버텨줄까. 오늘 우리가 알던 모든 장소가 끝났고 내일은 전혀 알지 못하는 길을 밟을 것이다. 꿈결에 부드럽게 손목에 감기는 털의 촉감이 느껴졌다. 눈을 뜨면 아무것도 없으리란 걸 알기 때문에 뜨고 싶지 않았다. 내가 놓아버린 포근함이 마음의 위안이 되는 건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마음에 빛을 품지 않고 어떻게 이 어둠을 버틸까.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까. 나는 비릿한 아이의 머릿내를 맡이며 눈가에 물이 고이기도 전에 잠들었다.





회색 줄무늬 고양이의 배고픈 혀가 까끌까끌하게 이마를 핥았다. 손에 줄 것이 없어서 꿈속에서도 마음이 아팠다. 침구를 정돈해 넣으면서 고양이 털을 몇 올 발견한 나는 그걸 보물처럼 싸서 제일 튼튼한 주머니에 깊숙이 넣었다. 그리운 마음을 작은 무덤에 묻는 것 같았다.


“옛날처럼 종이 사진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걸.”


남편이 말했다.


“있어도 옛날처럼 가볍진 않을 걸.”


내가 말했다. 대부분의 매체가 전자식이고, 굳이 닳아빠지고 공간만 차지하는 종이를 사용하지 않은지는 아주 오래되었다. 지구 환경보전과 자원 활용 제한 때문에 가벼운 진짜 종이는 완전히 사라졌고 박물관이나 앤티크 샾에서나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쓰는 종이는 재활용자원과 돌가루를 합성한 질기고 무거운 합성물이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던 아기자기한 돌담길이 끝나자 검댕으로 더껑이 진 넓은 터널 나타났다. 우리는 터널 안의 도로를 따라 걸었다. 아직은 문명 밖으로 나갈 이유도 여력도 없었다.


세상이 하나인 때가 있었다고 했다. 구글 글라스 북 속에서. 이제 <달>과 <지표>와 <지하>와 그사이에 무수한 무중력 구역과 자기 부상 구역으로 나뉘었다. 아니 어쩌면 세상은 단 한 번도 하나인 적이 없었을지도 몰랐다. 마추픽추의 가장 오래된 도시 유적마저 꼭대기에 사는 사람과 최하층이 엄격이 구분되어 최상층에서 쓴 물을 차례로 아랫사람들이 썼다고 했다. 물은 아래로 흐르면서 부유물과 오물투성이가 되어서 최하층에서 쓴 물은 아주 더러웠을 것이다. 물은 아래로 흐른다. 흐르면서 부유물과 오물을 쓸어 점점 더러워진다. 물처럼 계급적인 물질도 드물다고 나는 생각했다. 아니 모든 물질이 계급적이었다. 모든 나쁘고 더러운 것은 아래로 지하로, 좋은 것은 위로 하늘로 올라간다. 원래 지구는 우주의 먼지와 쓰레기로 똘똘 뭉친 물질이다. 모든 찬란한 것들은 더러운 땅에 붙들리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 달아났다. 부모에게서 달아나는 아이들처럼, 중력에서 달아나는 <달>처럼.


<달>에서 버려진 폐기물은 <지표>로 보내져 재활용되었다. <지표>에서 버려진 폐기물은 <지하>에서 재분류되어 쓰였다. <지표>에서 난 가장 좋은 것들은 <달>로 운송되었다. <지표>에서 사용하지 않는 것들만이 <지하>에 전달되었다. <지하>에서 먹고살고 일한다는 건 그런 거였다. 남들이 쓰지 않는 물건, 먹지 않는 음식, 정수기 없이는 마실 수 없는 물로 빚어가는 삶이었다. 사람들은 빚을 져서라도 지독하게 자신을 갈고닦아 <지표>로 일하러 나갔고 <지표> 외곽이나 자기 부상 지역으로라도 이주할 돈을 모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더 갈아낼 것 없어 말 그대로 뼈와 골수까지 뽑아 맞바꾼 돈으로는 <지표>로 진출하기 위해 빚을 낸 교육비를 갚는 것만으로 벅찼다. 대부분의 일자리는 <지표>에 있었고 자격증이 없으면 <지표>에서 고용되지 않았다. 가끔 그 자격증 발행료와 응시료들로 <지표>가 먹고사는 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교육은 <지표>가 생산하는 것들 중에 가장 비쌌다.


