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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이 탄생시킨 위대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 이해

by 현상

대공황에 대한 이해를 하려면 존 메이너드 케인스 (John Maynard Keynes, 1883~1946)에 대한 이해가 필수입니다.

다음편부터는 총 3편에 걸쳐 존 메이너드 케인스 전기중 해당 부분(대공황에 관련된 부분)을 정리할 계획인데 그에 앞서 케인스에 대한 정리를 해보려고 합니다.



케인스는 매우 다재다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요즘 단어로 이야기하면 ‘엄친아’가 적당하겠네요. 캠브리지대학교 교수였고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지성인 모임 중 하나였던 블룸즈베리 그룹의 멤버였고 매일 한시간의 시간만으로 국제통화와 상품거래를 통해 엄청난 재산을 모았으며, 생명보험회사 회장, 영국은행 은행장으로 재직하고 유명한 발레리나와 결혼했으며, 극장 경영과 더불어 미술품과 고전 도서 수집을 즐겼습니다. 케인스는 케인스학파와 거시경제학을 탄생시켰습니다.



‘케인스주의(Keynesianism)’는 한 세대에 걸쳐 경제학을 지배했습니다. 전 세계 정부들은 케인스의 교훈에 따라 경제를 관리하기 위한 도구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철학은 1950년대와 60년대의 번영과 안정의 시대를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후에는 비판과 수정도 이어졌지만, 케인스의 핵심 통찰—즉, 시장은 스스로 항상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지 않으며, 정부는 그 균형을 맞추는 데 책임이 있다는 생각—은 여전히 현대 경제학과 정책의 중심축으로 남아 있습니다.



케인즈는 1883년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케인스의 아버지도 당시 저명한 경제학자인 존 네빌 케인스(John Neville Keynes) 입니다. 이튼고등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았으며, 캠브리지대학교의 킹스칼리지에 진학을 했는데 당시 경제학자로 명성을 날리고 있던 앨프리드 마셜(Alfred Marshall)이 경제학자가 될 것을 권유하였습니다.



대학 졸업후 더 큰 돈을 벌고 성공을 위해 공직생활을 선택하고 2등으로 공무원 시험에 합격을 합니다. 1907년 그는 인도로 갔으나 맡은 일을 안좋아 해서 2년뒤 사직하고 캠브리지대학교로 돌아온후 인도에서 얻은 지식을 토대로 1913년 ‘인도의 화폐와 재정(Indian Currency and Finance)’라는 책을 썼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기간 동안에는 영국 재무성에 차출되어 영국의 해외재정에 관한 일을 하였으며 제1차 세계대전의 전후 협상에서 영국 정부를 자문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패전국에 대한 보상금 등에 실망한 케인스는 사임하였고 1919년 베르사유 조약이 조인되기 사흘전에 ‘평화의 경제적 결과(The Economic Consequences of the Peace)’라는 비판하는 글을 쓰고 국제적으로 유명인사가 됩니다.



케인스는 또 뛰어난 수학자이기도 했습니다. 1921년 ‘확률론(Treaties on Probability)’을 출간하였고 1923년에는 ‘화폐개혁론(Tract on Monetary Reform)’을 발간하였으며 1930년에는 ‘화폐론 (Treatise on Money)’를 출판합니다. 1936년 드디어 혁명적인 책을 세상에 내어 놓습니다. 바로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 (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 이하 '일반이론')’ 입니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영국정부를 대표하여 미국정부와 전쟁비용을 조달하고 해결하는데에 수석 협상가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리고 1946년 세상을 떠납니다.



아래는 일반이론을 바탕으로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케이스이전에는 많은 경제학자들이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라는 세이의 법칙 (Say’s law)를 절대적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세이는 모든 사람들이 생산자임과 동시에 소비자이므로 생산을 통해 벌어들인 소득을 다른 상품의 구입에 쓰기 때문에 공급이 수요를 창조한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즉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은 항상 일치하게 되어있고 이에 따라 만성적인 수요 부족이나 실업은 존재가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논리를 적용하게 되면, 불황의 밑바닥에서는 저축이 불어나게 되고, 저축이 홍수처럼 늘어나게 되면 금리는 떨어지게되고, 금리가 떨어지면 기업들은 제조시설을 확장하기위해 싼돈을 이용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다시 고용이 늘어나게 된다는 논리로 연결이 됩니다.



