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0대의 인연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

by 방구석예술가
파랑장미와 달항아리




생각해 보면 20대의 나는 감정이 뚝뚝 흘러넘쳤다.

허구한 날 가슴에서 흘러넘치는 감정이 몸 아래로 투두둑 떨어졌다.

내가 걸어가는 걸음마다 슬픔, 기쁨, 분노의 발자국이 찐득하게 남았다.


나를 지하철에서, 대학교 강의실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처음 본 사람이라도

'저 사람 실연당했구나.'

'저 여자는 기분이 좋은가 보네.'

'쟤는 뭐 저렇게 화가 났어?'라고 단번에 알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얼굴에 감정을 다 써붙이고 있는 그런 사람.


미술을 한다는 건 그런 성격의 변명거리가 되어 주곤 했다.

감정기복이 극도로 심했던 나는 어떤 날은 무척 행복해 모두를 웃게 만들었다.

또 다른 날은 엄청 화가 나서, 모두를 안전부절하게 만들다.


"그냥 난 좋으면 웃고, 슬프면 울고, 그런 단순한 사람이야."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나 자신이 스스로 버거운 저녁도,

스스로 불쌍한 새벽도 분명 있었다.

행복, 기쁨, 환희의 감정보다는 불안, 슬픔, 분노의 감정들이 오래 곁에 머문다.

그런 새까만 감정들만 둥둥 남아, 그것들을 고이 안고 자는 날들도 많았다.


그러나 물음표 가득 감정을 알 수 없는, 내숭 떠는 사람보다야 낫다 생각했다.

속이 훤히 드러나는 투명함을 지녔으니 난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감정이 매일 뚝뚝 흘러넘치는 덕에, 그 걸음마다 남기는 찐득한 감정의 발자국들 때문에,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괜스레 불편했고, 불쾌했음을.

이제야 알았다.


실제로 난 사람들에게 이해받거나, 공감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의 쏟아지는 감정들을 보며, 주르륵 흘러내리는 모습에 내 주변사람들은

'무언가를 해주어야 한다, ' 혹은 '무언가를 해주어야 하나?'라는 감정이 들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아주 가끔 나에게 "너는 어렵다."라고 에둘러 말해주곤 했다.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먼저 싸움을 걸지도, 시비를 걸지도 않는데?

내가 내 눈치를 보라고 한 적 있어? 난 아무것도 안 했어.'

나는 날 버거워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는 남의 일에 공감도 잘했다.

친구의 실연에 따라 울기도 했고, 헤어졌다는 친구의 말에 달려가기도 했고,

사람들의 행복한 일에도 기꺼이 손뼉 쳐 주었다.

나는 이렇듯 남의 일에도 감정을 잘 쏟았기에,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나는 자신에게만 감정을 많이 쏟는 사람이 아니라, 너희들에게도 많이 쏟는 사람이야."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지냈다.

나에게 나는 너무 착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감정까지 흡수하며,

결국엔 내가 흘리는 감정이 더 많아졌 때,

사람들은 나를 견딘다고 말했다.

나는 내 감정들을 들어달라고 한 적이 없는데, 사람들은 견디고 있다고 했다.


그런 말들은 상처로 남아,

나는 더욱 깊이 있는 발자국을 남기게 됬다.

나는 무언가를 바라지 않음에도,

무언가를 해주어야 할 것 같은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내게 하던 "어렵다."라는 표현이 무엇인지 주변의 사람들을 잃고 한참 지나서야,

새삼 알게 되었다.

.

.

.

다행히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나'를 많이 잃었기에 감정도 많이 줄어들었다.

감정이 흐를 일이 생기면, 새지 않게 병에 담아, 남편에게만 슬쩍 보여준다.


요즘 꿈속에서 잊었던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빛나는 20대의 장면을 같이 나눈 사람들.

나의 찐득한 발밑의 감정들을 보며 불쾌하고 신경 쓰였을 사람들.

연락한 지 10년도 더 된 사람들.


20대의 인연들에게 전하고 싶다.


미안했고 고마웠다고.

나와 똑같은 둘째 아들을 낳아 키워보니,

나 같은 사람이 얼마나 힘든지......

이제야 알겠다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