<지하>에서 <지표>로 통하는 몇 가지 길 중에 우리는 가장 가깝고 익숙한 남편의 출근길로 향했다. 도착해 보니 위에서부터 무너진 80층짜리 건물이 건널 수 없는 거대한 다리처럼 통로를 가로막고 있었다.


“다른 쪽으로 가보자.”


우리는 발길을 돌렸다. 어디선가 썩은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 합성고기와 비슷했지만 날카로운 비린내가 달랐다. <지하>에서 숱하게 맡았던 시체 냄새, 죽음의 냄새였다. 통로 한쪽에 사람이 지나다닐만한 수리와 보수용 문이 있었다. 평소에는 닫혀있을 문이 지금은 활짝 열려 있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불길해 보였다. 미끼가 놓인 덫처럼.


“거기는 가지 말자.”


내가 남편의 걸음을 만류했다. 남편은 아이를 보고 문을 보고 방향을 바꿨다. 그때 피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몰라서 다행이었다고 우리는 나중에 말했다.


우리는 길을 비틀어 터널 철로를 따라 걸었다. <지표>에는 자기 부상체가 다녔지만 <지하>에는 여전히 철로가 남아 있었다. <지표>에 내린 비가 누수되어 벽을 타고 흐른 검은 자국이 보였다. <지표>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개인 접속 채널들은 한동안 유효했지만 정보는 철저히 통재되어 오락물의 재방송만 검색되다가 곧 완전히 끊어졌다. 가끔 테피스트리와 글라스북에 스쳐가는 메아리 같은 잔상이 한밤중에 깔깔대면 이질감에 소름이 끼쳤다.


이만큼 <지표>와 가깝다면 지상의 소음들이 전달될 법도 하건만 모든 것이 얼음처럼 고요했다. 마침내 우리는 자기 부상 열차들이 모인 기지국에 도착했다. 빈 열차 안에는 한동안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있었다. 우리는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챌 수 있는 어떤 흔적이나 힌트라도 얻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모든 물건들이 조금 어질러진 채, 당장 누군가 그 위로 얼굴을 내밀 것처럼 각자 쓰이던 자리에서 침묵하고 있었다.

기지국 바깥은 많은 사람들이 스쳐 간 흔적이 있었다. 아직 <지표>에서 내려오는 빛이 있을 때 누군가가 열차 벽에 긴 글귀를 적어 놓았다. 그림도 있었다. <지하>라서 결코 환해지지 않는 아침에 남편은 뭔지 보려고 잠깐 등을 켰다가 얼른 껐다.


“뭐였어?”


나는 미처 다 보지 못했다.


“그냥 낙서야. 감상적이고 어리석은 싯귀들. 빛이 아까워서 껐어.”


아이는 어슴푸레한 선의 음영 모서리를 더듬었다. 내 눈엔 보이지 않지만 아이의 눈엔 글자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한동안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던 우리는 결국 짐을 뒤져 먹을 것과 필요한 소모품을 몇 가지 챙겼다. 방부제로 썩지 않는 음식도 몇 가지 골라 오랜만에 배불리 먹었다. 아이는 남겨진 짐 속에서 귀는 토끼고 몸은 곰이고 전제적으로는 올빼미처럼 생긴 회색가방을 찾아냈다. 가슴에는 흐려진 v무늬가 여러 개 있었다.


“다른 아이도 있었을까?”


“있었다면 가방을 가져갔겠지.”


그래. 아이가 있었다면 인형 가방을 놓지 않았겠지. 지금 내 아이처럼.


“그거 놔. 더러워. 병에 걸린다고.”


우리 부부가 아무리 어르고 야단쳐도 아이는 인형 가방을 놓지 않았다. 아이에겐 장난감이 없었다. 그런 걸 챙겨 올 여유도 없었다.


“그래, 애들은 장난감이 필요하지.”