하지만 케인스는 이 논리가 가진 오류를 파악했습니다. 그의 결론은 불황의 밑바닥에서는 저축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경기가 좋지 않으면 소득이 감소하고, 소득이 감소하면 저축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힘들 때 경기가 좋을 때만큰 저축하는 것을 사회에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생활을 지금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경기가 좋지 않아 해고가 늘어나게 되면 저축할 돈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저축한 돈을 헐어서 쓰게되게 됩니다. 지금은 일반화된 논리가 당시에는 아주 혁신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저축이 줄어들기 떄문에 금리도 인하하지 않고 기업들도 낮은 금리로 자금조달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투자를 멈추게 되었습니다. 이는 일자리가 없어 노는 사람과 가동되지 않는 기계가 동시에 존재하는 상황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는 미국에서 고스란히 나타났습니다. 1929년 한해만 37억달러에 달했던 저축액은 향후 몇년에 걸쳐 줄어들게 됩니다. 호황이 절정일 때 세금과 배당을 지급하고도 26달러나 남긴 미국회사들이 3년뒤에는 60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하게 됩니다.



즉 당시 기업들은 망해가고 있었으며, 더이상의 투자를 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때 미국의 루즈벨트 정부는 실업자들에게 일자를 주는 즉 뉴딜정책이 시작이 됩니다. 정부가 갑자기 투자자가 되어 도로, 댐, 항망, 주택건설 사업 등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케인스는 일반이론에서 미국과 서방 세계의 현재 파국이 기업이 충분한 투자를 하지 않은 결과라고 지적하였고 기업이 투자를 할 수 없다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 것이 기업들의 투자를 직접적으로 자극할 수 없다 하더라도 소비는 자극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정부의 지출에 의한 일자리를 갖게 되면 소득이 생기고 이는 소비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케인스는 1934년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났을 때 이러한 사업을 확장할 것을 건의했습니다.



지금은 불황때 정부가 투자를 늘이거나 세금을 감면해 주어 수요를 만드는 것을 당연하게 보고 있지만 당시로서는 생소한 개념이었습니다. 아무튼 불황의 시기에 정부가 투자를 하게 되면 소비가 자극이 되고 이는 다시 기업들의 투자로 이어진다는 것이 핵심이 될 것 같습니다.



케인스는 이자가 저축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현금의 유동성을 포기한 데 대한 보상이라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그는 이자율을 올린다고 해서 저축이 늘어난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저축은 실업의 해결책이 아니라 실업을 야기하는 문제의 핵심이라고 보았습니다. 소득이 모두 소비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생산이 준다는 것으로 이해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케인스의 많은 이론은 현재 거의 폐기되다 시피 했지만 핵심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지출의 흐름과 저축의 누출은 생산물을 만들어내고 고용을 향상시킵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마치 엘리베이터처럼 계속해서 오르내리게 됩니다. 균형점이 생산 능력완전 고용과 반드시 일치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무엇이 원인이 되었든 간에, 투자를 이끄는 '동물적 충동(animal spirits)'이 충분하지 않다면, 경제는 반쯤 침체된 상태, 혹은 심각한 불황 속에 무기한 머무를 수 있습니다.



케인스식 경기 침체에는 스스로 회복되는 자정 능력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며, 케인스의 세계관에서는 임금이 하락하면 소비 지출도 함께 줄어들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자율도 쉽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현금을 보유한 사람들은 낮은 이자 수익만으로는 자신의 유동성을 포기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래는 일반이론 중 재밌는 문구들을 가져와 봤습니다.



1. 앞으로의 수익을 추정하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지식의 기반이 매우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몇 년 후 어떤 투자가 어떤 수익을 낼지 결정짓는 요인들에 대해 우리는 일반적으로 매우 적은 지식만을 가지고 있으며, 그마저도 대개는 무시해도 될 만큼 미약하다.



