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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민언니

보고 싶은

by 방구석예술가
탄생화와 우리나라 도자기_9월 용담




외동딸이었던 나는 사촌언니를 무척 좋아했다.


언니는 전라북도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댁 근처에 살았다.

언니는 엄마인 큰 고모를 빼닮아 아역배우처럼 예뻤다.


어릴 때, 눈코입이 파묻혀 있었던 나는 그런 언니와 은연중에 비교를 당하곤 했다.

엄마는 신경이 쓰이는 듯, 할머니댁에 갈 때마다 내 옷을 신경 써서 입혔다.


나는 그런 비교로 슬프지 않았다.

언니는 공주님처럼 얼굴이 예쁜 데다가 마음씨 또한 예뻤고,

둘 다 외동딸이었기에 통하는 것이 많았다.


명절과 방학 때 할머니댁에 가곤 했는데,

기차를 타고 할머니댁에 가는 것은 곧 언니를 만날 수 있는 기쁨이었다.


나는 언니를 만나면 꼭 붙어 있었다.

언니는 나와 나이차이가 꽤 많이 났다.

언니는 그런 나를 잘 챙겨주었고, 우린 싸울 일도 없이 잘 지냈다.


긴 방학 때는 엄마와 떨어져 고모집에 며칠씩 머물기도 했다.

언니와 같이 잘 때면 손을 꼭 붙잡고 잤다.


언니는 내가 불편할까 봐.

"윤하야. 불편하면 손 놓고 자도 돼. 알겠지?"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행여나 자다가 언니의 손을 놓칠까

온 힘을 주며, 언니 손을 꼭 잡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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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와 오랜 시간 지낸 뒤, 집에 돌아오면 나는 무척 힘들어했다.

며칠 내내 울며 언니를 보고 싶어 했다.


자다가 일어나서 언니 이름을 부르며 펑펑울면,

엄마는 어스름한 아침에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주었다.

"혜민아. 윤하가 너무 힘들어해서, 네 목소리를 들려주면 좋겠다."

전화를 한들 언니를 잊을 수는 없었다.

계속 아무것도 못하고 울 수는 없었다.

나는 "혜민언니는 나쁜 사람이야."라고 속으로 되뇌게 되었다.


그 어렸던 나이에 마음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그 작은 몸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언니를 미워하는 것이었다.

언니가 나쁜사람이라 생각하면, 더이상 보고싶어지지 않겠지. 그런 생각이었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미워하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마음을 지우려 했다.


언니를 보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이 어린 나를 무섭게 짓눌렀기에,

마음속으로 언니를 미워함으로써,

그렇게라도 나는 차츰 내 생활로 돌아가곤 했다.

난 누군가를 너무 좋아하면, 미워할 수도 있다는 걸 일찍 깨닫게 되었다.


그 뒤에 언니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농구에 빠져 우지원 선수를 무척 좋아했다.

같이 tv를 보다, 경기에 져서 언니가 슬퍼했던 순간이 언니와의 마지막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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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 알 수 없는 이유로 아빠는 본가와 인연을 끊었다.

시간이 지나 언니가 의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뒤로도 혜민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과 인연을 가졌지만,

왜인지 인연이 오래가진 못했다.

모든 혜민들은 내 곁에 잠시 머물다 갔다.


어렸던 나는 이제 40을 바라보는 아줌마가 되었다.

내가 너무 사랑했던 혜민언니는

늙지도 않고, 예쁜 얼굴 그대로, 예쁜 마음씨 그대로,

내 기억 속에서 산다.


내가 태어나서 미워할 만큼 너무 사랑했던 사람은 혜민 언니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언니가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언젠가 만난다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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