짓눌릴 것 같은 내 삶을 견디는데 고양이가 필요했던 것처럼 아이에게도 인형이 필요했다. 우리는 결국 남는 천으로 가방에 쌓인 마른 먼지를 닦아 아이에게 주었다. 인형 가방은 너무 작고 끈도 약해서 가방으로서의 쓸모는 거의 없었지만 인형으로 갖고 다니기는 수월했다. 나는 가방을 매주며 이 쓸모없고 사랑스러운 물건이 아이의 마음을 위로하고 지켜줄 수 있기를 몰래 기도했다.


“우리가 이 애를 잘 기를 수 있을까?”


나는 아이를 길러보기는커녕 구경한 적도 없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테피스트리와 개인 통신만으로 육아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그나마 출산 전 막연한 것들이었고 출산 후엔 <재앙> 때문에 새로운 정보를 구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가진 정보를 짬짬이 외우다시피 훑었다. 진짜 육아에 돌입하자 그나마도 절반은 카더라였고 반의 반은 내 아이에겐 맞지 않았고 나머지를 시도해서 반의 반의 반의 반만 정말로 효과가 있었다.


“우리도 다 아이였어. 기억해내기만 하면 되.”


남편이 말했다. 귀퉁이를 밝힌 좁은 방이 떠올랐다. 딱딱한 상자에 담아 고이 간직했던 구겨진 pvc 접기와 플라스틱 인형, 털 인형, 노래하는 상자, 게임 패드와 가짜 악기들. 물려받은 낡은 자전거, 아름다운 그림이 든 낡은 슬라이드 칩, 짝이 안 맞는 말판놀이, 울퉁불퉁한 퍼즐 모서리가 기억났다. 어른이 아니어서 마주하던 무력감과 가질 수 없어서 서러웠던 시간들도 함께 따라왔다.


“아이는 어떤 상황에서든 자라. 우리가 지키고 돕기만 하면 되.”


남편 말이 맞다. 장난감이 있건 없건 아이는 자란다. 질이 좋지 않아도 필수적인 영양소가 채워지고 사고와 질병을 피한다면 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될 것이다. 물론 그냥 나이만 먹는 것과 어른이 되는 것은 전혀 달랐다. 살아남는 것이 전부인 세상에서 아이가 제대로 된 어른이 되길 바라는 건 사치였지만, 그럼에도 우리 부부는 그러길 바랐다. 내일도 모르는데 아이가 어른이 되는 건 너무 멀고 벅찬 이야기란 것도 잘 알았다.


우리는 한동안 기지국에서 지냈다. 번갈아 주변을 경계하고 남은 것들을 탐색해 취하면서 글씨가 보이면 수시로 아이를 가르쳤다. 접속 채널도 글라스 북도 음악도 책도 없는 텅 빈 시간은 철철 넘쳐흘렀고 가르침과 배움은 우리 가족의 유일한 놀이였다. 아이는 지도를 볼 수 있었고 이름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숫자를 익히고 일기를 썼다. 우리는 떠나온 곳부터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출발점이 우리 집이라서 어수룩하게 만든 보물지도 같았다. 남편은 나중에 물품이 필요해지면 가지러 갈 수 있게, 중간중간 보급품들이 숨긴 곳도 표시했다. 만약에 우리가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다면 돌아갈 길이었다. 나는 애들 낙서 같은 지도를 보면서 푹푹 꺼지는 것 같은 앞길에서 출발점으로 달아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거기엔 미래가 없었다. 아이는 미래로 가야 했다. 나는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으며 품 안의 아이를 꽉 끌어안았다.


아이는 처음에는 걷는 것이 힘들다고 칭얼대고, 낯선 길들이 무서워서 울었다. 이젠 여행이 생활이 되었다. 놀잇감이 없다고 징징대지도 않았다. 아이는 아무것도 없어도 신기하고 재밌는 것을 잘도 찾아냈다. 아이에겐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것이 놀이였다. 아이는 배운 것들로 철로 안쪽 격벽에 자음과 모음이 떨어져 나간 싯귀들을 고쳐 썼다.

시들은 아이더러 고치라고 일부러 틀려 있던 거 같았다.