2. 기업가는 기술과 우연이 뒤섞인 게임을 하는 셈이고, 그 결과가 평균적으로 어떠했는지는 정작 그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조차 알지 못한다. 만약 인간의 본성이 위험을 감수하려는 유혹을 느끼지 않고, 공장, 철도, 광산, 농장을 세우는 일에서 (수익과는 별개로) 만족감을 느끼지 않았다면, 단순한 냉정한 계산만으로는 그리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3. 주식시장의 일일 재평가는 본래는 기존 투자를 개인 간에 이전할 수 있게 하려는 목적에서 이루어지지만, 실제로는 현재 투자 수준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왜냐하면 이미 존재하는 유사한 기업을 더 저렴한 비용으로 매입할 수 있는데, 굳이 더 많은 비용을 들여 새로운 기업을 세울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로운 프로젝트에 다소 과한 금액을 지출하더라도, 그것을 즉시 주식시장에 상장해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면 투자 유인이 생긴다. 이렇게 해서 일부 유형의 투자는 진지한 기업가의 기대라기보다는, 주식시장에서 주가를 통해 드러나는 평균적인 기대에 의해 지배받게 된다.



4.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그 시장 평가가 유일하게 옳다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현재 지식은 수학적으로 계산된 기대값을 도출하기에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장 평가에는 앞으로의 수익과 아무 관련이 없는 온갖 고려 요소들이 개입되어 있다.



5. 전문적인 판단력과 평균적인 개인 투자자보다 뛰어난 지식을 갖춘 전문가들 간의 경쟁이, 무지한 개인이 혼자 행동할 때 발생하는 예측 불가능한 변동성을 교정해줄 것이라 기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전문 투자자와 투기꾼의 에너지와 기술은 대체로 다른 데 집중되어 있다. 이들 대부분은 실제로, 투자의 전 생애에 걸친 예상 수익을 장기적으로 정확히 예측하려 하기보다는, 대중보다 약간 먼저 ‘관습적인 평가 기준이 어떻게 바뀔지를 예측’하는 데 주로 몰두하고 있다. 그들은 어떤 투자가 장기적으로 실질적으로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대중 심리에 따라 앞으로 3개월 혹은 1년 후에 시장이 그것을 얼마로 평가할 것인가에 더 관심을 둔다.



6. 숙련된 투자의 사회적 목적은, 우리 미래를 둘러싸고 있는 시간과 무지라는 어두운 세력에 맞서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가장 숙련된 투자자들의 실제 개인적 목적은, 미국식 표현을 빌리자면, "총소리가 나기 전에 쏘는 것(to beat the gun)", 즉 군중보다 한발 앞서 움직이고, 떨어지는 동전을 남에게 떠넘기는 것에 가깝다.



7. 전문 투자는 신문에서 종종 열리는 미인 선발 대회와 비슷하다. 참가자들은 100장의 사진 중에서 가장 예쁜 얼굴 6장을 고르는 것이고, 수상자는 전체 참가자들의 평균적인 선택과 가장 근접한 선택을 한 사람에게 돌아간다. 즉, 각 참가자는 자신이 보기엔 가장 예쁜 얼굴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참가자들이 가장 예쁘다고 생각할 법한 얼굴을 고르는 방식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참가자들은 서로가 똑같은 방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이것은 자신의 판단으로 진정 가장 예쁜 얼굴을 고르는 문제도 아니고, 대중의 평균적 의견이 정말 예쁘다고 생각하는 얼굴을 고르는 문제도 아니다. 대중의 평균적 의견이 무엇일지’에 대해 ‘대중이 어떻게 기대할지를 예상하는 것이다.



8. 만약 ‘동물적 충동(animal spirits)’이 약해지고, 자발적 낙관주의가 흔들리게 되어, 우리가 오직 수학적 기대치에만 의존하게 된다면, 기업 활동은 시들고 사라질 것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에 의존하는 기업 활동은, 공동체 전체에 이익을 준다고 말해도 틀림이 없다. 하지만 개인의 자발적인 행동(initiative)은, 단지 합리적인 계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은 반드시 ‘동물적 충동(animal spirits)’에 의해 보완되고 지지될 때에만 충분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9. 투자의 전망을 평가할 때, 우리는 그것이 크게 좌우되는 사람들의 신경 상태, 히스테리, 심지어 소화 상태나 날씨에 대한 반응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10. 모든 것이 비이성적인 심리의 파동에 좌우된다고 결론지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장기적 기대의 상태는 종종 안정적이며,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다른 요인들이 이를 상쇄하는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우리는 단지,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인간의 결정—그것이 개인적이든,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은, 엄밀한 수학적 기대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계산을 가능하게 할 기초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우리의 본능적인 활동 충동이며, 합리적 자아는 가능한 범위 내에서 여러 선택지들 사이를 고르고, 계산이 가능한 부분에서는 계산을 하되, 동기 자체는 종종 즉흥, 감정, 혹은 우연에 기대게 된다.