남편은 아이가 빠트린 글자를 일깨우고 다시 가르쳤다. 좋은 시절에 누군가 그걸 보고 말했었다. 이런 멍청하고 소비적인 생각을 누가 한 걸까. 아무도 보지 않을 텐데.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너무 질이 떨어지고, 관심 없는 사람에겐 읽히지도 않을 거고. 정말로 읽을 사람들은 따로 파일을 살 텐데라고. 나는 햇살처럼 날카롭게 빛나는 글자 모서리들을 눈으로 훑었다. 어디에 있는지 어디서부터 온 건지, 도대체 어디로 갈지도 모르는 우리처럼 엉망으로 엉킨 글자 속에 상념들이 떠다녔다. 어설프게 쓰인 시처럼 우리는 목적지에 다다를 수도 있고, 이르지 못할 수도 있었다. 시의 완성이란 뭘까. 삶의 여정에서 도착이란 어떤 것일까.





마침내, 우리는 기지국 전체를 탐색해 냈다. 아이는 통로에서 좀 어긋난 곳에 서서 우리를 손짓해 불렀다. 천정은 여전히 높고 어두웠지만 공기 중에 어슴프레 하게 빛이 있었다. 그곳에 서자 멀리 서광처럼 비치는 빛줄기가 보였다.


“아빠, 저쪽.”


아이가 손으로 가리키며 옷을 당기자 남편은 고개 저었다.


“안돼. 우린 오늘 다른 통로를 찾을 거야.”


남편은 <지표>로 나가길 두려워했다. 매일매일의 출근길에 무거워진 발이 습관처럼 <지표>를 거부하는 것 같았다.


“그냥, 가 보자. 어차피 오늘 가던 내일 가던 마찬가지잖아. 약속도 없고,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출근해야 할 곳도 없고 월급을 줄 곳도 없었다.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음식물을 저장할 수도 없고 돈을 저축할 수도 없었다. 우리는 한 달을 더 살지 1년을 더 살지 몰랐다. 시간은 저축할 수 없다. 삶은 저장할 수 없었다. 삶과 시간을 아끼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더 열심히 쓰는 거였다.


깡충깡충 앞선 아이의 손끝을 따라가자 <지표>로 난 유리 천장이 나왔다. <지하>에 일조광을 투과하는 용도로 쓰이는 채광창은 여러 가지 조형 예술과 사회 투자의 의미로 군데군데 만들어졌다. <지하>에서 인공조명이 화단이라면 채광창은 공원이나 광장에 비유할 수 있었다. 두꺼운 유리를 투과한 햇볕이 따갑고 상쾌했다. 아이는 처음 보는 밝은 빛에 눈 시려 하면서도 까르륵 웃으며 찰박찰박 햇빛과 그림자를 밟고 놀았다. 빛이 분수처럼 쏟아져 아이의 신발 밑에 그림자로 고였다. 아이의 얼굴과 남편의 얼굴이 너무 선명해서 처음 보는 사람처럼 낯설었다.


우리는 뼈와 면역력 증강을 위해서 햇볕에 맨살을 내놓았다. 오랫동안 볕을 받지 못한 하얀 피부는 타기도 전에 빨갛게 익었다. 나는 남편과 아이가 화상을 입지 않도록 노출을 세심하게 조절했다. 저녁 무렵에 아이는 노릇노릇 익어 있었다. 따가워서 칭얼댈 법도 한데 노느라 피곤했는지 다행히 금방 곯아떨어졌다. 내가 잠든 아이를 안은 동안 남편은 채광창 근처로 짐을 옮겨왔다. 침구를 펼치고 제대로 자리에 눕자 허리의 통증이 밀려왔다. 나는 습관처럼 숨을 고르며 채광창으로 눈을 돌렸다. 가장 맑은 곳으로 두 개의 하현달이 보였다.

“어느 게 진짜 달일까?”


“내일 밤이 되면 알겠지. 달은 변하고 <달>은 안 변할 테니까.”


내일 밤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곧 알게 되었다. 쪽배처럼 생긴 아름다운 형태는 대낮에도 허공에 매달려 있었고 그 주위로 늘어진 거미줄처럼 가느다란 선들에 아이 머리카락에 붙은 서캐처럼 작고 말라비틀어진 물체가 달린 게 보였다. <방주>였다. 한참 올려다보는데 <달>에 연결된 실하나가 끊기더니 서캐 하나가 급속도로 지상으로 추락했다. 먼 거리였지만 우리는 반사적으로 아이를 감싸고 그 자리에 웅크렸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충격의 잔영이 여기까지 전해졌다. 우릉우릉 흔들리는 주변에서 부서질 것이 부서지고 떨어질 것이 떨어져 진정되길 기다렸다가 우리는 방주가 떨어진 방향으로 걸었다. 한나절을 꼬박 걸어서 무너진 천장과 벽 사이에 낀 <방주>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연기도 불길도 없었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다. 불이 나거나 폭발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이 들자 남편이 <방주>로 접근했다.


“누구 있어요?”


<방주> 외벽을 두들기자 안에서 쿵쿵 문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고장 난 모양이었다. 남편은 튼튼한 파이프를 찾아와 지렛대 삼아서 비틀린 문틈에 끼웠다. 처음에는 박자가 맞지 않았지만 곧 안팎에서 합세해서 문을 열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에서 본 엄마 닭과 알 속에 있는 병아리가 서로 합심해 알 껍질을 두드려 알을 깨는 모습 같았다.


“괜찮아요?”


남편은 일상어와 <지표> 공용어를 섞어서 연거푸 말했다. 안에서 나온 사람들은 남편과 우리를 보고 몇 번이고 눈을 껌뻑였다.


“<지표>에 사람이 남아 있을 줄은 몰랐어요. 다들 <방주>에 탔거든요.”


남편의 키에 겁먹은 눈빛으로 금발 여자가 말했다.


“우리는 <지하>에 있었어요.”


내가 말했다. 여자는 우리 사이의 아이를 보고는 눈이 빛났다.


“세상에! 진짜 아이에요? 너무 귀여워요!”


나는 여자가 호감과 호들갑으로 과장한 칼날 같은 번뜩임을 분명히 봤다. 불안이 엄습했다.


“이거 좀 도와줘요.”


<방주>에서 나온 다른 사람이 여자를 불렀다. 나는 그 여자가 가버려서 안도했지만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했지만 어울림은 두려웠다. 산에서 사람을 만나는 게 가장 무서운 일인 것처럼, 천적인지 동료인지 알 수 없이 똑같은 거죽을 입은 채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사람이 가장 무섭다. 나는 가능한 눈에 띄지 않게 달아나고 싶었다. 하지만 개미집에서 나오는 개미처럼 <방주>에서 기어 나온 사람들이 부상자를 치료하고 고장 난 곳을 수리하며 법석을 떠는 곳으로 남편이 휩쓸려 가는 통에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아이와 함께 가능한 그곳에서 멀찍이, 남편을 찾을 수 있을만한 곳에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아이에게 두세 번 요깃거리를 준 거 같았다. 밝았던 하늘이 다시 컴컴해졌을 때쯤 <방주>의 소요가 잠잠해졌다. 나직한 발소리에 남편이 왔구나, 어서 가자고 해야겠다 하고 몸을 일으키는데 조용한 손이 내 입을 막았다. 약품 냄새가 났다. 불안이 차게 등골을 달렸다.


“쉬, 나예요.”


어슴푸레한 속에서 나는 그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내 조산사였다.


“그냥 듣기만 해요.”


그는 천천히 손을 떼었다. 나는 완전히 겁에 질려 있었지만 아이가 있어서 함부로 소란을 떨 순 없었다. 그리고 그는 내 배가 부푸는 것을 지켜보고 출산을 도운 사람이었다. 우리는 21시간 동안 죽음과 삶의 예리한 칼날 위에서 겪는 출산의 고통을 함께 견뎠다. 경험으로 생긴 신뢰는 쉽게 희석되지 않았다.


“아이가 위험해요.”


그 말만 하고 조산사는 사라졌다. 뒤이어 10년은 늙어 보이는 얼굴의 남편이 나타났다. 나는 말없이 그에게 아이를 넘기고 짐을 걸머멨다. ‘왜?; 남편이 눈으로 물었다. 나는 입에 손을 얹고 고개를 저었다. 심장이 늑대 떼를 마주친 토끼처럼 뛰어! 뛰어! 뛰어! 하고 소리쳤다. 아이가 칭얼댔다. 남편이 <방주>를 떠나며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지하>의 복잡한 통로에 몸을 숨길 때까지 우리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허리가 불로 지지는 것 같다가 완전히 감각이 사라졌다. 따라오는 남편이 힘들어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속도만 조절했다. 아빠에게 매단 아기띠 속에서 칭얼거리던 아이는 규칙적인 발걸음의 진동에 세상 무서운 것 없이 잠들어 있었다. 나는 무서운 괴물들이 우리를 따라오진 않는지 몇 번이고 뒤를 확인하다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지치고 아무것도 따라붙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자 비로소 무너졌다. 내장이 뒤틀리는 것 같고 허리 아래로 감각이 없었다.