11. 재무부가 오래된 병 속에 지폐를 채워 넣고, 그것을 사용되지 않는 탄광에 적당한 깊이로 묻은 다음, 그 위를 도시 쓰레기로 덮어두고, 그 돈을 다시 캐내는 일을 자유방임주의의 검증된 원칙에 따라 민간 기업에 맡긴다면, 실업 문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파급 효과의 도움을 받아, 공동체의 실질 소득과 자본 축적 또한 지금보다 훨씬 커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렇게 하기보다는 주택이나 그에 준하는 것을 짓는 것이 훨씬 이성적인 일일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혹은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그것이 어렵다면, 위와 같은 방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12. 고대 이집트는 두 가지 점에서 매우 운이 좋았고, 아마도 이로 인해 전설적인 부를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피라미드 건설과 귀금속 탐사라는 두 가지 활동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활동의 결과물은 소비를 통해 인간의 필요를 직접적으로 충족시키지 않았기에, 아무리 많아도 풍족함 속에서 가치가 줄어들지 않았다.



13. 현대 경제 사회의 가장 두드러진 결함은, 첫째, 완전 고용을 실현하지 못한다는 점, 둘째, 부와 소득이 자의적이고 불공정하게 분배된다는 점이다.



14. ‘인간 본성을 바꾸는 과제’와 ‘인간 본성을 관리하는 과제’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이상적인 공동체에서 사람들은 판돈 자체에 관심을 갖지 않도록 교육받거나, 영감을 받거나, 그렇게 자라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현실의 국가 경영에서는, 여전히 평범한 사람들—혹은 적어도 상당한 일부—가 돈벌이에 강한 집착을 보이는 한, 그 게임을 일정한 규칙과 제한 안에서 허용하는 것이 현명하고 신중한 정치일 수 있다.



15. 지금까지는 적절히 높은 수준의 이자율이 필요하다는 정당성이 저축을 유도하기 위한 필연성에서 비롯된다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유효 저축의 규모는 본질적으로 투자 규모에 의해 결정되며, 투자 규모는—완전 고용 수준을 초과하려 하지 않는 한—낮은 이자율에 의해 촉진된다는 점을 보였다. 따라서 우리의 결론은 이렇다: 자본의 한계효율 스케줄에 비추어 완전 고용이 실현되는 수준까지 이자율을 낮추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 수준이 바로 우리에게 가장 유리한 이자율인 것이다.



16. 투자의 어느 정도 포괄적인 사회화야말로 완전 고용에 근접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 될 것으로 본다. 물론 이 과정이 민간의 자발성과 공공 권력이 협력하는 다양한 타협과 수단들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이상으로, 즉 공동체의 대부분 경제 활동을 포괄하는 국가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명확한 근거는 없다. 국가가 반드시 생산 수단의 소유권을 가져야 할 필요는 없으며, 생산 수단을 확대하는 데 투입되는 자원의 총량과, 그 소유자들에게 돌아갈 보상의 기본 수준을 국가가 결정할 수 있기만 하면, 국가는 필요한 모든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필요한 수준의 사회화 조치들은, 사회 전반의 전통을 해치지 않으면서 점진적으로 도입될 수 있다.



17. 소비 성향과 투자 유인을 서로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정부의 기능이 확대되는 것은, 19세기의 논객이나 현대의 미국 금융인에게는 개인주의에 대한 심각한 침해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것을 옹호한다— 기존 경제 체제가 전면적으로 붕괴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실질적 수단이자, 개인의 자발적 활동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기 때문이다.



18. 나는 확신한다. 기득권의 힘은, 시간을 두고 서서히 퍼지는 ‘아이디어의 침투력’에 비하면 훨씬 과장되어 있다. 물론 그 영향이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경제학과 정치 철학의 영역에서, 스물다섯이나 서른을 넘긴 이후 새로운 이론에 영향을 받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공무원이나 정치가, 심지어 선동가들이 현실 문제에 적용하는 생각들은 최신의 이론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조금 이르든, 늦든 간에, 세상을 선하게든 악하게든 움직이는 위험한 존재는 기득권이 아니라 ‘아이디어’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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