“아이를 노리고 있었어.”


내가 간신히 말했다. 아이가 듣고 있진 않은지 곁눈질하면서.


“내 태반 값 기억나?”


우리 부부는 그 돈으로 아기를 길렀다. 육아는 어마어마하게 돈이 들었다. 꼭 필요한 것만 산다고 해도 남편의 외벌이 수입으로는 감당하기가 벅찼다. 아기는 아주 작았고, 작은 생물들이 그렇듯이 약하고 자주 아팠다. 열만 나도 큰일이었다. 아기는 빨리 자라고 빨리 변했다. 수시로 새로운 모르는 것들이 끊임없이 필요해졌다. 나는 조산사가 했던 다른 제안은 남편에게 말하지 않았다. 조산사는 아이가 부담되더라도 낳아보라고, 결과가 어떻든 분명히 이득이 될 거라고 했다. 그 이득의 구체적인 경로와 방법에 대해선 함구했지만 우리 둘 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아주 잘 알았다.


“아이는 돈이 되, 내장, 세포, 혈액, 골수, 머리카락 한 올까지. <달>에서 노화방지와 세포 이식에 쓴대. 임신부의 부산물보다 훨씬 비싸게 팔려. 아이는 성장하니까 살려둔 채로 계속 착취할 수 있거든. 말라죽을 때까지 따먹다 땔감으로 쓰는 과실수처럼.”


남편은 숨을 들이쉬었다.


“그러면 안돼. 늙어 죽어야 할 것들이 태어나 자라지도 않은 걸 잡아먹어선 안돼.”


“오래전부터 그래왔어. 늙고 권력을 가진 자들이 어리고 약한 것들을 착취해 왔지. 공룡처럼 쌓아둔 자본으로 노동력을 후려치고 좋은 먹거리에 세금을 매기고 땅값을 올려서 떠돌게 하고 이젠 진짜 사람 몸뚱아리를 원해.”


더 말할 힘이 없었다. 우리는 웅크려 쉰 자리에서 제대로 자리도 잡지 않고 잠들었다. 나는 아파서 예민해진 터라 깜박 졸기만 했다. 짧은 꿈 속에 지금껏 단 한 번도 초대받아 본 적 없는 아름답고 훌륭한 만찬장이 나왔다. 식탁보는 눈처럼 희고 가장자리에 손으로 뜬 자수를 둘렀으며 식기들은 모두 은과 진짜 나무세공품이었다.


식탁 한가운데는 오래전에 멸종된 이름 모를 뿔 짐승과 이빨 짐승과 날개 짐승이 얼음으로 조각되어 눈부시게 빛났다. 조각품 바로 옆 큰 쟁반에는 아기가 놓여 있었다. 분홍색 살점이 마디마다 드러난 팔다리는 한 번만 비틀면 뗄 수 있도록 세심하게 잘려있었고 쟁반 아래엔 크리스털 잔이 놓여서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피와 기름을 따로 모아 담게 되어 있었다.


신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남자가 크리스털 잔을 빼 들었다. 식탁에 둘러선 모든 사람들이 하나씩 잔을 들었다. 잔에 담긴 피와 기름은 밝은 분홍색으로 그들의 입술에 흘러들어 갈 때마다 루비처럼 빛났다. 남자는 손잡이가 정교하게 세공된 달처럼 휜 칼을 들어 아기의 가슴을 갈랐다. 그리고 끄집어낸 장기를 하나씩 작은 접시에 담아 심장은 가장 아름다운 여자에게 간은 가장 강해 보이는 남자에게 폐와 다른 장기도 각각 어울리는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다. 그들은 따뜻한 장기를 후루룩 마시다시피 삼켰다. 아기 내장 회는 너무 연해서 씹을 필요도 없어 보였다.


다음으로는 근사한 옷을 차려입은 솜씨 좋은 요리사가 등장해 부드러운 아이의 살점을 얇게 저며 모두에게 한 점씩 맛보도록 돌렸다. 사람들의 입안에서 싱싱한 생명력과 연하도록 다져진 시간들이 사르르 녹아 사라졌다. 한 생명의 미래가 세련된 예절로 포장된 식사과정을 거쳐 모두의 위장 속으로 사라진 후 다르게 조리된 아이가 식탁에 올랐다. 바삭바삭 구워진 햇볕 냄새가 근사했다. 길고 마른 작은 팔다리가 낯이 익다. 요리된 아이의 얼굴을 보기 전에 꿈에서 깼다. 심장이 북처럼 뛰고 팔다리가 얼음처럼 차가웠다.


나는 어둠에 익숙한 눈으로 잠든 남편과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이 작은 얼굴은 무얼 보고 어떻게 느낄까. 아이는 걱정해야 할 게 너무 많았다. 조심해야 할 것도 너무 많았다. 아이가 눈부시게 웃은 적이 있던가? 그래 채광창 아래서 한 번, 인형 가방이 생겼을 때 또 한 번. 아이에게 주고 싶은 것들이 떠올랐다.


아이에게서 보고 싶은 것들도 떠올랐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지표>도 <달>도 아니라 바로 아이의 얼굴 위에 있었다. 하지만 살아 있어야만 존재하는 목적지였다. 삶이 없으면 아이를 볼 수도, 아이에게 보여줄 수도 없다. 아이가 가야 할 길들이 눈앞에 선연히 떠올랐다. 그 길이 너무 좁고 길고 힘겨울까 봐 벌써 마음이 저렸다. 그래도 함께니까 때론 팔이 되주고 때론 다리가 되 줄 수도 있겠지. 언젠가 그 길이 너무 좁아져서 우리는 뒤에 남고 아이 혼자 갈 수밖에 없는 순간도 올 것이다. 나는 깊은 한숨으로 통증을 삭였다. 그때까지 남편과 내가 튼튼한 다리와 통로가 될 수 있을까? 할 수 있을까 내가 이 몸으로?


“일어나.”


남편이 나를 깨웠다. 어느새 정말로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우리는 조금 먹고 짐을 살피고 다시 침묵 속을 걸었다. 기지국 쪽으로는 가지 않았다. <방주>에서 탐색을 시작하면 가장 눈에 띌 곳이었다. 우리뿐일 때는 무섭지는 않았다.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몰랐지만 지금처럼 매시간 매 순간 쫓기는 기분은 아니었다. 우리는 한 동안 사람들의 흔적을 피해 다녔다. 가끔 숨겨둔 물건을 찾으러 가기도 했다. 둘 다 <지표>나 <방주>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


며칠 째인지 모를 아침 몸이 일으켜지지가 않았다. 몇 번을 시도했지만 너무 아파서 제대로 설 수도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없었다. 간신히 모로 몸을 돌려 숨만 쉬었다. 고통과 절망감이 가슴을 옥죄었다. 남편은 걱정스럽게 옆에 앉았다가 먹을 것을 구하러 갔다. 남편과 나는 점점 적게 먹었다. 아이도 가끔 배가 고파 칭얼댔다. 그런 때만 우리는 비상식량을 꺼내 먹였다. 불침번은 늘 내가 섰다. 어차피 아파서 잘 수가 없었고 남편은 아이를 돌보고 먹을 것을 구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내가 짐이 되어선 안 됐다. 무력했던 시간들이 되돌아와서 숨을 조였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먼저 가. 따라갈게.”


두고 가라고 말하면 갈 수 없을 거란 걸 알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남편은 말의 껍질을 벗기고 진실을 알아들었다.


“안돼.”


남편은 고개 저었다.


“나아질 거야. 늘 그랬잖아. 괜찮아질 거야.”


괜찮아지지 않을 것이다. 나도 남편도 알았다.


“두고 가야 돼. 살아남으려면.”


결국 내가 말했다. 남편은 말할 수 없을 테니까.


“해야 해. 살면서도 계속 경쟁해 왔잖아. <지표>의 대학에 가려고 경쟁하고 취직하려고 경쟁하고, 뒤에 항상 낙오된 사람들을 두고 왔잖아. 다르지 않아. 할 수 있어. 금방 잊을 거야.”

나는 계속 말했다.


“아이는 살아야 해. 우리는 살아봤지만 아이는 아니잖아. 아이만 생각해. 중요한 것만 생각해.”


그 말을 하면서도 나는 아이가 살기를 바라는 것이 내 이기심이 아니기를 빌었다. 아이에게 비루한 삶을 주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을 고통스럽게 삼켰다.


“아니야. 나는.”


어두워서 보이지 않지만 남편의 목소리에 물기가 있었다. 배고픈 아이가 기운 없이 늘어진 채로 눈만 껌뻑였다. 비상식을 조금 떼어 먹이자 한입에 먹고 제 손에 묻은 부스러기를 내 입에 대주었다. 나는 마른 웃음을 터트리며 아이의 손바닥을 핥았다. 이젠 짜지도 않고 먼지 맛만 났다. 남편은 잠든 아이의 몸이 식지 않게 내 품에 넣어주고 먹을 것을 구하러 갔다. 어쩌면 내가 식지 말라고 넣어준 것인지도 몰랐다. 잠든 아이는 참 따뜻했다.


“엄마, 달이 뭐야?”


그날 밤, 웅크리고 잠든 남편 옆에서 아이가 깨어 물었다. 나는 아이가 그렇게 길게 완전한 문장으로 말하는 걸 처음 들었다. 아이는 사실 성장 자료에서 제시된 기준보다 언어 발달이 굉장히 더뎠다.

“하늘에서 빛나는 커다란 등불이야.”


내가 대답했다. 남편이 깨어서 아이가 말하는 걸 들었으면 싶었지만 깨울 힘이 없어서 너무 아쉬웠다.

“우리도 거기서 살 거야?”

나도 몰랐다. 그래서 아이에게 물었다.

“거기서 살고 싶니?”

아이의 크고 빛나는 눈은 어둠 너머 땅속을 지나 지표를 넘고 먼 하늘의 달까지 뚫어져라 보는 것 같았다.

“응.”


나는 아이를 끌어안고 목에 몸을 묻었다. 아이는 간지럽다며 웃었다. 목소리가 좀 기운이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 아이 웃음소리는 잘강이는 냇물 같았다. 아이는 <달>로 갈지도 모른다. 우리가 다른 방법은 찾아내지 못하면. <달>에 가서 실험체로 치명적이지 않은 세포를 좀 팔아서 삶을 연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태반을 판 것처럼. 자연 임신과 출산을 겪은 천연 아이는 희귀하니까. 남편이 아이를 지켜준다면 아이는 제가 가진 것들로 <지하>에서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도 있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어디에 가든 네가 원하는 삶이기를 바라.”


아이가 내 말을 이해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따뜻함 만은 기억하기를 바랐다. 그날 밤 꿈에서 나는 빨래를 개켰다. 옆에는 회색 줄무늬 고양이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회색 고양이는 잘 마른빨래와 세제 냄새를 좋아해서 빨래를 개면 꼭 무릎에 올라오곤 했다. 좀처럼 하지 않는 행동이라서 그럴 때면 나도 잠시 일손을 놓았다. 아무리 바빠도 한가하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창밖엔 햇살이 비추고, 아니 햇살 따윈 아무 데도 없지. 아이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멀리서 남편이 부르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목소리가 그저 무사해서 나는 기뻤다.





*플로우 FLOW (영화, 애니메이션)을 보고 아주 오래된 공포가 떠올랐다. 너무 아름다운 영화였지만 나는 너무 무섭고 슬퍼서 오래 울었다. 여자는 아기를 낳으면 세상이 무너지거나 전쟁이 날 거라는 공포나 어둠을 극히 두려워하게 되는데 임신에 동반된 가벼운 정신병이며 대부분의 여자들이 겪는다. 연구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 작품을 쓸 때 나는 실제로 육아와 하지 마비를 겪고 있었고, 고양이 봄과 비가 나에게 있었다. 이제 그들은 떠나고 도토리와 보리가 있다. 어쨌든 내가 더 오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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